[한경 머니 =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비는 인류 생명의 젖줄과도 같다. 특히, 이상 기후의 공포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시대 속에서 빗물 관리는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자 자산이 될 수 있다.
이상 기후의 공존…빗물 관리가 보호막
우리나라는 봄에는 가뭄, 여름에는 홍수로 매번 고생을 한다. 가뭄 때 오는 비는 고마움의 대상이지만, 홍수 때 오는 비는 원망의 대상이 된다.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나 비를 그치게 해달라는 기청제는 마을이나 국가의 제일 어르신의 관심사다. 특히, 우리나라의 물 관리는 매우 어렵다. 여름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고, 국토의 70%가 산지로 구성돼 있어 땅은 물을 모으기에 적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은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부를 만큼 아름다운 국토를 남겨줬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이는 비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현명하게 빗물 관리를 했기에 가능했다.

성공한 빗물 관리의 조건이란 전체 국토에 걸쳐 빗물을 관리하고, 빗물이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관리하며, 백성들이 즐겁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벼농사를 장려한 것이 바로 그 조건에 딱 맞는다. 여름에는 논에 물이 담겨 있어야 하고, 겨울에는 물이 없어도 된다. 이 조건은 우리나라의 비가 오는 시기와 일치한다. 모든 백성이 벼농사를 하니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모두 빗물 모으기를 한 셈이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논농사를 짓도록 하기 위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면서 농민들을 대우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왕이 궁궐에서 벼농사 짓는 시범을 보일 정도로 중요시 여겼다. 백성들이 빗물 관리를 잘해서 농사를 잘 지으면 자기들도 이익이 되니, 저절로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물 관리가 된 셈이다. 논은 홍수를 방지할 뿐 아니라 지하수로 들어가서 우물물을 채워주고 가뭄에 대비하게 해준다. 논에는 여러 종류의 동식물이 자라서 생물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고인 빗물은 증발해 다시 비가 돼 그 지역 근처에 떨어지는 물의 소순환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쌀이나 부산물로 나오는 볏짚과 관련된 음식, 전통, 문화 등은 우리나라 사람의 유전자에 DNA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는 식량생산자일 뿐 아니라 빗물관리자였기 때문에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논이야말로 다목적 분산형 빗물 관리의 원조인 셈이다. 그 배경은 홍익인간이다. 윗마을 사람도, 아랫마을 사람도 행복하고, 자연도 행복하고, 후손도 행복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빗물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이 잘못된 과학과 교육과 정책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먼저 산성비에 대한 잘못된 상식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공포에 가까운 우려를 나타낸다. 그렇게 적혀 있는 교과서를 배우고 시험을 치렀기 때문이다. 산성비의 위험도는 아주 간단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과학적으로 실험하면 알 수 있다. 내리는 비는 떨어지자마자 중화되므로 수자원 이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우리가 마시는 콜라, 주스 등의 산성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피부나 인체의 건강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초등학생들도 증명할 수 있다. 이렇게 산성비를 배운 사람들은 빗물은 그저 빨리 버려야만 하는 서구의 생각과 지식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빗물은 돈이다
선진국이라는 서양에서는 비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외심이 우리보다 매우 약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비가 1년 내내 일정하게 오기 때문에 큰 가뭄과 홍수가 없다. 비가 오는 시기에 맞추어 벼를 심어야 할 필요가 없고, 대규모 홍수를 방지하고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백성을 동원해 마을마다 저수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 비가 많이 와서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비가 안 와서 힘이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현재 기후변화가 매우 두려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수년째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대규모 홍수나 가뭄인데 이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의 물을 어느 가정의 자산이라고 비유하면 홍수와 가뭄의 현상과 그 대책을 이해하기 쉽다. 비가 오는 것을 수입이라 치면, 홍수 때 빗물을 버리는 것은 수입이 있을 때 다 낭비해 버리고 수입이 없을 때 고생하는 것과 같다. 지하수를 퍼 쓰는 것은 선조들이 남겨준 유산을 마구 쓰는 것과 같다. 그에 대한 대책은 간단하다. 저축을 하는 것과 같이 빗물을 모아야 한다. ‘빗물은 돈이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상 기후의 공존…빗물 관리가 보호막
[서울대 35동 옥상 빗물연못]
이상 기후의 공존…빗물 관리가 보호막
[서울대 35동 옥상 텃밭에서 한무영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목적 분산형 빗물 관리 도입 필요

방법은 간단하다. 시가지를 다시 논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다목적 분산형 빗물 관리’를 하면 된다. 하천에 있는 커다란 댐 한두 개에 모으지 않고, 전체 국토에서 작은 주머니를 많이 이용해 빗물을 그 지역 특색에 맞는 방법을 이용해 떨어진 자리에서 모으면 된다. 시골에서는 계단식 논이나 산비탈의 작은 소류지나 둠벙(웅덩이)을 이용하고, 정원이나 도로 등 작은 지역을 오목하게 만들어 빗물이 땅속에 침투하도록 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등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사용하면 된다.

도시에서는 커다란 건물 지붕이 있는 학교나 공공건물에서 빗물을 모아야 한다. 예를 들면 KTX역사의 넓은 지붕은 빗물을 받아서 화장실 용수로 사용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홍수가 나는 것은 옥상 지붕에서 떨어진 빗물이 모인 것이므로, 각 건물마다 특색을 살려 빗물저금통을 만들거나 옥상에서 빗물을 잡아주는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소중한 자산을 모으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 35동의 오목형 옥상 텃밭은 빗물을 모아서 홍수를 방지하고, 열섬현상을 해소하고, 식량도 생산하고, 이웃과의 정을 나누는 모두가 행복한 일석사조의 다목적 빗물 관리의 한 예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시의 많은 옥상에 이러한 시설이 만들어지면 기후변화 대응은 물론 기후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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