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55호 (2018년 04월)

[big story]비우니 채워지는 스웨덴식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보기

[한경 머니 기고 = 글·사진 이석원 여행전문기자]50년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인생의 나머지는 스웨덴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1년 넘게 스웨덴에서 살면서 일상의 외형은 점점 더 단출해졌지만, 삶의 만족도는 밀도 있게 차오르고 있다. 왜 그럴까.

[아내와 나는 흰색 벽의 거실을 작은 미술관의 전시실같이 만들고 싶었다. 전시실에는 그림과 함께 잠시 앉아서 쉴 만한 의자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래서 거실 벽에는 고갱과 샤갈과 모네의 그림으로 다른 가구들을 대신했다.]

어린 시절, 우리 또래들의 살림살이가 다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집 안을 채우는 것에 급급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은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여유에 대한 과시욕으로.

아버지가 외국 한 번 나갔다 돌아오실 때마다 집 안에 진열장이 하나씩 늘었다. 술병이며 각종 기념품, 밥 먹을 때는 써본 적도 없는 전시용 접시로 새로 산 진열장은 금세 찼다. 게다가 아버지는 1950년대 고교 시절 읽던 책들도 고스란히 모아 놓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이삿짐의 상당 부분을 책 박스가 차지했다.

할머니는 그릇을 사 모으셨다. 다락이며 집에 딸린 창고는 포장도 뜯지 않은 그릇과 냄비, 프라이팬으로 가득했다. 손주들 결혼할 때 주실 것이라며. 한 살 터울 남동생과 내 나이는 열두, 열세 살 남짓이었고, 여동생은 아직 유치원생이었는데 말이다. 스무 살이 넘었을 때부터는 이불이며 베개 등을 사 모으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결혼하면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 모은 책들은 방 안에 쌓였다. 쌓이는 책을 보면서 마치 대단한 학자라도 된 양 나 혼자 신이 났다. 여행을 다니면서부터는 기념할 만한 물건들을 들여놓았다. 좀 더 자란 후에는 지역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센터에서 오래된 벽시계며 안락의자며 가스등 램프 따위를 샀다.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좀 달랐다.

아내는 모든 것에서 심플한 것을 좋아했다. 집 안에 꼭 필요하지 않은 가구가 널려 있는 것을 싫어했다. 그 대신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하는 것조차 눈에 띄지 않게 감추어 두는 걸 좋아했다. 스웨덴으로 이주할 때, 결혼 후 8년을 살았던 집을 파는데, 집 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모델하우스 온 것 같다”고 했으니.

그러니 적어도 아내에게 미니멀 라이프의 전형인 스웨덴의 라이프스타일은 만족할 만한 곳이었고, 나에게는 생활 스타일을 바꾸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스웨덴에 오면서 버린 것들이 많다. 우선 옷가지들을 3분의 1로 줄였다. 손님이 오면 쓰던 여러 채의 이불 세트도 과감히 정리했다. 원래 가구는 꼭 필요한 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스웨덴으로 이사를 하면서도 더 채우지 않았다.

[복도가 있는 형태의 거실의 어두운 부분도 마치 미술관 안을 걷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거실은 미술관 속 작은 전시실이고 싶었다. 전시실은 그림과 의자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4인용 연한 베이지 톤 소파 하나. 그 옆으로 발코니를 향한 유리창 앞에 원목 콘솔이 놓여 있고, 4인용 식탁이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TV는 사라졌다. 한국에서 만든 TV는 스웨덴과 송출 방식이 다르다. 가져와봐야 스웨덴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과감히 버리고 왔다. 원래는 스웨덴에 와서 새로 사려고 했지만, 이 기회에 TV가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침실 가구는 퀸 사이즈 침대와 아주 작은 협탁뿐이다. 붙박이로 된 옷장이야 원래 있던 것이고, 침대 머리맡에 스탠드 램프를 놓기 위한 협탁도 아내 쪽에 하나뿐이다. 그 대신 내 쪽으로는 창틀에 스탠드 램프를 올려놓았다. 스웨덴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선망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창문마다 올려놓은 스탠드 램프다. 살다 보니 스탠드 램프 욕심이 생기다니.

아내의 방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화장대와 스톡홀름 이케아에서 산 심플한 책상 하나뿐이다. 흰색 벽과 하나가 돼 버린 화장대와 책상은 방 안을 더 밝고 간결하게 만든다. 마치 원래 그 벽에 붙어 있던 부속물인 양.

그나마 가장 많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는 곳이 서재다. 어지간한 책은 다 싸들고 왔다. 심지어는 스웨덴에서도 책을 샀다. 5개의 책꽂이에 가득한 책, 커다란 책상과 컴퓨터는 가장 ‘스웨덴스럽지’ 않은 공간으로 서재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은 나중에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부설 국제 도서관에 대부분 기증할 생각이다. 그곳에 있는 한국 코너가 가장 초라하다. 내 서재의 책들이 제법 그곳의 많은 공간을 채우게 될 것이다.

자동차 없이 살아보기
무엇보다도 스웨덴에 와서 비워낸 가장 큰 것은 자동차다. 지난 20년 동안 자동차가 없는 삶은 1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는 자동차를 살 궁리를 했다. 새 차를 살까? 중고차를 살까? 그러다가 누군가 자동차 리스 얘기를 해 거기에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당분간 자동차 없이 살기로 했다.

자동차가 없으니 걷기를 많이 한다. 천천히 걷기는, 내가 걷는 곳을 더 많이 알기와 같은 말이다. 걷다가 종종 걸음을 멈추고 길 위의 이것저것들을 구경하기와도 비슷한 말이다.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과 눈길을 주고받기도 하고, 짧은 인사를 나누기와 동의어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어지간한 거리를 걷다 보면 스톡홀름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임을 걸을 때마다 느낀다.


[집 주변은 스톡홀름 도심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이 가깝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책길과 산책길 주변의 벌판조차 스웨덴 사람들은 무언가로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집들의 간격은 멀고, 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의 휴식과 놀이의 공간이 충분하다.]

스웨덴 지하철의 좌석은 두 명씩 서로 마주보게 돼 있다. 앞에 앉은 모르는 사람이 거북할 수도 있지만, 반면 어떤 사람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는지 잘 알게 된다. 어느새 다민족 국가가 된 스웨덴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내 삶에서 자동차를 비워 버리니 사람과 길과 풍경이 새로 채워졌다.

가구가 별로 없는 집의 거실과 방에는 그림이 채워졌다. 모네가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오더니, 샤갈도 따라오고, 고갱도 온다. 거실 복도 하얀 벽이 허전하지 않게 파리의 풍경이 그 자리에 앉기도 하고, 고흐의 침실과 피카소의 파블로가 허전함을 채워주러 살포시 걸린다. 비록 진품 그림들은 아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하는 만족스러움이 집 안의 빈 공간을 채운다.

그것조차도 사 모으는 것이라면,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이 그렇듯 우리 몸조차 집에서 비워지는 일이 많다. 스웨덴으로 온 목적 중 하나가 싸고 자유롭게 유럽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스웨덴 생활 1년 만에 이미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에스토니아, 덴마크, 슬로베니아와 스페인을 다녀왔다. 우리 몸마저 집에서 비우니 우리의 마음은 고흐와 렘브란트, 시벨리우스와 고흐, 그리고 율리안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블레드 호수로 채워졌다.

[프랑스 화가 세잔을 찾아갔던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비워지면서 채워지는 또 다른 것은 사람이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삶을 살지만, 심심찮게 사람들의 발길이 집 안을 채운다. 당근 케이크를 구워 온 윗집 할머니는 어느새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사이가 됐다.

가끔 아파트 잔디밭에서 놀던 아랫집 아빠와 두 아들은 우리 집 발코니 식탁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날 좋을 때는 같은 아파트 주민들끼리 공동 그릴에서 스웨덴 남쪽 섬 고틀란드산 신선한 쇠고기를 구워 먹기도 한다. 한 손 가득 자기 먹을 고기와 맥주를 품에 안고. 그렇게 다른 것이 채워진다.

많이 가지지 않아도 행복하다
스웨덴의 삶은, 산다는 것 자체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굳이 가지지 않는 삶이다. 우리 동네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가도,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의 아주 오래된 비싼 아파트에 가도, 단데뤼드(Danderyds)의 호화로운 저택에 가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집 안을 채우지 않는다. 그래서 한결 심플하고 단정한 스칸디나비아풍 미니멀 라이프가 완성된다.

그들의 삶에서 배운 것은, 채우려고 애쓰지 말고, 비우려고 힘겨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움은 삶의 여유를 확장하기 위함이고, 그렇게 비워진 곳에 더 나은 삶의 여유를 채워 넣으면 된다. 내 집 공간의 여유가 늘어날수록 내 삶의 아름다운 마음은 채워진다는 것, 그게 스웨덴이 가지는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다. 


이석원 여행전문기자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25년간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 스웨덴으로 이주 후 프리랜서 기자와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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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3-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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