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56호 (2018년 05월)

[토종 농부, 황진웅 씨] 행복한 소농, 토종 씨앗에 답 있다

[big story] 소농의 시대 행복과 건강을 짓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공주에서 농사를 짓는 황진웅(56) 씨는 자신을 ‘토종 농부’라고 소개했다. 귀농을 하고 자연 친화적인 농사 실험에 나선 지 올해로 6년째다. 그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의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농사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씨앗에 있다고 강조했다.

황진웅 씨는 자신을 토종 농부라고 소개했다. 버들벼와 대추찰을 비롯한 벼 종류를 주로 심고 밀과 수수, 조를 비롯해 다양한 토종 곡물을 함께 재배한다.


“꽃 중에 가장 예쁜 꽃이 벼꽃이에요. 하얗거나 빨갛거나 까맣거나 각자 색깔이 있는데 요즘은 단작화로 품종이 한두 가지밖에 없으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죠.”

충남 공주에서 만난 황진웅 씨는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버들벼라고 소개한다. 그곳에 버들미 마을이 있어 통일벼 등 신품종이 확산되기 전에는 많이 키우던 벼라고 한다.

6년 전 귀농을 하기 전부터 황 씨는 토종 곡물에 관심이 많았다. 토종(재래종)은 오랜 기간 우리의 땅과 기후에 적응해 오면서 대대로 지켜져 온 선조들이 즐겨 먹던 먹을거리다. 대량 생산을 위해 개량된 외래종에 밀려 지금은 농업유전자원센터에 약 450여 종이 보관돼 있고, 일부 소농(할머니)들에 의해 소규모로 명맥을 이어왔다.

황 씨는 전국씨앗도서관협회 등에서 관련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토종 씨앗의 힘에 주목하게 됐다. “행복한 소농이 되기 위한 열쇠가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농업유전자원센터나 여러 활동가들에 의해 수집된 씨앗을 조금씩 받아 논밭에 심으면서 그는 토종 전도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게 됐다. 

“토종을 단순히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직접 농부들이 토종 씨앗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소규모 농사를 지어도 농부들이 자생할 수 있고 지역 농순환 경제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생산량 적어도 고부가가치 ‘토종의 힘’
황 씨는 농막에서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밭에 나가 실제 자라고 있는 것들을 보여줬다. 팔당 재래 호밀, 괴산 호밀, 구레 호밀, 봉화 쌀 귀리, 검은 겉보리, 검은 쌀보리, 뒤안 마늘, 달롱파, 삼동파, 돼지파, 오글이 아욱, 가시뿔 시금치, 둥근 시금치, 자주 감자, 분홍 감자, 참밀 등. 모두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버들벼 같은 경우에는 버드나무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그 옛날 누군가 어떤 특징을 보고 지은 이름이겠죠. 저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농부들이 이어받으면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이름들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성히 자란 풀같이 보이기도 하고, 눈으로는 구분이 어려웠다. 황 씨는 “증식포에서 시험 재배를 하고 종자를 늘려서 진짜 농사를 나가려는 것”이라며 “지금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청소년기로 한창 몸체가 늘어나서 생식 성장을 하면 종자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즉, 씨앗을 기르는 밭이다. 시중에서 씨앗을 구입해 뿌리는 게 아니라 직접 키워서 농사를 짓는 게 이곳의 특징이다. 그는 “농부가 자기 씨앗을 가지고 힘이 닿는 데까지 농사를 짓는 게 소농이라고 생각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논 1만2562㎡, 밭 1983㎡. 올해는 약 1만4545여 ㎡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 약 86종의 토종 종자를 가지고 있으며 버들벼와 대추찰을 비롯한 벼농사를 주로 하고, 앉은뱅이 밀, 단수수 등 토종 곡물에 관심이 많다. 홀로 짓는 농사치고 규모가 좀 커 보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올 때 대규모로 농약을 치면서 농사할 것 같았으면 농사를 안 했겠죠. 뭐 하러 해요.” 이렇게 말하기에 농사의 규모와 방식이 궁금했다.

씨앗을 키우는 밭 뒤로 농막이 보인다.


황진웅 씨의 농막에 걸려 있는 토종 곡물들.


소농은 무엇으로 사는가
  
황 씨는 작은 규모로도 경쟁력이 있는 농사를 지향한다. “취미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면 모든 농부는 수익을 고민해야 하고 시설 재배나 하우스를 안 할 경우 최소 9917㎡은 돼야 농사라고 할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농사를 지었을 때 매출 개념인 조 수익(세전 수익)은 3.3㎡당 3000원 선으로 3만3000여 ㎡에 지어도 한 해 3000만 원이고 그것도 종자, 비료, 기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기 전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문학적 자연농’이라는 표현을 썼다. 최근 자연 친화적인 농사법으로 부상하는 자연농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의 손길로만 키우는 것을 말한다. 황 씨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한국의 현실에서 자연농은 아직 요원한 일이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황 씨는 일정의 생산 규모를 위해 이모작을 하고 기계를 사용하지만 농약이나 비료는 쓰지 않는다. “그저 여러 작물을 함께 키우면서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초제로 풀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어느 정도의 풀이 있으면서 메뚜기도 키우고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환경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이 둘 다 살 수 있는 농사’의 방식. “적어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아보면 가까운 과거에는 모두 다 소농이었어요. 우리나라는 농업 기반 사회였고,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농사를 기반으로 한 삶을 살았는데 그때는 개와 닭, 소가 모두 같이 살던 식구였습니다. 소농의 가치를 복원한다는 것은 그러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존중을 회복한다는 뜻 아닐까요.”

그는 토종을 야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강한 생명력과 면역력이 특징이다. 수천 년 전부터 전통 농사의 방식으로 우리 땅에서 살아남아 온 종자이기에, 육종된 종자와 같이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토종벼는 키가 큰 편으로 화학비료를 쓰면 키가 확 커져서 태풍이나 바람에 더 쉽게 쓰러진다.

비료를 통해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늘리지 않기에, 관행 농법으로 키운 벼에 비해 생산량은 2분의 1, 3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 그 대신 희소성이 있는 쌀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출고가 기준으로 일반적인 벼품종의 두세 배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희소하다는 이유로 다섯 배씩 너무 비싸게 팔면 소비자가 한 번은 관심을 가져도 주식으로 쌀을 먹겠느냐”며 “합당한 가격으로 더 많은 농부들이 토종으로 농사를 짓고 건강한 쌀이 더 많은 소비자에게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황 씨가 1만4545여㎡ 규모의 논밭에서 이모작을 통해 거두는 매출은 연 3000만~4000만 원 사이다.

소비자에게는 ‘밥맛 좋은 쌀’도 중요하다. 토종쌀의 맛은 어떠할까. 황 씨는 “품종마다 다 다른 특성이 있어 모양이나 용도, 맛이 다 다른 게 특징으로 어떤 벼는 쓴맛을 내고 어떤 벼는 거친 맛, 또 어떤 것은 단맛을 내는 등 각자의 맛을 가지고 있다”며 “원자벼라고 하면 알이 큰 편이고 대추찰은 술을 만들면 좋고, 버들벼는 찰기가 있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토종 씨앗을 보관하는 창고를 따로 두고 있다. 자랑스러운 표정의 황진웅 씨.


‘가치 농업’을 통해 빵집 ‘아쥬드 블레’의 베이커와 협업한다. 사진은 앉은뱅이 밀로 만든 빵들.

다양한 종류의 토종 곡물들.


공동 마케팅·베이커와 협업 등 돌파구 모색
생산도 중요하지만 유통 방식은 소농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황 씨는 이제는 생산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유통의 혁신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생각이다. 

버들벼 중심의 동네 작목반을 만들고 한다. 또 공주와 충남을 기반으로 우리씨앗협동조합을 통해 공동 마케팅을 한다. 올해는 제분소를 만들어 농부들이 직접 가공까지 할 계획이다. 토종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힘을 모아 유통의 활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그는 “토종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씨앗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또한 서울에서 빵집 ‘아쥬드 블레’를 운영하는 베이커와 공동 작업을 했다. 황 씨가 재배하는 토종 앉은뱅이 밀로 빵을 만들고 빵 시연회와 같은 다양한 행사를 여는 식이다. 최근엔 농부, 성악가, 요리사가 한데 모여 씨앗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6월 중에는 밀밭에 화덕을 설치해 빵도 굽고 무대에서 시를 읽고 노래도 하는 자체 밀 축제를 열 계획이다.

혼자서 농사를 짓고 작목반을 이끌기에도 바쁜 시간, 이와 같은 방식을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농업의 구조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농부의 생산 방식과 그 결과를 공감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현장에서 농부가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농부가 정직하게 생산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때 소비자와 생산자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황 씨는 ‘씨앗 친구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친구들 중에는 슬로푸드의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도 있고, 토종 농사를 짓는 농부도 있다. 황 씨와 같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일종의 연대를 한다. 서울의 베이커와 협업하는 방식은 ‘가치 농업’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계약 재배의 방식이 아닌,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함께 농사도 짓고 행사도 기획하며 서로 윈윈(win-win)하는 방식이다.

“저 같은  사람은 어려운 현실을 알면서도 농사가 좋아서 시작했어요. 현재  농업의 구조에서 귀농 후 성공 케이스는 손에 꼽히는 일입니다. 기술이든, 작물이든 자기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시작할 것을 추천합니다.”

도시에서의 최우선 가치는 성장과 수익이었다. 황 씨도 한때는 그랬다. 그에게 도시는  ‘무한대’로 향하는 삶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이곳에서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농사를 짓는 거예요. 좋아하는 농사를 지으면서 책도 보고 시도 쓰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싶어요. 농사는 나이가 들어서도 힘이 닿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죠. 또 힘이 떨어지면 주변에서 함께 도와주는 게 농업의 방식이고 삶의 방식이에요. 이러한 농업의 방식, 가치 속으로 들어가면 불안하지 않아요. 그게 도시에서의 삶과 다른 점입니다.”

토종 곡물을 종류별로 펼치면 다양한 색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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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5-0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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