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수단은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자명종 시계로 시간을 보나, 스마트폰으로 보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가.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상속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의 상속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big story]상속 난제, 세대 공감으로 풀어야
라면이 한국에 처음 등장했던 1963년 삼양라면의 1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짜장면 1그릇이 25원, 담배도 16원 선이었다고 하니 절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비단, 변한 건 물가만은 아닐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도 변하고, 세대 간 생각의 간극도 점점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직장’에 관한 세대별 동상이몽만 봐도 그렇다.
최근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몬’이 공동으로 세대별 성인 남녀 4843명을 대상으로 직장의 가치에 대해 조사한 결과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절반 이상이 좋은 직장을 성공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속 성장과 경제 개발의 주역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경우 ‘성공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나’라는 질문에 73.5%가 ‘그렇다’고 답해 모든 세대 중 직장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 뒤로 전후세대(1940~1950년대 초반 출생자) 70.2%, 386세대(1960년대 출생자) 55.0%, X세대(1970년대 출생자) 51.9%로 조사됐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46.4%만이 ‘성공적인 삶을 위해 좋은 직장이 필수’라고 응답해 좋은 직장을 성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big story]상속 난제, 세대 공감으로 풀어야
‘성공적인 인생’에 대한 생각도 세대별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전후세대의 경우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삶(31.6%)’을 1위로 꼽았고,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며 가족과 화목한 삶(26.5%)’과 ‘돈을 많이 벌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26.5%)’을 가장 많이 꼽았다.

하지만 386세대와 X세대의 경우 ‘큰 걱정 없이 안정된 수입으로 가족과 화목한 삶’을 절반 이상이 선택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는 다른 세대에 비해 ‘수입은 적지만 좋아하는 일, 취미활동을 즐기면서 사는 삶이 성공적이다(27.5%)’고 답한 비율이 높아 차이를 보였다.

가족주의 쇠락, 세대 간 대화 절실
세대별 관점의 차이는 ‘효(孝)’에 대한 생각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효도계약과 불효자 방지 법안에 대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태도’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는 자녀가 생활비 등을 주는 것보다 자주 찾아오거나 안부 전화를 자주 하는 등의 ‘정서적 지지’를 더 원했지만, 자녀들은 부모 간병이나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을 최고의 ‘효’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효도계약 조건을 △신체·물리적 도움 △정서적 지지 △부모 간병 △경제적 부양 △규범적 의무 등 5가지 항목으로 압축한 뒤 각각에 대한 요구도를 4점 척도로 분석한 결과 부모 세대는 정서적 지지(3.14점)를, 자녀 세대는 부모 간병(3.29점)을 각각 ‘효도’ 항목의 1순위로 꼽았다.

특히 경제적 부양에 대해 자녀 세대는 3.16점을 부여하며 부모 간병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나, 부모 세대는 가장 낮은 점수(2.56점)를 주면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오히려 부모 세대는 ‘규범적 의무’ 항목에서 2.99점으로 자녀 세대(2.77점)보다 더 높은 요구를 보였다.

규범적 의무란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해 경제적·물리적 지원을 하거나 명절에 부모님 찾아뵙기, 조부모 제사 및 묘소 관리, 형제·친척 간 우애 있게 지내기 등과 같은 전통적 규범을 말한다.
즉, 부모 세대는 전통적 효 개념의 부양을 원하고 있는 반면, 성인 자녀들은 기능적 측면의 수동적이고 조건적인 부양을 선호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자녀 세대로 갈수록 ‘가족주의’ 가치관이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이런 인식 격차를 좁히는 것은 세대 간 의사소통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big story]상속 난제, 세대 공감으로 풀어야
상속, 세대 간 단절 아닌 연결
그렇다면 상속에 대한 세대별 인식은 어떠할까. ‘뒤를 잇다’는 상속의 사전적 정의대로 상속의 본기능은 세대 간 단절이 아닌 세대 간 연결에 더 가깝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이란 키워드를 떠올리면 대개 ‘부자들의 전유물’ 혹은 ‘편법 탈세의 수단’ 정도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특히, ‘헬조선’, ‘N포세대’로 대변되는 요즘 대다수 청년들에게 상속은 흡사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질 터. 기성세대에게도 상속이 마냥 반가운 주제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조만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오는 2032년쯤엔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90대 노부모, 60대 자식 세대, 30대 손자녀의 가족사진이 흔한 풍경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보다 10~15년 정도 시차를 앞서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일본만 보더라도 상속받는 자녀들은 50대 이상이고, 65세 이상 노년층이 전체 금융자산 중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노인들이 장롱 속에 돈을 넣어 두고 상속을 미루면서 ‘노노(老老)상속’으로 인한 세대별 빈부 격차도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상속의 역사>의 저자인 백승종 코리아텍 대우교수는 “20세기 전반까지는 상속제도가 어느 사회에서나 본래의 목적을 완수했다. 재산과 직업, 명성과 인맥을 다음 세대에 물려줘 사회적 안정과 가문의 영속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며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노상속 등 새로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제 상속의 본질, 사명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상속의 범주를 그저 부의 대물림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인류의 역사로 조명해보면 상속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상속을 대비한다는 건 작게는 한 가족에서 기업, 더 나아가 한 사회를 계승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상속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세대 간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녀들에게 자산을 물려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투자수익률이나 절세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녀들의 바른 가치관과 인성, 윤리의식 등 인적 자본과 가족들이 서로 신뢰하고 서로 협력해서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상속의 가치는 발현될 수 있다.

상속의 시간은 나이나 세대의 차이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얼마나 빨리, 체계적으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그 시간은 결정된다. 세대 간의 무관심, 대립이 아닌 이해와 포용, 대화가 담보돼야 우리 사회의 상속 시간은 제 시각에 맞춰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