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디지털 중독’ 편견 심각…문제 예방 필요
[한경 머니 기고=오연주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과의존대응팀 책임연구원] 매년 1월 말 또는 2월 초가 되면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의 주요 결과가 발표된다.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수치들, 새롭게 추가된 문항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정책적 함의들, 사회적 통념을 깨기 위한 설명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자료를 발표해도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은 대개 ‘우리나라의 디지털 미디어 중독은 매우 심각하다’라는 의미를 담는 문장들이 뽑힌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미디어 중독이 심각하다’는 언론 기사들은 단연 실태조사 결과의 핵심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편견도 만들어낸다. 첫째 편견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문제적 디지털 미디어 이용(Problematic Internet Use, PIU: 문제적 인터넷 이용은 인터넷 중독, 인터넷 과의존, 스마트폰 중독, 스마트폰 과의존 등 시기에 따라 다른 용어들로 지칭돼 왔는데 용어로 인한 혼선을 줄이기 위해 이 글에서는 문제적 인터넷 이용을 대표적인 용어로 사용함)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높은 인터넷 접근성과 기기 보급률을 주된 이유로 들기도 하며 문제의 예방과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장치가 존재하는 것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지표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나라만이 관련 국가 통계를 가지고 있어 정확한 비교가 어렵기는 하지만, PIU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일부 국가는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둘째 편견은 PIU를 ‘중독’과 동일한 현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PIU의 예방 및 해소 정책을 다루고 있는 주무부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관(한국정보화진흥원)은 2016년부터 해당 사안을 중독, 즉 질병의 관점에서 다루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사회·문화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독 행동을 질병으로 보는 질병 모델의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보는 선택이론이 부상한 학계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인터넷 중독 용어 사용 및 대체 용어 개발을 위한 델파이 연구’, 2017년).

셋째 편견은 PIU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히 ‘5명 중의 1명’과 같은 표현이 그러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데, 2018년을 기준으로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19.1%에 달하는 것은 맞지만, 그중 고위험군은 2.7%, 잠재적 위험군은 16.4%다. 고위험군은 PIU로 인해 일상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단계인 반면 잠재적 위험군은 그러한 문제들이 관찰되기 시작하는 단계로, 매우 심각한 수준의 문제를 가진 인구는 5명 중 1명 또는 100명 중 20명꼴이 아닌 100명 중 2~3명의 수준이다.

문제적 디지털 미디어 이용의 예방 및 해소 정책
‘우리나라의 디지털 미디어 중독은 매우 심각하다’라는 인식과 그로 인한 정부 노력의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관련 정책은 국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시기적으로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자리가 잡힌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들어 그 성과는 정량적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해 가장 큰 문제로 인식되던 청소년의 위험군 비율은 2015년부터 4년 동안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PIU의 예방 및 해소를 위한 정책은 당시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주도 아래 2002년 처음 시작됐다.
[big story] ‘디지털 중독’ 편견 심각…문제 예방 필요
그동안 주무부처가 정보통신부(2002~2008년)에서 행정안전부(2009~2012년)로, 그리고 다시 미래창조과학부(2013~2106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2017년~)로 바뀌었으며, 협력 관계를 맺는 부처들도 10개로 늘어났다. 지난 17년 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은 PIU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며 관련 정책의 점진적 개선과 변화를 이끌어 왔다. PIU의 예방 및 해소 관련 국제 정책은 크게 보호·규제·제도화 관점과 기회 증진·역량 강화 관점으로 분류된다. 전자는 디지털 미디어 이용의 통제와 이를 위한 법제도 마련을 통해 이용자를 PIU의 취약성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후자는 디지털 자원을 활용한 정체성 탐색, 정보 습득·공유, 사회적 관계 형성 등을 성장을 위한 기회이자 기본 권리로 인식하고, 위험의 경험을 통해 회복력과 독립성을 기를 수 있도록 위험의 최소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회와 위험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PIU 관련 장기적인 정책적 시도가 있었던 국가를 중심으로 기회 증진의 관점이 확산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전자에서 후자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 왔다.

우리나라 정책 변화의 주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국가정보화기본법’에 따라 관계부처 협동으로 수립하는 PIU의 예방 및 해소를 위한 종합계획이다. 2010년 제 1차 종합계획 수립 시에는 PIU로 인한 사이버 범죄 및 사회 통합 저하의 문제를 부각시키며 ‘보호’와 ‘규제’를 강조했으나, 2013년 제2차 종합계획에서는 모바일 기기가 삶의 일부로 통합되는 환경적 변화를 고려해 개인의 ‘이용 조절 능력’ 함양으로 초점을 옮겼다. 그리고 2016년 제3차 종합계획에서는 미디어 이용의 양적인 조절이 아닌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질적 이용 역량에 강조점을 두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변화했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디지털 미디어 중독을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보호와 규제 중심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 이용이 필요한 수준을 넘어, 삶 자체가 디지털화돼 가는 환경 속에서 기회와 활용에 방점을 두는 정책적 변화는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 예방 및 해소에서 디지털 시민 역량 강화로
지능정보기술의 확산과 함께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는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매개자·생산자로서 역할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이용자 역할의 확장은 지능정보기술을 비판적이고 책임감 있게 소비,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민 역량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부상과 그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 플랫폼 비즈니스가 공격적이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소비자의 자율적 의사결정권을 약화시키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관심 경제란 인간의 관심을 희소한 소비재로 바라보는 경영상의 접근 방식이다. 인간이 주어진 시간에 쏟을 수 있는 관심은 한정돼 있는 반면 정보는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가능한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소위 중독적 또는 습관 형성 기술(addictive 또는 habit-forming technology)이 사용되며, 이러한 기술은 PIU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최근 비판받아 왔다. 기존의 PIU 예방 및 해소 정책은 이용자의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변화의 주체를 개별 국민으로 상정해 왔다. 그러나 국민의 디지털 역량이 전반적으로 강화되고 디지털 경제 전체가 PIU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면서 앞으로의 정책은 개인,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디지털 경제가 갖는 문제들을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big story] ‘디지털 중독’ 편견 심각…문제 예방 필요
이에 올해 수립된 제4차 종합계획에서는 디지털 시민 역량 강화를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위의 그림과 같이 PIU와 관련된 다양한 행위자들과 개념들의 네트워크에 종합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재의 PIU 예방 및 해소 정책은 추진 과제에 있어서나 거버넌스에 있어서나 상당히 견고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인식 제고·예방 교육-치유 상담-치유 ­사회안전망 구축의 추진 과제는 2010년을 전후로 해 확립됐으며 다양한 부처와의 협업을 통해 영아부터 어르신까지, 가정에서부터 중앙 정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을 대상으로 촘촘한 예방·해소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는 중이다.

겉모습이 아닌 실질적 성과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근거 기반(evidence-based)의 정책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공익광고 제작 시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별과 인종, 감성적 소구 대 이성적 소구 메시지와 같이 세세한 부분들의 효과를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누어 반복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최종 콘텐츠를 결정하는 등 근거가 의사결정의 핵심이 되는 정책 추진 체계를 가지고 있다. 행동 변화가 필요한 영역에서 이와 같은 근거 기반 정책은 중요하나, 국내 정책 환경에서는 비단 PIU뿐만 아니라 다른 사안에서도 이와 같은 면밀한 근거 확보 작업이 부족하다.

또한 근거 기반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 관련 전공자들로 구성된 인력을 확대하고 전문성에 대한 적절한 처우도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수반돼야 할 것은 예산이다. PIU에 대한 관심과 우려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관계부처의 예산은 감소 또는 동결 추세다. 우리나라의 PIU 정책이 외연적 성장에서 나아가 질적인 성장을 거두기 위해 정책 대상의 특성에 맞게 추진 과제들을 섬세하게 변화시키고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예산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 보호·규제·제도화
☞ (프랑스)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전면 금지
- 2018년 9월부터 6~14세의 학생을 대상으로 쉬는 시간 및 점심시간을 포함해 전체 학교 일과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 대만: 미성년자 디지털 미디어 사용에 대해 부모 벌금 부과
- 2세 이하 영아의 디지털 기기 사용, 2~18세의 유아, 아동, 청소년의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해 부모 및 보호자에게 벌금 부과
☞ (영국) 소셜 미디어 이용 시간 규제 법제화 노력
- 복지부와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에서 아동의 소셜 미디어 이용 시간 및 접근 가능 콘텐츠 규제 의지 밝힘

■ 기회 확산·역량 강화
☞ 유럽연합 키즈 온라인(EU Kids Online)
- 유럽 연구 네트워크로 온라인 환경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을 이해하고 이를 위한 자원 발굴에 초점
☞ EU ‘Better Internet for Kids’
- 세이퍼 인터넷 포 키즈(Safer Internet for Kids) → 베터 인터넷 포 키즈(Better Internet for Kids)로 변화하면서 양질의 콘텐츠 생산, 인식 제고, 임파워먼트 등 역량 강화 강조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