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business Focus

은행이 도넛 가게로 들어간 이유는?
역세권 빌딩 1층에 화려하게 자리 잡았던 은행 점포가 최근에는 도넛 가게나 커피숍 등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종업종 간 궁합이야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짐을 싸들고 고객을 찾아 나선 은행 점포들의 이유가 궁금하다.

연간 방문객만 30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에 색다른 풍경이 포착된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 위치한 ‘크리스피크림 도넛’ 매장과 결합한 우리은행의 ‘베이커리 인 브랜치’다.

전체 198㎡ 규모의 도넛 매장 한편에는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과 공용 고객 휴식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다소 낯설 수도 있겠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번호대기표 대신 도넛과 커피를 즐기며 여유롭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데, 영업시간도 쇼핑몰의 이용시간에 맞춰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로 넉넉하다.

이 점포는 우리은행이 금융권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일명 ‘컬래버레이션 점포’로 커피 브랜드 ‘폴바셋’과 손잡고 지난 3월 동부이촌동지점에서 선보인 ‘카페 인 브랜치’에 이어 두 번째 점포다.

사실 3~4년 전 미래형 점포라고 떠들썩했던 ‘스마트 브랜치’가 유행처럼 번지다가 시들해졌고, 최근에는 신한은행의 ‘디지털 키오스크’ 등 무인점포까지 등장하는 와중에 은행 점포의 변신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은행 고객을 찾아 도넛 가게 안까지 들어와야 했던 은행 생태계의 변화는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월 5일 일일 은행 거래 건수가 9700만 건이나 됐어요. 이는 우리은행 자체로도 신기록에 가까운데 다소 씁쓸한 것은 은행창구를 직접 찾아 거래한 건수는 5%도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은행의 한 임원이 밝힌 이 같은 고백은 다소 충격적이다. 스마트폰 뱅킹 등 비대면 채널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설 연휴를 앞둔 시점에서 한산한 은행창구의 모습은 상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4일 밝힌 <2016년 1분기 국내 인터넷뱅킹 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입출금 및 자금이체 거래 기준으로 비대면 거래는 89.2%에 달한다. 10명 중 9명 정도가 은행창구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 뱅킹 등 비대면 채널로 금융거래를 해결했다는 소리다.

고객 속으로…이색 점포 속속 개설
은행 점포를 찾지 않는 고객. 여기서부터 은행권의 고민은 깊어진다. 통상적으로 은행 점포는 지역과 영업점 형태에 따라 소규모 점포는 7~8명, 대규모 점포는 20명 이상의 인력들이 배치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점포당 판관비(급여, 복리후생비, 퇴직급여, 임차료 등)는 2015년 말 기준 약 34억4000만 원으로, 전년 말보다 약 3억2000만 원이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점포당 이자수익은 2008년 145억1300만 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2년 120억7100만 원, 2015년 94억4100만 원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고객이 점포로 향하는 발길이 점점 줄수록 은행 점포도 생존을 위해서 주판알을 굴려봐야 할 시점이 된 거다.

사실 우리은행이 ‘컬래버레이션 점포’를 구상하게 된 것은 철저히 경제적 논리였다. 동부이촌동에 있는 자사 소유 부동산에 독립 점포를 열자니 부담이 됐고, 일부 공간을 임대해주면 그만큼 추가 수익도 거두면서 커피숍을 찾는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은행 점포에 머물게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구상에서였다. 실제 매장 내 ‘폴바셋’이 들어서며 임대수익이 늘어났으며, 내점 고객 수도 기존 대비 약 10%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게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우리은행은 이 같은 성공에 고무돼 유명 서점과의 복합점포를 구상 중이다.

금융과 유통의 만남도 눈여겨볼 만하다. SC제일은행은 지난 2015년 2월 신세계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고객들이 몰려 있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내 숍인숍 개념의 ‘뱅크샵’과 ‘뱅크데스크’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직원 2~3명이 상주하며 태블릿PC로 은행 업무를 처리 해주는 ‘뱅크샵’은 총 8곳을, 직원 1~2명을 배치한 초소형 점포인 ‘뱅크데스크’는 총 61곳을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점포들의 탄력적인 운영시간이다. 이마트에 입점해 있는 ‘뱅크샵’과 ‘뱅크데스크’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신세계백화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일반 점포에 비해 영업시간이 길다.

아예 타깃 고객층을 정해 놓은 특성화 점포도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국내 최초로 중국인 자산가를 위해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인터내셔널 PB센터’를 신설했는데, 중국어에 능통한 전문 프라이빗뱅커(PB)들을 배치해 중국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내년 6월에는 제주와 부산까지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KB금융그룹은 지난 5월 16일 금융권 최초로 기업금융 특화형 신복합점포 1호점인 판교종합금융센터를 개설했다. 이 점포는 은행, 증권, 보험 간 시너지에 초점을 맞춰 전문적인 투자은행(IB) 상품 서비스, 기업 최고경영자(CEO) 대상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은퇴 고객을 위한 VIP라운지를 확대해 눈길을 끌고 있는데 전국 850여 개 VIP라운지에 은퇴설계전문가와 공인자산관리 등의 자격을 보유한 직원을 전면 배치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영업점 축소, 비대면 영토는 확대
최근 시중은행들의 점포 운영 트렌드는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기존 점포 수는 줄이되 비대면 채널의 영토는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은행 점포 수는 2012년을 정점으로 점점 줄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국내 은행 점포 수는 총 7398개였으나, 2015년 말에는 7261개로 총 137개가 감소했다. 최근 3년간을 보면 약 420여 개의 점포가 줄어든 것이다.

특히 서울 및 경기 지역에서의 점포 수가 대폭 줄어들었는데 이는 그동안 출혈 경쟁으로 레드오션이 돼 버린 서울·경기 지역을 재정비하는 차원이 크다. 예를 들어 점포 수 감소 상위 3개 자치구(서울 강남구 14개, 중구 8개, 서초구 7개 감소)는 점포당 주민등록 인구보다 사업체 종사자 수가 더 많은 밀집 지역이었다.

전체적으로 줄어든 점포 수는 내점 고객을 늘리기 위해 과감하게 이종업종과 결합한 이색 점포를 개설하거나 경쟁 은행과 차별화된 특성화 점포, 자산관리 기능을 강화한 복합점포 등으로 빠르게 대치(代置)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비대면 채널의 강화도 영업점 전략의 큰 축이다. 비대면 채널을 통해 간단한 거래를 해결하고, 대면 채널은 자산관리 특화 창구로 활용해 나가겠다는 게 복안이다. 현금 입출금과 조회는 물론 인터넷뱅킹 및 스마트폰 뱅킹 신청을 비롯해 신규 통장 발급·제신고, 대출 신청까지 가능한 셀프 뱅킹 자동화기기 서비스는 영업점의 부담을 한결 덜어주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신한은행의 무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다. 지난 6월 7일 신한은행은 편의점 선두 사업자인 BGF리테일(CU)과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는데 이를 통해 영업점 창구 수준의 은행 업무가 가능한 디지털 키오스크를 CU서울대 서연점 등 CU편의점에 배치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도 이 같은 디지털 키오스크를 내년 초 50여 대 규모로 도입키로 하는 등 기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준을 넘어선 셀프 뱅킹 서비스는 금융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비대면 채널 경쟁은 금융 플랫폼 경쟁으로 이어지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선두주자는 우리은행으로 국내 최초 모바일 전문 은행 위비뱅크, 모바일 메신저 위비톡, 통합 멤버십 위비멤버스를 내놓은 데 이어 오픈형 온라인 쇼핑몰 위비마켓을 8월 중 출시해 종합 금융 플랫폼을 구축, 모바일 금융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에 KB국민은행은 모바일 생활금융 플랫폼 리브(Liiv)를 지난 6월 28일 출범시켜 자사 고객이 아니어도 은행 영업점 방문 없이 입출금통장을 개설할 수 있고, 외화 환전과 해외 송금도 별도 회원 가입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뒤늦게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여기에 더해 KEB하나은행(하나멤버스)과 신한금융(신한 FAN) 등의 모바일 멤버십 경쟁도 치열한데 은행, 증권, 보험 등 그룹사의 통합 포인트를 내세워 충성스러운 모바일 고객군을 구축하려는 영업 경쟁은 금융감독원이 나서 자제를 요청할 정도다. 현재 하나멤버스는 550만 명, 신한 FAN클럽은 4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며 연내 은행 멤버십 1000만 명 시대에 바짝 다가서 있다.

은행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비대면 채널은 간단한 금융 서비스나 고객 모집 창구로, 대면 채널은 특정 고객군을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 창구로 이원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도 점포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특정 고객군을 점포로 유도하기 위한 이색 점포 개설은 은행들의 생존 전략 차원에서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 일러스트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