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앞으로 추진할 경제정책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더불어 국제질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세계 경제 질서의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트럼프노믹스의 미래
“대통령 취임 첫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선언하겠다.”

지난 11월 8일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보호무역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이 앞으로 추진할 경제정책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보호무역주의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앵그리 화이트는 저학력·저소득 블루칼라 백인 남성들을 말한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든 앵그리 화이트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건 트럼프를 선택했다. 특히 지역적으로 볼 때 과거 제조업 기반으로 미국 경제의 중심지였지만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인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에서 트럼프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월등한 우세를 보였다. 트럼프는 그동안 불공정한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크게 줄어들었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의 정권인수위원회도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내 우선적으로 추진할 과제에 TPP 탈퇴와 NAFTA 재협상을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TPP가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TPP는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멕시코, 칠레, 페루 등 12개국의 다자간 무역협정을 말한다. 12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GDP의 38.2%, 교역규모는 25.7%에 달한다. 12개국은 지난해 10월 협상을 타결하고 의회에서 비준 절차를 진행해 왔다.

NATFA도 자칫하면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 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1987년 체결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NAFTA를 ‘사상 최악의 협정’이라고 비판해 온 트럼프는 취임 100일 내 캐나다, 멕시코와 재협상하고 미국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취임 200일 내 탈퇴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NAFTA가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급해진 캐나다와 멕시코 양국은 미국과 재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또 한·미 FTA를 비롯한 미국이 체결한 모든 FTA를 다시 검토하고 재협상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에서 한·미 FTA를 ‘재앙(disaster)’이라고 표현하면서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이라고 비판해 왔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는 앞으로 우리나라에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무역전쟁을 선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미국과의 교역에서 부당 이득을 본다고 주장해 왔다. 환율조작국 지정 자체는 무역전쟁의 수단으로써 실질적인 효과가 거의 없지만 다른 수단과 맞물릴 경우 고율의 관세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 온 중국으로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때 모든 중국산 수입 제품에 최고 45%의 징벌적 상계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 로드맵
일본 다이와증권은 트럼프의 발언대로 중국 제품에 45%의 관세를 매길 경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87%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왔다. 이는 미국이 취할 수단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로 매년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주장해 지적재산권 침해나 관행적인 기술 이전 요구에 대해 비관용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각종 조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악의 경우 미국에서 자금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잔액은 지난 8월 말 기준 1조1900억 달러나 된다.

트럼프가 앞으로 추진할 경제정책에서 가장 주력할 부분은 일자리 창출이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파격적인 감세 정책과 규제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법인세를 기존 35%에서 15%로 인하하겠다는 방침이다. 개인소득세는 현행 소득세율 7단계에서 3단계인 12%, 25%, 33%로 간소화하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39.6%에서 33%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또 상속세를 폐지하고 해외 수익금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 적용되는 세금도 35%에서 10%로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세수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외국으로 간 자국 기업들을 돌아오도록 장려하고 내수 경기를 활성화해 경기 전체가 살아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미국 내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본사를 옮기거나 해외 본사 또는 지사에 이자 등의 형태로 현금을 해외에 쌓아 두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이런 자금을 자국으로 들여오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월가 규제도 대거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월가를 옥죄고 있는 강력한 금융 규제 강화법인 ‘도드-프랭크법’을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도드-프랭크법’은 오바마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 개혁을 위해 2010년 7월 도입했다. 이 법의 핵심은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된 이른바 ‘대마불사’의 폐해를 깨기 위해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을 분리한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상업은행은 자기자본 거래를 일정 규모 이하로 규제하는 ‘볼커룰’이 적용된다. 볼커룰은 은행지주사와 대형 비은행금융사가 헤지펀드,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규모를 자기자본의 3%로 제한하고 있다.

또 대마불사를 막기 위해 부실 금융사 정리 절차가 마련됐고, 금융사의 횡포를 차단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와 파생상품 거래 규제 등도 담고 있다. 월가는 그동안 이 법이 경기 회생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서 규제 완화를 주장해 왔다. 트럼프는 각종 규제 때문에 은행이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통해 은행에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해도 기업과 가계로 돈이 흘러들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인프라 건설(사회기반시설)에도 대대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트럼프는 인프라 건설에 5000억 달러(624조 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공약하면서 이를 ‘1조 달러 재건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했다.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너 시티(inner city: 낙후된 도심 지역)를 재개발하고 고속도로, 교량, 터널, 공항, 학교, 병원 등을 새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인프라 건설에 미국산 철강을 사용해 꺼져 가는 미국 철강 산업에 대한 수요를 다시 살리겠다는 복안도 공개했다. 트럼프는 연임하면 인프라 관련 총지출을 1조 달러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재원 확보 방안으로 석유 등 에너지 산업 규제 완화를 제시했다. 이들 업종을 규제 완화로 성장시킨 뒤 늘어난 세수를 인프라 부문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인프라는 1930년대 집중 건설돼 노후화됐기 때문에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계획은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연상시킨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 내에 개발되지 않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의 가치가 50조 달러에 달한다며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환경오염을 우려해 극력 반대해 온 키스톤XL 송유관 건설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앨버타 주의 유전과 텍사스의 정유 시설을 잇는 키스톤XL 송유관이 건설되면 하루 83만 배럴의 원유가 미국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이런 정책이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리고 에너지 자립을 이끈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다. 특히 그가 이런 에너지 정책을 추진할 경우 원유 공급 과잉으로 국제유가가 대폭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