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은 급변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많다.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는 데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도 출범한다. 유럽도 2017년 3월에는 네덜란드 총선, 5월에는 프랑스 대선,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잇달아 예정돼 있다. 이 같은 과도기에 한국 경제의 과제는 무엇인가?
정유년 한국 경제 어디로?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2017년을 내다보는 수많은 예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변화’다. 그중에서도 정치 분야의 변화다. 뉴밀레니엄 시대 이후 국가최고통수권자를 뽑기 위한 대통령 선거(의원내각제의 경우 총선)가 한꺼번에 여러 국가에서 예정돼 있는 해가 2017년이다. 실제로 교체가 확정됐거나 교체될 가능성도 높다.

1월 20일에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 정책 우선순위도 ‘금융 완화’에서 ‘재정 지출’과 ‘감세’로 변경된다. 대외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차별적 보호주의(대미국 흑자국은 종전보다 더 강력한 보호주의,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공존 모색)’를 추진할 것으로 보여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격변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올해 3월에는 네덜란드 총선, 5월에는 프랑스 대선,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잇달아 예정돼 있다.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3월부터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도 시작될 예정이다. 국수주의를 지향하는 극우 세력이 득세할 경우 유럽통합의 앞날에 최대 시련을 맞을 수 있다.

일본은 추진 5년 차를 맞는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가 최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1단계 ‘발권력을 동원한 엔저 유도’, 2단계 ‘미국식 양적완화’, 3단계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일본은행(BOJ)이 추가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금융 완화 수단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중국도 ‘2년 차 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과 대내외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13차 5개년 계획(2016∼2021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2016년 1월), 위안화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IMF SDR) 편입(2016년 10월)이 2017년은 모두 2년 차를 맞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서방 세력 확장,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인도의 화폐 개혁 성과는 모디노믹스(모디 정부의 경제정책)의 운명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경제의 회복 여부도 우파로 돌아선 이 지역의 이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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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유럽도 ‘정치의 계절’
그 어느 국가보다 격변을 치를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가 한국이다. 일단 대외 변수가 만만치 않다. 그것도 우리 경제에 영향이 큰 국가일수록 변수가 많다. 대내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을 치르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는다. 집권당 교체까지 겹칠 경우 정책 변화도 예상된다.

정유년을 맞는 우리 국민 사이에는 새해를 맞는 기대보다 ‘경기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어렵다’, ‘경제정책은 뭐 하나 되는 게 없다’ 등의 불만이 많이 들린다. 잠시 풀릴 조짐을 보였던 우리 경제의 혈액인 돈도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국정 난맥상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음에 따라 다시 꽁꽁 얼어붙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경제 활력지표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를 꼽는다. 통화유통속도란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돈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정 기간에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통화승수다. 통화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로 나눈 것으로 신용창출 능력을 말한다. 통화승수는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 보유 성향과 예금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 등에 의해 결정된다.

통화유통속도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3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9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0.6대로 다시 추락했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경제 활력지표인 예금회전율과 요구불예금회전율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국 등 각국이 통화유통속도가 살아나면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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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이 지표를 처음 발표했던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통화승수는 17배로, 2년 전 경제 활력의 판단 기준인 20배 밑으로 떨어진 이후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과 국민의 현금 보유 성향이 늘어나 시중에서 돈이 퇴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돈이 돌지 않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좀비 현상’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 그리고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정책당국에서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어떤 신호를 준다고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인 기업과 국민은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정책 무력화(policy ineffectiveness)’ 명제에 걸려 있는 것이 정유년을 맞는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경기 부양 대책으로 한국은행이 주력해 온 통화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여김에 따라 금리 인하와 총수요 간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 통화정책 전달 경로(통화 공급→금리 인하→총수요 증가→경기 회복)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제는 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는 점이다.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우리의 금리 수준을 평가해보면 기준금리 1.25%는 적정금리 1.8%(존 테일러 교수 추정)에 비해 낮게 나온다. 더욱이 2016년 12월에는 미국의 중앙은행(Fed)이 추가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적정수준보다 훨씬 낮게 기준금리를 떨어트려 경기 부양을 모색하는 방안(ECB와 BOJ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 여건에서는 가계부채 증가, 금융사 수익 악화 등과 같은 경제주체의 현금흐름상 문제로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한국은행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전처럼 이주영 한국은행 총재의 소신 있는 행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작은 정부론’에서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트럼프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이 추세는 더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년 한국 경제 어디로?
금리 인하 어려울 듯
통화정책이 무력화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가 돼 경기 부양 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크게 2가지 방안이다. 하나는 재정상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과, 다른 하나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시달리는 국가는 세금을 감면해주는 안이다. 트럼프 정부는 모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의 경우 2가지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 부양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은 그만큼 민간 부문에서 지출이 위축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 때문에 부양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 3배에 달했던 재정지출의 승수효과는 1.5배 내외로 떨어졌다.

세금을 감면하는 안도 쉽지 않다. 요즘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있어서는 세금 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소비 대신 저축됨에 따라 경기를 더 위축시키는 ‘구인 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효과는 세율이 높으냐(래퍼 곡선상 세율과 세수 간 ‘부의 관계’에 있는 비표준 지역)와는 별개의 문제다.

정유년 초부터 각종 위기설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위기설의 실체를 면밀히 뜯어보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유동성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컨트롤타워 부재, 경제 입법 지연과 정책 운용 미숙으로 비롯된 ‘경제 시스템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제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 현실에 대한 진단부터 선행돼야 한다.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시급한 것은 국정의 난맥상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국정 실정을 덮기 위해, 아니면 탄핵 이후 본격화될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대중영합적인 땜질식 단기 처방이다. 후자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기업에도 우리 경제 내에서 안정된 경영 활동을 보장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뼈저리게 느끼듯이 특정 기업에 막대한 이권이 보장되는 사업을 허가해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개운치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위기감만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국민에게도 경제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해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위기감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지금은 경제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진심으로 정책 수용층의 협조를 구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뜻대로 안 되면 ‘과거 정부와 언론, 남의 탓’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정책 여건은 ‘3고(불확실성 만연, 공급 과잉, 과다 부채)’와 ‘3저(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로 대변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해 정책 무력화 명제에서 자유로운 정도, 즉 ‘완충 능력(buffer capa-city)’에 따라 우리 경제의 명암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