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용등급 ‘적색경보’ 조기경보 체제 구축 시급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며 ‘적색경보’를 보내고 있다. 북핵 위기 등 한반도 리스크를 이제 글로벌 위험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실효성 있는 조기경보 체제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북핵 위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던 국제신용평가사가 첫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 무디스는 “북핵 위기가 장기화되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Aa2)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의 피치도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연례 정기 평가를 앞둔 시점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무디스의 경고는 미묘한 때에 나왔다. 올 들어 6월까지 국내 증시에서 9조 원 이상 매수했던 외국인이 두 차례에 걸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탄도미사일 일본 상공 침해, 6차 핵실험이 이루어진 지난 7월 이후 지금까지 2조6000억 원 이상 매도했다. 원화표시 채권시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무디스의 영향력이다. 국제신용평가 시장에서 과점도를 나타내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erfindahl-Hirschman Index, HHI)’를 산출해보면 독과점 시장 여부의 판단 기준인 1800을 초과할 만큼 3대 평가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노력에도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3대 평가사 중에서도 무디스의 영향력은 가장 높다.

ICBM과 6차 핵실험에 대한 외국인 시각도 종전과 다르다. ICBM은 지리적 한계선을 극복한 데다 핵은 ‘바세나르 협정(핵과 핵무기, 생화학 무기의 국가 간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자는 국제협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사태와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아니라 글로벌 위험으로 보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무디스의 경고가 한국 금융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본격 이탈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자금 흐름은 캐리 성격이 짙다. 한마디로 환차익과 금리차를 겨냥해 거래한다는 의미다.

기준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지난해 8월 이후 외국인은 시세 차익(코스피 지수 기준) 18%, 환차익 7% 등 25% 이상 한국 증시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가장 높은 수익을 지향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폴 싱어가 운용하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목표수익률이 20%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다.

무디스를 비롯한 3대 평가사는 ICBM 발사, 6차 핵실험과 같은 ‘테일 리스크(정규 분포상 양쪽 꼬리 부분으로 가능성은 희박하나 발생하면 파장이 큰 위험)’가 발생하면 언제 국가신용등급을 내리느냐 하는 점이다. 목표수익률을 다 채운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외국인 자금은 의외로 크게 이탈한다.

◆북핵 리스크 장기화 시 성장률 저하 우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가 중심이 돼 신용평가와 관련된 다양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 왔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도 2007년 8월부터 3대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 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규정을 대폭 개정할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독립적인 신용평가사 설립 방안을 추진해 왔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왔던 신용평가사의 독과점적 지위에 따른 집중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공시, 투명성, 책임감 등을 강화했다. IOSCO는 각 신용평가사 홈페이지에 신용평가 방법론, 과거 실적자료 등을 공개하고, 신용등급 산정 모형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또 하나 문제였던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주요국 정책당국은 신용평가사 관련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시를 확대, 신용평가 업무의 독립성 확보 등과 같은 이해상충 방지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과 EU도 이 같은 IOSCO의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거나 강화해 적용해 왔다.

3대 신용평가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신용등급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평가모형과 방법론에 대한 정보공시 확대, 구조화 관련 증권의 신용등급 표시방법 개선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 이와 별도로 국제결제은행(BIS)은 기존 신용등급 뒤에 신용등급 변동성(v), 신뢰도(c), 독립변수의 질적 정보(q) 등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를 추가하는 방법을 제안해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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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편 내용에 따라 각국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 실적을 보면 하향 조정 건수가 상향 조정 건수를 상회하고 관찰 대상도 부정적 대상이 긍정적 대상을 상회해 위기 이전보다 엄격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햇수로 10년째 되는 올해 상반기에도 신용등급이 올라간 국가보다 떨어진 국가가 많았다.

금융위기 이후 3대 평가사가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왔다. 금융위기 이전보다 지정학적 위험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거시경제 위험, 산업 위험, 재무 위험 비중을 높였다. 지정학적 위험이 경제기초여건(fundamen-tals)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지 않는다.

지난 9월 7일 무디스 보고서에서 북핵 위험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감안해 시나리오별 신용등급 조정 방향을 내놓은 것도 같은 이치다. 북핵 위험이 장기화되면 ‘신용등급 하향’, 단기에 그칠 경우 ‘전망만 부정적’으로 조정할 계획을 밝혔다. 3대 평가사는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 사전에 전망을 조정하고 6개월이 지나면 신용등급을 조정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계량 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세계 지정학적(GPR) 지수가 50포인트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북한과 직접적으로 대치해 있는 한국 경제의 경우 지정학적 위험이 장기화되면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클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시나리오만 아니라면 외화 보유, 재정 건전도와 같은 완충 능력을 감안하면 한국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무디스는 보고 있다. 국면전환모형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라 위기 가능성을 추정해보면 낮게 나온다. 국면전환모형이란 환율에 내재된 절상과 절하, 위기 구간 정보를 확률 값으로 추출해 위기 가능성을 판단하는 방식을 말한다.

북핵 위기에 대한 첫 공식적인 해외 시각인 무디스의 경고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주변 4대 강국과 북한에 비해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여건에서 우리 국민(특히 정치인)이 ‘서로 네 탓’만 한다면 경제적 비용이 커지고 국가신응등급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프로 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공공선)’ 정신을 토대로 애국심을 발휘해야 할 때다.

북핵 이후 거론되는 여러 대책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실효성 있는 조기경보 체제(Early Warning System, EWS)’를 구축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핵 위기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것보다 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한 외자 이탈을 경험한 국가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이 특징은 위기 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급격한 외자 이탈이 발생한 국가들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금리가 급등한다는 점이다.

CDS 금리와 외자 유출입과의 관계를 보면 CDS 금리가 장기 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2배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외자 유입이 감소됐다. 변동성이 더 심해져 장기 평균치에서 4배를 벗어나면 CDS 금리가 이전보다 더 빠르게 급등하면서 외자 유입이 갑작스럽게 멈추고 곧바로 이탈 단계로 전환됐다.

이때부터 위기발생국의 통화가치는 절하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당시에는 절상되다가 해외 자본 유입이 갑자기 중단 이후 곧바로 대량 이탈로 급진전되는 과정에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국제 간 자금 흐름이 투기적인 속성이 강한 자금에 의해 주도됨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심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기별로는 급격한 자금 이탈이 발생한 국가의 통화가치가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3배를 벗어나거나 해당 연도 절하율이 직전년도의 절하율을 10%포인트 상회할 경우 이전보다 빨라지는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외환위기로 악화됐다. 이때 위기발생국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인식되면 CDS 프리미엄이 빠르게 떨어지는 진정 국면으로 들어갔다.
한국, 신용등급 ‘적색경보’ 조기경보 체제 구축 시급
◆금융시장 위기상황 시나리오는

하지만 위기발생국들의 외화 유동성에 의심이 갈 경우 투기성 자본들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유동성 지원 등과 같은 계기가 마련되기까지 혼란 국면이 지속됐다. 이 단계에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통화표시 자금 조달이 곤란하기 때문에 급격한 자금 이탈이 발생하면 외환에 대한 초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심각한 외화 부족에 직면했다.

그 후 주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경제주체들의 디레버리지(부채 축소, 저축 제고), 통화가치 절하에 따른 대차대조표 효과 등을 통해 비교적 큰 폭의 실물경기 침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경우 실물경제 침체가 또 다른 외자 이탈을 유발하는 나선형 악순환 위기에 빠지는 국가도 있었다.

그런 만큼 모든 위기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면 정책당국을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전에 준비가 가능하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비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이런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신호등 체제를 활용한 조기경보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과거 위기발생국의 공통적인 경로를 토대로 볼 때 일단 CDS 금리 등 위기 관련 지표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거짓 신호’ 여부와 관계없이 ‘파란불(경고 Ⅰ)’을 켠다. 그 후 CDS 금리가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2배로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이 줄어들면서 환율변동이 심하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꾼다(경고 Ⅱ).

상황이 더 악화돼 CDS 금리가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4배 이상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 규모가 장기 평균치에 비해 2배 이상 감소하거나 곧바로 순유출세로 바뀌고, 환율이 급등세로 돌아서면 ’노란불‘에서 ’주황불‘로 한 단계 격상(경고 Ⅲ)시킨다. 최종 단계로 통화 절하 폭이 직전년도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확대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주황불’에서 ‘빨간불’로 전환(경고 Ⅳ)한다.

경험국 사례로 볼 때 ‘경고 Ⅲ’ 단계에 가면 그때서야 국민들이 ‘경제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늦어도 ‘경고 Ⅱ’ 단계에서 알아낼 수 있다면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흥국 위기에서 돈을 많이 벌었던 조지 소로스가 ‘조기경보 체제’를 구축해 ‘경고 Ⅱ’ 단계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