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속철 굴기’ 뜨거운 질주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중국의 ‘고속철 굴기(屈起, 우뚝 섬)’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은 102개국과 고속철 수출 계약을 맺었는데, 특히 고속철은 ‘유라시아판 마셜플랜’으로 불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푸싱(復興, 부흥)’호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최대 도시 상하이 간 노선을 운행하는 제2세대 고속철의 이름이다. 이 고속철의 운행 속도는 평균 시속 350km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이 고속철은 1318km인 베이징~상하이 노선을 4시간 28분 만에 주파한다. 중국이 100%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고 자랑하는 이 고속철의 이름인 푸싱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슬로건에서 따왔다.

중국은 원래 일본의 신칸센, 독일의 ICE(Inter City Express), 프랑스의 TGV(Train à Grande Vitesse)로부터 기술을 이전 받던 고속철 후발주자였다. 기존에 가장 빠른 고속철은 운행 속도가 320km인 일본의 신칸센과 프랑스의 TGV였지만 중국의 고속철이 지금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일주일 앞둔 2008년 8월 1일 베이징~톈진 노선에 고속철을 처음 투입하면서 고속철 시대를 열었다. 당시 고속철의 이름은 ‘허셰(和諧, 조화)’호였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의 통치 이념인 모든 국민이 잘 사는 ‘조화로운 사회’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후 중국의 고속철은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 26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광둥성 광저우를 연결하는 우광 고속철도가 개통됐을 때 허셰호는 순간 최고 속도 시속 394.2km, 평균 시속 341km를 각각 기록하는 등 푸싱호와 차이가 없을 정도로 운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1년 7월 저장성 원저우에서 고속철이 추돌해 39명이 사망한 뒤 중국 정부는 일부 노선에서 350km로 운행하던 고속철의 속도를 일률적으로 300km로 낮췄다.

당시 사건을 교훈 삼아 중국 정부는 그동안 고속철의 기술과 안전 문제를 보강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6년 만에 제2세대 고속철을 개발하게 됐다. 푸싱호는 허셰호보다 승차 공간이 10% 정도 넓어졌고 소음이 줄어 승차감이 크게 개선됐다. 내구성을 높인 덕분에 수명도 30년으로 늘었다. 기존 고속철의 수명은 20년이었다. 운행 가능 거리도 유럽 기준 20만km보다 3배나 긴 60만km에 달한다.

고속철은 인터넷쇼핑, 알리페이(모바일결제), 공유자전거와 함께 중국의 신(新)4대 발명품으로 꼽힌다. 과거의 4대 발명품(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만큼이나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신4대 발명품은 중국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 않아 ‘짝퉁’이라는 비판도 들어왔지만 중국 기업이 거대 시장을 기초로 국산화 등을 통해 기술을 개량해 다시 해외에 역진출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의 고속철은 2016년 말 기준 운행 노선 거리가 총 2만2000km로 전 세계 고속철 노선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오는 2020년까지 이를 3만km로 연장할 계획이다.

중국은 4종 4횡 고속철도망을 완성한 데 이어 전국의 현(縣)지역까지 이르는 8종 8횡 고속철도망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8종 8횡이 완성되면 고속철 노선이 4만5000km에 달하게 된다. 말 그대로 전국을 거미줄처럼 고속철로 촘촘하게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푸싱호를 앞세워 전 세계 고속철 수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철로총공사(CRC) 측은 “푸싱이라는 단어는 전 세계 고속철 분야를 주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고속철, 일대일로 프로젝트서 핵심 역할

중국의 ‘고속철 굴기’는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중국은 102개국들과 고속철 수출 계약을 맺었다. 액수로는 1430억 달러(162조6000억 원)에 달한다. 철도차량의 세계 시장 점유율도 30%를 넘는다. 중국이 고속철을 대량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차량 제작 기술력과 세계 최장 노선 시공 경험, 값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저렴한 건설비용 덕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세일즈 활동을 벌이는 등 중국 정부는 고속철을 수출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켜 왔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고속철 수입 국가들에 차관 제공 등 각종 혜택까지 약속해 왔다.

특히 중국은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던 고속철회사들을 통폐합해 규모의 경제도 달성했다. 국유(국영)회사이자 양대 고속철 제조사인 중궈난처(中國南車, CSR)와 중궈베이처(中國北車, CNR)는 중국 정부의 합병 방침에 따라 중궈중처(中國中車, CRRC)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 고속철 제작업체가 된 중궈중처는 2015년 6월 8일 증시에 처음 상장됐을 때 총액이 130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세계 최대 제조업체인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에 이어 세계 2위의 제조업체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고속철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대일로는 지난 10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 대회에서 최고 규범인 당장(黨章)에 삽입됐다. 최소한 향후 5년간 이 정책에 당과 국가의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다.

일대일로는 도로, 철로, 항만, 공항 등 대규모 인프라를 지렛대로 삼아 유라시아 대륙, 동남아시아, 인도양, 아프리카 지역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핵심 전략이다. 제19차 당 대회에서 1인 체제를 공고히 한 시 주석이 그동안 적극 추진해 온 프로젝트가 일대일로다. 따라서 앞으로 그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일대일로는 일종의 ‘유라시아판 마셜플랜’이다. 마셜플랜이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서유럽 재건 계획을 일컫는다. 일대일로 규모는 마셜플랜의 100배가 넘는다. 일대일로는 62개국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63%, 상품 교역 규모의 35%에 달하는 막대한 경제권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국가에 향후 5년간 최대 1500억 달러(168조7500억 원)를 투자할 방침이다.

물론 중국의 야심 찬 고속철 진출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각종 규제와 비용 문제 등으로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국 고속철 사업이다. 중국은 2014년 태국과 수도 방콕과 동북부 나콘라차시마를 연결하는 250km의 고속철 건설 사업에 합의했다.

하지만 기술 이전과 자금 조달, 개발 지분, 인력 채용 절차 등을 놓고 양국의 갈등이 불거지는 바람에 착공이 지연됐다. 그러다 지난 7월 태국 정부가 최종적으로 사업을 승인했지만 이번에는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싸고 양국이 마찰을 빚으면서 사업이 또다시 연기됐다. 자칫하면 계약이 파기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일본을 따돌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수주한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도 난관에 부딪혔다. 중국은 수도 자카르타와 제3도시 반둥을 잇는 150km의 고속철 건설 사업을 2016년 초 착공식을 갖고 시작했지만 현지의 복잡한 토지 수용 절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고속철이 통과할 산악 지역에 추가로 터널 공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사업비가 52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늘게 됐다.

중국이 리비아에서 진행한 수도 트리폴리와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를 잇는 35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 사업도 백지화됐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또한 베네수엘라에서 총연장 468km의 고속철 사업을 수주했지만, 국제유가 폭락으로 재정 악화에 직면한 베네수엘라 정부가 사업 추진을 미루고 있다. 이처럼 일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고속철 수출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고속철 독주에 견제도 치열

중국의 ‘고속철 굴기’에 맞서 독일과 프랑스가 힘을 합치고 있다. 과거 고속철 선두주자였다가 중국에 추월당한 독일과 프랑스는 더 이상 중국에 밀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가 철도차량 부문을 합병한다. 알스톰은 TGV를, 지멘스는 ICE라는 고속철을 생산해 온 업체들이다.

두 업체는 합병으로 신설될 회사 지분을 원칙적으로 50%씩 소유하지만, 지멘스가 설립 이후 2%의 지분을 추가 취득할 권리를 갖게 돼 사실상 지멘스가 경영권을 갖게 된다. 기업 이름도 ‘지멘스-알스톰’으로 확정했다. 새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알스톰의 앙리 푸파르라파르주가 맡게 된다.

두 회사는 2018년까지 통합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두 회사의 철도 부문 매출은 151억 유로(2016년 기준 20조 원) 규모이며 종업원 수는 5만9990명이다. 통합 4년 뒤에는 연간 4억7000만 유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합병 결정은 중궈중처와 경쟁하기 위한 것이다. 고속철 차량 생산의 세계 1위인 중궈중처는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 2241억3796만 위안(38조 원)에 달한다. 지멘스와 알스톰의 합병에도 그 규모는 여전히 중궈중처에 못 미친다. 하지만 양 사는 기술력으로 중궈중처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알스톰은 프랑스의 대표적 기업이지만 2004년 정부 지원으로 파산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 3년 전에는 에너지 사업 부문을 미국의 GE에 매각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알스톰의 벨포르 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5억 유로(6707억 원) 상당의 고속철을 주문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도는 알스톰을 개혁하고 지멘스와의 합병을 통해 새로운 유럽 챔피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유럽에서 ‘챔피언 기업’이 나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기업들이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총선에서 승리해 4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유럽이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신칸센도 인도에 진출하면서 중국의 고속철 굴기에 제동을 걸었다. 인도 정부는 구자라트주의 아메다바드에서 최대 도시인 뭄바이까지 건설될 508km의 고속철을 신칸센 방식으로 건설하기로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아메다바드를 직접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고속철 기공식에 참석했다. 일본 정부는 이 고속철 건설비용의 80%인 8800억 루피(15조5600억 원)를 50년 만기 연이율 0.1% 차관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이 중국을 따돌리고 인도의 고속철 사업을 수주한 것은 아베 총리와 모디 총리가 중국 견제에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6개 고속철 노선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일본은 이들 노선의 수주도 노리고 있다.

아무튼 앞으로 세계 고속철 시장을 놓고 중국, 독일과 프랑스, 일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