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감세 폭탄, 글로벌 자본 이동 촉발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미국의 파격적인 법인세율 인하 추진으로 글로벌 자본 이동이 거세질 전망이다. 대대적인 감세정책으로 인해 외국으로 나간 기업들이 미국으로 유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율 인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법인세율을 오히려 인상하며 역주행하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대 국정 과제로 추진해 온 세제 개혁안과 관련해 미국 공화당의 상·하위원 지도부가 법인세를 21%로 대폭 인하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는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원안(법인세 20%)보다 법인세가 1%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미국의 이번 법인세율 인하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86년 이후 3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이뤄졌다.

이번 세제 개혁안에는 미국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쌓아 둔 수익금을 10% 내외의 세금만 내면 들여올 수 있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00억 달러를 해외에 쌓아 둔 애플을 비롯해 미국 기업 전체로는 2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해외 축적 자금이 미국에 유입돼 투자 증가와 기업 인수·합병(M&A) 등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역사적인 감세로 미국에 기업과 고용을 돌려줄 것”이라며 “미국 내 설비투자와 고용을 늘려 지난 몇 년 동안 없었던 임금 인상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미국 기업의 회귀와 외국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란 구상을 기본 틀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경제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재임 기간(1981~1989년)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대대적인 감세 정책과 복지 억제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성공해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올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럼프노믹스’를 통해 레이건의 뒤를 따르려는 야심을 보여 왔다.

현행 미국의 법인세율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아 미국 기업이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들을 해외로 이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기업들은 그동안 자국의 법인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정한 연방 법인세율은 35%, 각 주정부가 정한 법인세율과 연방정부 법인세율을 평균한 세율은 39.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운동 때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번에 대선 공약에는 못 미치지만 법인세율을 21%로 인하함으로써 미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외국으로 나간 기업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유턴’ 정책을 제대로 이루려면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의 투자와 이전을 유도하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다.

기업 유치와 투자가 늘어야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 성장도 이룰 수 있다. 이번 법인세율 대폭 인하에 따라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금에 대한 세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 미국 내 투자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억제하고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높은 법인세율 탓에 미국 진출을 꺼려 온 글로벌 기업의 미국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법인세율 대폭 인하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법인세율 대폭 인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 경제는 앞으로 새로운 날개를 달면서 더욱 비상할 것으로 보인다. 전미기업이코노미스트협회는 법인세율 대폭 인하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0.39%포인트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 ‘펜 와튼 버짓 모델’은 GDP가 연간 0.03~0.08%포인트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2018년과 2019년의 GDP가 각각 0.3%포인트씩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도 기업이익이 증가하고 2018년 GDP 증가율이 0.3%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경기 회복이 미국 기업들의 해외 수익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법인세율 대폭 인하는 또 하나의 호재라고 평가했다.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CEA)는 법인세율 대폭 인하로 미국 GDP가 장기적으로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CEA는 기업들이 이러한 감세정책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해 투자를 늘린다면 성장률은 예상치보다 더 높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美 감세 폭탄, 글로벌 자본 이동 촉발
◆전 세계 법인세율 인하 경쟁 뜨겁다

미국 법인세율 대폭 인하는 각국의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발 빠르게 한시적으로 법인세 실질부담률을 최대 20%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12월 8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생산성 혁명 정책 패키지’에 이 같은 2018년 세법 개정안을 포함시켰다. 일정 이상의 설비 투자와 임금 인상 등을 실시한 기업에 한해 최대 20%대까지 법인세 실효세율을 감면해준다는 내용이다. 이 조치는 생산성 혁명 집중 투자 기간으로 정한 2018~2020년 동안 한시 적용된다.

법인세 감세는 2단계로 나눠 적용된다. 우선 직원 임금을 전년 대비 3% 이상 인상하고 설비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에 대해 세액 공제를 통해 5%포인트 법인세 감면 혜택을 준다. 2018년 일본 법인세 실효세율은 29.74%로, 1단계 감면 혜택만 받아도 실효세율은 25% 내외로 떨어진다. 여기에 기업이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에 투자하면 또 한 번 법인세를 감면해준다. 이렇게 되면 법인세 실효세율이 25%대에서 20% 내외까지 떨어지게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법인세 실효세율을 2013년 37%에서 2018년 29.74%까지 지속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일본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 혜택 확대뿐 아니라 중소기업 생산성 증가를 위해 ‘고정자산세 부담 감면 조치’도 강구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새로 도입한 기계 등에 매겨지는 고정자산세율을 0.7%에서 제로(0)로 낮출 방침이다.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롄(經團蓮)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법인세율 인하는 해외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고, 일본의 경쟁력을 제고하며, 일본 기업들의 힘을 전 세계적으로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들은 미국으로 거점을 이전하는 등 해외 전략 조정 및 사업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로 생산 거점으로서 미국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경제 활성화로 인한 대미 수출이 늘어나는 등 경제 흐름과 금리 등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앞으로 5년 동안 미국 공장 등에 1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닛산자동차도 미국 내 점유율 확대를 위해 현지 공장시설을 확대하는 등 생산능력을 높일 방침이다. 히타치제작소도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기업들이 본사를 옮기지 않더라도 미국 기업에 대한 대규모 M&A를 통해 경영을 통합한 뒤 본사를 이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사업 거점 이전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야자키 히로시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는 전 세계 GDP를 0.1%, 일본 GDP를 0.03% 밀어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도 현재 33.33%인 법인세율을 단계적으로 낮춰 2022년엔 25%까지 끌어내릴 예정이다. 2017년 5월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강력한 세제 개혁 추진 의지에 따라 프랑스 경제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제 회복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제조업 경기가 부활하고 있다.

프랑스의 2017년 경제성장률은 2016년보다 0.5%포인트 오른 1.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경제통계연구원(INSEE)은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프랑스 경제의 대부분 분야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프랑스의 경기 회복 조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럽 각국은 이미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법인세율을 30%에서 19%로 낮췄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법인세율을 더욱 인하해 2020년까지 17%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이탈리아도 2015년 말 법인세율을 27.5%에서 24%로 인하했다.

스페인도 법인세율을 28%에서 25%로 낮췄다. 현재 OECD 35개 회원국들의 평균 최고 법인세율은 22.7%로, 2000년 30.2%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다. OECD 회원국들 가운데 2017년과 2016년 법인세율을 인하하거나 법인세율 인하 계획을 발표한 국가는 스페인, 이스라엘, 일본, 노르웨이, 호주, 프랑스, 영국, 헝가리, 이스라엘,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등이다. 이들 국가는 법인세율을 평균 2.7%포인트 인하했다.

같은 기간 법인세율이 인상된 국가는 칠레와 슬로베니아 두 곳뿐이며 2018년엔 한국이 추가된다. 각국이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돌입한 건 저성장 국면에서 ‘기업 살리기’ 외엔 마땅한 성장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을 낮추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외국 기업을 유치해 세수를 늘릴 수 있다.

낮은 법인세율 덕분에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표적인 국가로는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17%다. 싱가포르는 2016년 말까지 쌓인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이 무려 1조1000억 달러에 달한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3000달러, 실업률은 1.8%밖에 되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국가경쟁력에서 세계 1위인 초일류 국가다. 법인세율이 낮으면 해외자본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경제 발전을 이끈다. 이 결과 소득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생긴다. 싱가포르는 법인세율 인하 정책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입증하는 데 가장 좋은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법인세율 대폭 인하는 글로벌 자본의 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대규모 자본이 미국으로 움직일 것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자본 유출 위기에 처한 중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류쉬에즈 중국 교통은행 선임연구원은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중국에서 일부 자본 유출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안보 컨설팅 업체인 리스콘 인터내셔널의 위안톄청 연구원은 “미국의 법인세율 대폭 인하가 중국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효과를 낳고 중국 민영자본의 미국 이전을 부추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발 법인세율 대폭 인하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아무튼 ‘법인세율 인하’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한국만이 법인세율을 25%로 인상하는 등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