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에서 2017년 1월 15일 규모 5.4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려 주차된 차량을 덮쳤다.
경북 포항시에서 2017년 1월 15일 규모 5.4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려 주차된 차량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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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한국경제DB]

4월부터 화재보험에 지진특약이 새롭게 출시된다. 그러나 기업들이 주로 가입하는 주택화재보험에만 적용돼 ‘유명무실’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지진 전용 보험 도입을 추진했으나 백지화됐다. 한반도의 지진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지진에 대한 위험 대비는 보험의 사각지대에서 겉돌고 있다.

한반도에 지진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포항지진(규모 5.4)으로 2만7500여 건의 시설물 피해가 발생했고, 피해액은 55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추가 피해 접수와 올 2월 규모 4.6의 여진 피해까지 합치면 포항지진 피해액은 700억 원이 넘을 전망이다. 이재민도 1800명에 육박한다. 앞서 2016년 발생한 경주지진도 110억 원이라는 커다란 재산 피해를 남겼다.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한반도가 흔들리면서 지진보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진은 발생 빈도는 높지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막대하다. 그러나 정부의 보상금은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에 대해 완파 시 900만 원, 일부 파손은 100만 원 수준이다. 어마어마한 지진 피해에 대한 복구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진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최근 금융당국은 유관기관 및 손해보험업계와 지진 전용 보험 출시를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리스크가 큰 지진보험 확대에 손보업계가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그 대신 4월부터 새로운 지진 담보 특약을 내놓는다.
지진 위험 증가에도 보험 안전망은 ‘허술’
3단계 차등화 지진특약, 실효성 있나

주부 김은주(43) 씨는 2년 전 주택을 구입하면서 대형 보험사의 주택화재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지진 피해도 보장받고 싶었지만 “지진특약은 가입할 수 없다”는 설명에 가입을 포기했다. 김 씨는 최근 지진에 대한 위험이 커지면서 다시 보험사에 지진특약에 대해 문의했지만, 역시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했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기존 화재보험 가입자의 경우 지진특약을 추가할 수 있는지 아직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지진에 대한 보장은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 천재지변에 해당되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면책 대상이다. 지진으로 인한 주택의 피해를 보상 받으려면, 화재보험을 가입하면서 특약으로 지진 피해 담보를 선택할 수 있다. 지진 피해를 주담보로 하는 보험은 나오지 않았다.

4월 새롭게 출시되는 지진특약은 이러한 화재보험의 특약이다. 지진 발생 위험지역과 여타 지역을 나눠, 지역별로 보험료를 차별화한다. 그동안 국내 지진 피해에 대한 통계가 부족해 합리적인 위험률 산출이 어려워 보험사들이 관련 상품 출시 및 판매에 소극적이었다. 지진특약을 판매해 온 일부 보험사들도 경주·포항지진 이후 해당 지역의 보험 가입을 거절하거나 아예 지진특약 판매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기존에는 어느 지역에서 가입하든 동일한 보험료가 적용돼 위험지역에서 가입 시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진특약은 전국을 크게 3구역으로 나눠 보험료를 차등 부과한다. 최근 지진 발생이 빈번했던 경주 등 경상도 일부와 경남 울산(동구 제외)은 위험지역(3존)으로, 포항과 밀양 등은 중간지역(2존)으로, 서울과 경기도 등은 일반지역(1존)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위험이 낮은 서울 등 일반지역에 비해, 경북 경주지역의 경우 지진보험료가 3~4배 비싸진다.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의 보험료율도 차등화했다. 5층 이상 아파트와 공장, 건물 등 공동주택은 단독주택에 비해 보험료가 20% 할증되도록 했다. 위험지역과 주택에 대한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보험사들이 지진 관련 상품 판매를 확대토록 하는 취지다.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새로운 지진특약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실제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화재보험(일반) 가입자 가운데 지진특약에 별도로 가입한 경우는 0.06%에 그쳤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새로운 지진특약은 기업들이 주로 1년 단위로 가입하는 화재보험의 특약에 적용되는 내용이어서 확대는 제한적일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개인들이 5년, 10년 만기로 주로 가입하는 장기 재물보험의 경우 새로운 지진특약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지진 위험 증가에도 보험 안전망은 ‘허술’
리스크 큰 지진보험, 공적보험 도입돼야

보험업계에서는 지진보험은 공적보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화재 피해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연도별 비슷한 추이를 보이는 반면, 지진은 한 번 발생하면 지역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피해가 크다”며 “지진보험은 자칫 보험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간 보험사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공적보험의 영역에서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지진 피해를 보상하는 정책보험은 ‘풍수해보험’이 있다. 풍수해보험은 정부에서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재난보험으로 행정안전부에서 관장하고 5개 민영 보험사(DB손해보험, 삼성화재, 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현대해상)에서 가입할 수 있다. 총 보험료에서 적게는 55%, 많게는 92%까지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에 보장 대비 보험료가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자연재해로 주택이 완파됐을 경우 연간 보험료 4만8000원 가운데 본인 부담금 2만1800원(45%)만 납부하면 재난 발생 시 보험금 72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주택뿐 아니라 온실(비닐하우스)도 보상받을 수 있으며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지진 등의 자연재해를 포괄적으로 보장한다. 다만 풍수해를 전반적으로 보장하다 보니 지역이나 주택 환경 등에 따라 유용성이 달라질 수 있다. 한 보험 관계자는 “만일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보험 소비자라면 풍수해 위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을 것”이라며 “풍수해 위험보다 지진 위험에 집중해 대비하고 싶은 경우를 위한 지진 전용 보험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진 위험 증가에도 보험 안전망은 ‘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