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9년 봄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왔다. 이러한 계절 변화를 반영하듯 평화를 향한 한반도의 긴장 완화 프로세스에도
또 한 번 해빙 분위기가 완연해지고 있다. 다시 한 번 찾아온 한반도의 봄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반도 해빙, 금융협력 이슈도 부각
[경기 파주시 접경 지역에서 비무장지대 너머로 보이는 개성공단 일대.]

지난해 말 북미 간 고위급 협상 결렬 및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무산으로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가 잠시 소강상태에 놓이면서 몇 개월 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최근 북미 정상회담 개최라는 반가운 ‘봄비’를 맞이하게 되면서 남북 평화협력도 동면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대북 제재 완화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시점에 도달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 경제협력(이하 남북경협) 사업들도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들 남북경협 사업들을 필두로 여타 사업들도 병행해 새롭게 추진되거나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남북경협 사업들이 확대될 경우 필연적으로 물품대금이나 임금 지급 등 남북 사이의 대금 정산 등 청산결제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협력 중에서 금융협력 이슈들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물론 이러한 이슈는 예전부터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북 제재 완화가 폭넓게 이루어져 경협 사업들이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경우 청산결제와 관련된 이슈들은 예전에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통합경제권 염두에 둔 결제 시스템 구축
우선 첫째로 청산결제와 관련된 ‘장기적인 시계(long term time horizon)’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장기적인 관점이란 남북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는, 이른바 ‘경제통합’이라는 전제를 의미한다. 두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려면 경제력 격차가 좁혀지는 것과 함께 특정 시점에 가서는 각각의 경제권에서 통용되던 통화가 단일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북한은 북한 원화 대신 미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 유로화가 일상 거래에서 사용되는 외화 중심의 경제 구조다.

이와 같은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의 정도는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국 통화가 아닌 외화를 중심으로 화폐가 유통되는 경우 독자적인 통화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물가와 환율이 출렁일 경우 변동성이 그대로 경제에 반영된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려면 일단 외화 중심의 화폐 유통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원화와 한국 원화 사이의 환전을 폭넓게 허용해 북한 내에서 한국 원화가 통용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 한국 원화는 달러화나 위안화 같은 단순한 외화가 아닌 장기적으로 통합경제권에서 사용 가능한 통화이므로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둘째로 북한과의 교역 확대 및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해 결제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지원해야 한다. 현재 북한에는 선불카드나 직불카드 등이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의 결제 시스템은 구축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현금을 중심으로 화폐가 유통되는 이른바 ‘지하경제’가 굳건한 구조다. 폐쇄적이고 당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재정 조달 및 집행을 위해서는 당분간 이와 같은 방식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의 지속 성장 및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하자금을 양성화해야 한다.

결국 현금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보다 투명한 결제 시스템으로 개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앙은행 중심의 거액결제 시스템과 신용카드, 지로, CD공동망 등과 같은 소액결제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소액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금융결제원과 같은 기관의 설립에 지원과 자문을 해줄 필요가 있다. 금융결제원은 2000년 초반부터 옛 공산권 국가나 다수의 저개발 국가에 정책 자문 및 시스템 수출을 한 경험도 있다.

정보 불균형 해소 위한 인적 교류 필요
셋째, 금융 분야의 인적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북한의 금융 실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북한의 금융 실태와 관련된 연구들은 대부분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서베이에 의존하고 있다. 통계가 공표되지 않은 현실에서 최선이긴 하지만 객관성이나 대표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금융계 인사들을 초청해 직접 그들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고 그들이 원하는 바도 파악할 수 있다. 통일부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이 앞으로 금융 분야의 인적 교류를 위한 준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과학적으로 얼음과 눈을 녹이는 것은 기온 자체보다는 바람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바람은 분위기다. 결국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이어져 현재의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봄바람으로 얼음이 녹고 만물이 소생하듯이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통해 조성된 화해 분위기가 평화를 소생시키고 한반도의 공존과 번영으로 이어져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