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창업 초기 창업자들이 지배적인 오너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너(주주), 이사회,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크게 구별되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업이 상장을 통해 주식이 분산되거나 세대교체로 소유권이 가족들에게 분산되는 경우 창업자 한 사람이 통제하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창업자를 대신할 수 있을까?
창업자를 누가 대신할까?
일러스트 김호식

이제 막 성장기에 접어든 중소기업의 창업자 박 모 사장은 시장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려면 최신 설비와 해외 업무를 수행할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등 자금이 필요하다. 그는 부채비율이 조금 더 높아져도 재무적인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대출을 통한 신규 투자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은행 신용대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회사에서 필요한 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대출을 받은 그는 계획대로 기업의 성장에 대비해 시설을 확충했다. 기업을 창업한 사람이라면 박 사장과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박 사장은 이것이 경영자로서 회사에 유익한 의사결정이었다고 했지만, 그의 결정은 단지 경영자로서의 결정이었을까?
창업자를 누가 대신할까?

창업자의 3가지 역할

창업자들은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여러 가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박 사장의 예를 보면, 기업 확장을 위해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기업의 경영자로서의 역할이다.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얻으려고 대출서류에 사인을 한 것은 오너(최대주주)로서의 역할이다.

그리고 신규 투자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하고 적정한 부채비율을 감안해 대출 규모를 결정한 것은 이사회의 역할이다. 이처럼 창업자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어떤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모든 사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오너, 경영자, 이사회의 역할을 직관적으로 조율한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바탕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비전(vision)과 목표(goal), 니즈(needs)가 깔려 있다. 결국 박 사장은 그림과 같이 오너(최대주주)와 CEO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기업지배구조의 중심이 되는 이사회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기업 형태인 주식회사의 경우 오너(주주), 이사회, CEO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각각의 책임과 역할은 서로 다르다. 가령, 오너(주주)는 회사의 경영 활동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배당 형식으로 받는다. CEO는 회사를 대표해 경영과 관련해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며 조직의 유지 및 발전을 책임진다.

그리고 이사회는 오너(주주)를 대신해 기업의 주요 업무를 관할하고 CEO를 견제하며 회사의 주요한 사안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과 집행을 관장한다. 결국 이사회는 주주와 경영자 등 이해관계자 간의 관계를 조정하는 ‘균형점(balance poi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들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되고, 이사회가 CEO를 선임하므로 실제 기업의 지배구조, 즉 의사결정 구조는 오너십(주주총회) , 이사회, CEO가 된다.

하지만 창업세대의 경우 의사결정 구조가 이처럼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창업 초기 창업자들이 지배적인 오너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주총회는 형식적인 요건일 뿐이며 큰 의미가 없다. 이사회도 정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창업자의 결정 사항을 문서화해 도장을 찍어 보관하는 정도로 형식적인 절차로 이뤄진다.

이사회가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창업자들이 이사회를 통제하고 있어 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창업자들은 CEO의 역할을 맡아 회사를 경영한다. 회사의 지배구조 측면에서 본다면, 창업자가 동시에 1인 3역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창업자들은 아무리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없다.

그 덕분에 의사결정이 빠르고 갈등의 여지도 없다. 하지만 기업이 상장을 통해 주식이 분산되거나 세대교체로 소유권이 가족들에게 분산되는 경우 창업자 한 사람이 통제하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창업자를 대신할 수 있을까?
창업자를 누가 대신할까?

지배구조의 전문화
기업의 지배구조를 전문화한다는 것은 창업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던 통제권을 오너십(주주), 기업(CEO), 이사회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부문별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한 후 부문별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독립적이라고 해서 각 부문이 단절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상호 의존적이며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 부문에만 속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 한 사람이 오너(주주), CEO, 이사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있고, 한 개 혹은 두 개의 부문에 속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어떤 한 사람이 오너(주주)이며 동시에 이사로서 활동한다면, 주주총회에서는 주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하고, 이사회에서는 이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한 창업자가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어 자녀 간의 형평성을 위해 오너십을 네 자녀에게 동등하게 4분의 1씩 배분했다고 가정해보자. 기업에서는 2명의 자녀만 일하는데, 첫째는 CEO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맡고 있고, 둘째는 한 사업부의 본부장으로 일하며 동시에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 2명의 자녀는 주식만 가지고 있고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아래 표와 같이 창업자 한 사람이 맡았던 역할과 권한이 여러 사람에게 분산된다.

창업자는 최대주주로 주주, 이사, CEO의 역할을 동시에 맡았었기 때문에 혼자 모든 의사결정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세대가 되면서 오너십이 분산돼 이제 한 사람이 모든 통제권을 가질 수 없다. 만약 이때 누군가 주도적으로 통제권을 가지려 한다면 가족 간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가업승계를 전후한 가족 분쟁은 대부분 창업자의 권한이 여러 가족에게 분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리할 능력이나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가?

만약 기업이 창업자 가족에서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4명의 형제가 추구하는 비전과 목표, 니즈 등 소유권 철학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가족주주협의회(share-holder’s meeting)다. 만약 가족들이 미래의 꿈을 공유하고 오너로서의 권리와 책임에 관해 합의할 수 있다면 수많은 잠재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업을 지배하려 한다면 형제간 주도권 경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만약 일부 가족들이 각자 자신의 주식을 내다 판다면 가족기업으로 존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기업들이 세대가 지날수록 가족기업으로서의 영속성이 불투명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장수 가족기업들이 100년 이상 수대에 걸쳐 가족기업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초기부터 가족들 간 소유권 규정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족주주협의회를 구성해 공동의 꿈과 비전뿐만 아니라 주식의 매매, 배당 기준 등 소유권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함께 논의한다.

그리고 가족주주 간에 합의된 사항은 ‘주주협약서’의 형식으로 명문화한다. 주주협약서의 목적은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 통제권을 유지하고 가족 갈등을 예방하는 데 있다. 주주협약서의 내용은 가족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가족 간의 주식 매매 절차와 매매 가격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주식을 매도하려는 가족이 있다면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매수권을 준다거나 가족 간에만 매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주주협약서의 주요한 목적은 3가지다.

컨트롤타워로 이사회를 활용해야
첫째, 소유권에 따른 권리와 책임 규정, 둘째,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 해결, 셋째, 가족의 통제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가족기업의 소유권 구조 구축 등이다. 기업지배구조의 중심이 되는 이사회의 주요 활동 영역은 신규 사업 개발, 기존 사업의 철수, 사업 부문 간 시너지 창출, 성장 우선순위 결정 등 전사적 관점에서 사업 영역의 설정과 그에 따른 자원 배분, 그리고 경영진이 수립한 전략에 대한 수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 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사회를 오너(가족주주)와 경영자 사이의 컨트롤타워로 활용할 수 있을까?

가족주주들이 합의해 공동의 비전과 목적, 니즈 등을 명문화하는 것을 ‘오너 계획’이라고 한다. 주식을 가진 가족들은 오너 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제시한다. 그리고 기업의 경영자는 경영 계획을 작성해 이사회에 제출한다. 그러면 이사회는 가족(주주)의 오너 계획과 경영자의 경영 계획을 검토해 이해상충이 없는지 검토하고 경영자를 견제하는 등 ‘균형점’ 역할을 맡는다.

이때 가족들은 오너(주주)로서만 남을 수도 있고, 이사회나 CEO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단, 자신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 부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에 비춰본다면, 오너십을 가진 4형제가 주주협의회를 통해 ‘오너 계획’을 작성해 이사회에 주주로서 회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공동의 비전과 목표, 니즈 등을 제시한다.

그리고 CEO를 맡은 장남은 자신의 경영 계획을 이사회에 제출하고, 2명의 형제와 사·내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는 CEO의 경영 계획이 오너 계획에 반하는 것은 없는지를 검토하는 등 오너(가족주주) 그룹과 CEO 간의 관계를 조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주주라는 이유로 또는 CEO라는 이유로 회사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의사결정이 보다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이와 같은 전문 지배구조 아래에서는 각 부문의 사람들이 협력할 때야 비로소 회사가 성장, 발전할 수 있고, 그래야만 개별 주주들의 몫도 함께 커지게 된다.

100년 가족기업의 비결
해외 장수 가족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보면 대부분 이런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해서 아무나 회사에서 일할 수 없도록 가족의 회사 참여 규정을 합의해 명문화하고 있다.

특히 형제들에게 주식이 분산되면 3세대가 기업에 참여하기 전에 가족이 기업에 참여하는 조건을 미리 협의하고 자녀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기업에 참여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100년 이상 장수하는 가족기업들이 수대에 걸쳐 오너십이 여러 가족들에게 분산되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생존하는 비결은 바로 창업자를 대신해 가족과 기업, 오너십의 문제를 일사분란하게 해결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승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적합한 후계자에게 경영권이나 소유권을 넘겨주는 차원을 넘어 창업자가 그동안 수행해 왔던 서로 얽혀 있는 기능을 구분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계를 준비하는 창업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없더라도 자신을 대신해 건강한 가족과 튼튼한 기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