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원 삼정KPMG 전무 "글로벌 이전가격 나침반될 것"
INTERVIEW/ 강길원 삼정KPMG 이전가격본부 전무(본부장)

[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글로벌 기업들은 해외 관계사들과 물건을 주고받으며 상품의 가치를 탄생시킨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을 펼치는 이들 기업 옆에는 글로벌 시장의 나침반 역할을 하며, 스스로를 ‘세무 분야의 아티스트’로 부르는 이전가격 전문가가 있다.

“내년부터 전 세계 과세당국의 이전가격 과세권 전쟁은 더 치열해질 겁니다.” 강길원 삼정KPMG 이전가격본부 전무(본부장)는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승인한 벱스(BEPS: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규제안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과세 환경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해 4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파나마 법률 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문서를 분석한 일명 ‘파나마 페이퍼스’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다름 아닌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는 각국 전·현직 지도자들과 정치인, 유명 인사들의 조세 회피 의혹이 담겨 있어 그 파장은 상당했다. 이후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해 탄생시킨 것이 바로 벱스 규제안이다.

다국적기업들이 해외에 있는 자회사나 지점과 원재료 또는 제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가격을 ‘이전가격’이라 부르는데,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세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이전가격을 조작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이에 다국적기업들에 사업 운영 현황과 이전가격 정책 등을 담은 2016년 이전가격 보고서를 과세당국에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이 정보를 전 세계 과세당국이 공유토록 해 이후 ‘현미경 관찰’이 가능해지도록 한 거다.

올해까지 이전가격 보고서가 제출되면 내년부터 각국 과세당국은 견고한 방어막을 짜서 과세권 집행에 나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과세당국과 글로벌 기업, 각국 과세당국 간 이전가격을 둘러싼 과세 충돌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이 같은 과세 충돌을 막기 위해 이전가격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과세당국 간 상호합의나 사전가격승인(APA) 제도를 활용해 불필요한 과세권 갈등을 막고, 글로벌 기업의 합리적인 가격정책을 돕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전가격 분야는 국가와 기업은 물론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존재하며, 단순히 세법만 가지고 정답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 간 이해 충돌, 국제 거래의 복잡성, 제품의 특성은 물론 각국의 언어와 생활관습의 차이까지 세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다. 이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전가격 조정은 과학(science)이 아니라 예술(art)의 영역’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강 전무는 국세청 국제협력담당관실에 근무하며, 미국 과세당국 등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상호합의나 APA 업무를 했으며, 한국 국세청 대표로 OECD에 파견돼 이전가격 지침서를 개정하는 작업도 경험했다.

또 현재는 삼정KPMG 이전가격본부를 이끌며 국내 굴지의 H사와 S사의 글로벌 가격정책 세팅을 돕는 등 이전가격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영국 금융 전문지 유로머니가 추천한 최고의 이전가격 전문가로 꼽히기도 했다.

강 전무는 자신들을 ‘세무 분야의 종합예술로 일컫는 이전가격 업무를 수행하는 아티스트’로 소개한다. 글로벌 기업들과 발을 맞춰 국제조세 업무를 펼쳐 온 자신들의 남다른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벱스 규제안이 최종 승인된 이후 국제조세 환경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이전가격 문제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기업은 구글이나 애플,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기업이겠죠. 실질적으로 애플은 미국 내에서 40%에 육박하는 세율로 세금을 내고 있어요. 하지만 미국 외에서도 영업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에 대해서는 유럽 지역의 룩셈부르크나 네덜란드 같은 곳에서 택스 플래닝(tax planing)을 하면서 세금을 거의 안 내요.

탈세를 한다기보다는 아주 정교한 택스 플래닝을 하는 거죠. 하지만 과세당국 입장에서 보면 30~40% 세금을 내야 하는 기업들이 세금을 안 낸다고 생각하니까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되겠다 싶은 거죠.

사실 벱스 논의는 아주 새로운 것은 없어요. 기존에 있던 제도의 틀을 강화시키고 납세자들의 특정 정보는 강제적으로 미리 받아 보도록 한 거죠. 그리고 그 정보들을 활용해 더 효과적으로 조세행정을 하겠다는 거고요.

기업들의 택스 플래닝을 창(槍)이라고 한다면 정부들의 조세조약, 세법, 과세지침과 같은 원칙들은 방패(防牌)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까지 매우 날카로웠던 창의 공격을 벱스 논의를 통해 매우 견고한 방패로 막아선 형국인데 당분간 주도권은 규제를 만들어낸 쪽에 있을 것 같아요.”

벱스 이슈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벱스 도입 관련 기업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약 80% 이상이 그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와 다소 의외였어요.
“벱스로 인해 과세권 전쟁이 더 치열해지는 시점은 내년일 거예요. 2016년에 대한 이전가격 보고서들이 올해 안에 대부분 제출될 예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과세당국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은 내년부터겠죠.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유럽의 한 국가에서 세제상 특혜를 받아 100억 원 가까이 절세를 했다고 치죠. 과세당국이 벱스 규제를 과세권에 반영하게 되면 유럽연합(EU)에서 벱스 자동정보교환제도를 통해 이를 알게 되고 해당 국가의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면 그 같은 혜택을 부인해 버릴 수 있어요. 글로벌 기업들의 기존 택스 플래닝은 안 먹히게 되는 거죠.

기업경영인들은 한국 세무는 한국 국세청에 대응하고, 해외 세무는 해외 국세청에 대응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벱스에서 이야기하는 글로벌 개념의 국제조세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낯설 수밖에 없고요. 이제는 본사가 해외법인을 관리 측면에서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해야 해요. 글로벌 가격정책에 깊숙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전가격 과세 문제를 해외 진출 기업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시한폭탄’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현재 시점에서 기업들은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나요.
“모든 국가가 OECD 등에서 권고하는 국제기준에 따라 조세행정을 집행한다면 이전가격 과세 문제는 충분히 예측하고 대응이 가능한 이슈일 거예요. 하지만 많은 과세당국들이 독립기업원칙과 같은 상식적인 국제기준보다는 자국의 세수 증대에 초점을 맞춰 과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예측이 어려워요.

올해 제출되는 보고서 중 ‘국가별 보고서’는 기업이 진출한 모든 국가별로 매출 규모, 법인세 납부액, 이익 규모, 종업원 규모 등이 과세당국들에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합리적 과세 논리보다 비교식 과세 사례가 증가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요. 관계사 간 거래 규모에 따라 과세 금액은 천문학적 숫자가 될 수도 있죠.

기업들은 본사는 물론 해외 관계사들을 포함해 일원화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업 가격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해요. 올해 제출하는 통합기업 보고서, 개별기업 보고서, 국가별 보고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같은 양식이 사용돼요. 필요에 따라서는 국가 간 정보교환규정에 따라 상호 검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만약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된 대응 논리가 사용될 경우 과세당국과의 신뢰 문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강길원 삼정KPMG 전무 "글로벌 이전가격 나침반될 것"
최근 국제조세 전문지 인터내셔널택스리뷰(ITR)가 선정하는 ‘2017 아시아 택스 어워즈’에서 한국 부문 올해의 이전가격 자문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전문가로서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요.
“제가 따져보면 앞서 10년은 국세청에서, 이후 10년은 로펌과 회계법인에서 보내고 있어요. 국세청에서 후반기 4년 정도 기간에 국제조세, 이전가격과 관련된 의미 있는 경험들을 하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국제협력담당관실에서 근무하며 과세당국 간 상호합의나 APA 등의 업무를 했어요. 당시 한국과 과세 분쟁이 제일 많았던 곳이 미국이었어요. 전담 상호합의팀의 일원으로서 미국 과세당국 담당자들과 많은 협상을 진행했죠.

기저귀를 들고 나가 한국형 기저귀는 미국형과 다르기 때문에 로열티를 많이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기억도 있어요.(웃음) 또 한국이 OECD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 국세청 대표로 국제회의에 참석해 이전가격 지침서 등을 개정하는 작업도 진행했죠.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이전가격 사례들을 다양하게 접하게 됐는데, 그런 경험들을 어떻게 해서든 소화해야 되겠다 싶어서 일 욕심을 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상호합의나 이전가격 관련 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국세청의 요청에 의해 세무공무원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게 됐죠. 이전가격 상호합의 협상 담당, OECD 한국 국세청 대표, 국세청 공무원 교육 강사로서 역할을 하며 이전가격과 관련해 예·복습에 실무까지 두루 경험한 셈이죠. 그 당시 경험이 이전가격 전문가로 성숙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아요.”

삼정KPMG 이전가격본부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2012년 제가 삼정KPMG에 오면서 팀을 리빌딩했으니 팀 역사로만 치자면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동안 발군의 조직력을 보이며 국제조세 전문지 ITR가 추천한 국내 티어1(Tier1) 법인에 뽑히는 등 시장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죠. 현재 저를 비롯해 한국, 미국,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의 회계사, 세무사, 경영학 석사 등 약 50여 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데 무엇보다 KPMG의 GTPS(Global Transfer Pricing Services)의 일원으로 전 세계 152개 국가에 있는 1200명 이상의 세무 및 경제 전문가, 변호사, 재무 전문가들과 굳건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에요.

국내 대형 로펌들의 경우 해외 기반이 미약하다 보니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과 관련된 이전가격이나 세무 업무에 집중하는 반면 삼정KPMG의 경우 국내 대기업의 해외 네트워크에 대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차별점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국내 대기업 중 글로벌 가격정책을 고민하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삼정KPMG의 경우 H사의 글로벌 가격정책구조를 진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고, S사의 해외 이전가격 이슈를 맡아 해결한 적이 있죠.

H사의 경우 기존 해외 사업구조가 영업 위주로 설계됐던 것을 1년 가까이 해외법인의 가격구조는 물론 물류, 빌링, 오더시스템 등을 새롭게 재정비하도록 대안을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어요. 국내 대기업의 전 세계 네트워크에 대한 전체적인 가격정책에 대한 자문을 진행한 곳은 삼정KPMG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전가격 업무가 교과서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세무 전문가라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쉽지 않아요. 고객의 입장에서는 결국 해결사를 원하는데 이전가격 분야가 택스 하나만 볼 수 없거든요. 가격정책을 정할 때 영업적 측면에서 퍼포먼스도 고려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성과지표(KPI)도 손봐야 하고, 대기업의 경우 1, 2차 벤더 기업까지 고려한 가격정책이 필요하기도 해요. 이전가격 분야가 아트적인 요소도 많다고 했는데 때로는 과세당국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감동까지 필요한 업무가 바로 이 분야가 아닌가 싶어요.”
강길원 삼정KPMG 전무 "글로벌 이전가격 나침반될 것"


이야기를 듣자면 워커홀릭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많을 듯싶네요.
“(웃음) 저와 같은 세무 분야에서 일하는 아내와 어린 딸에게 미안할 때가 많죠.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업무상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갈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가족들은 든든한 지원자이자 첫 번째로 꼽는 ‘제 인생의 메달’이라고 생각하고 있죠.(웃음) 물론 두 번째 메달은 삼정KPMG가 되겠지요.

제가 워커홀릭이라고 하는데 사실 ‘바늘로 찌르면 들어가는 굉장히 인간적인 워커홀릭’이에요.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겐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어요. 잠이 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거예요.(웃음) 사실 이 습관을 갖게 된 게 팀을 리빌딩하며 조직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좀처럼 잠이 안 와서 잘 수가 없었는데 그때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게 드라마 보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드라마라는 게 시리즈가 많잖아요. 그렇게 잠도 못 자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저를 상상하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가 궁금합니다.
“벱스 규제안의 도입으로 이전가격 분야에 무관심했던 기업들이 국제적인 과세 이슈에 경각심을 갖게 된 건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단순히 기업들을 대리해 이전가격 보고서 작성만을 대행해주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가격정책 전반에 걸친 자문을 제공하고 싶어요.
삼정KPMG에는 ‘KPMG스토리’라는 일종의 행동 철학이 있어요.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고객과의 신뢰가 강조돼 있죠. 앞으로 시장이 점점 치열해지겠지만 최고의 이전가격 팀으로서 꾸준히 역량을 키워 나간다면 고객들이 먼저 알아봐주실 거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강길원 전무이사는…
국립세무대학 출신으로 국세청 재직 시 상호합의 및 사전가격승인(APA) 담당자로서 미국, 유럽, 중국 등 국내 및 해외 다국적기업의 다양한 이전가격 관련 실무를 담당했으며,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현재까지 세무공무원 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을 거쳐 2012년 삼정KPMG에 입사해 이전가격 리더를 맡고 있는데 2013년에는 영국 금융 전문지 유로머니가 추천한 이전가격 전문가에, 2017년에는 국제조세 전문지 인터내셔널택스리뷰(ITR)가 선정하는 ‘2017 아시아 택스 어워즈’에서 한국 부문 올해의 이전가격 자문상을 수상했다.

한용섭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