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접시가 막대의 양쪽에 매달린 천칭저울은 오늘날 일상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법원 같은 사법기관에 가면 십중팔구 그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천칭은 법의 근간인 ‘정의’의 오랜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무게를 재는 천칭이 어떻게 정의의 상징이 됐을까?
<아니 파피루스>, 기원전 1250년경, 대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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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는 천칭이 담당한 상징적 역할이 표현돼 있다. <사자의 서>는 죽은 사람을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문서로, 미라와 함께 관 속에 넣는 것이다. 그중 기원전 13세기에 만든
<아니의 파피루스>는 길이 37m에 달하는 초대형 <사자의 서>다. 테베의 서기관 아니(Ani)가 저승으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한 장면에 천칭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왼쪽에서 흰 옷을 입은 아니가 아내와 함께 커다란 천칭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천칭은 자칼의 머리를 한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조정한다. 저울의 왼쪽 접시에는 아니의 심장이 놓이고 오른쪽 접시에는 진리, 조화, 정의의 여신 마트의 깃털이 놓여 있다. 심장이 깃털의 무게와 같아 저울이 수평을 이뤄야 아니의 영혼이 사후세계로 갈 수 있다.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악하게 살았다는 증거이므로 대기하고 있는 괴물 암무트가 심장을 삼켜 버린다. 심장을 잃은 영혼은 영원히 사후세계에 갈 수 없고 부활할 수도 없다. 이처럼 <사자의 서> 그림에서 천칭은 죄의 무게를 재 영혼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역할을 한다.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을 판단하는 도구로 저울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 천칭은 신화 속 영웅들의 사후 운명을 결정하거나 ‘선’과 ‘악’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재는 용도로 더욱 발전한다. 선악을 판별하고 다스리는 것이 ‘정의’이므로, 천칭은 정의의 여신 디케의 상징물이 된다. 또한 순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는 지상에서 정의를 행하면서 천칭을 항상 들고 다닌다. 천칭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관념을 각인시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영혼의 무게 재기
‘선’과 ‘악’의 이원적 개념은 중세에 이르러 더욱 확고해지고 세분된다. 중세의 교부들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선과 악의 투쟁으로 간주하고 미덕과 악덕으로 구분해 수많은 도상으로 체계화했다. 그중에서 ‘정의’는 주요 4대 미덕의 하나로 숭상되며 천칭과 함께 표현됐다. 필사본 삽화, 궁전과 관청의 벽화, 대성당을 장식한 조각 등에서 천칭을 든 여성 인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정의’를 의인화한 것이다. 천칭을 든 ‘정의’의 여인상은 개인의 윤리뿐 아니라 통치자의 덕목을 가리키며 르네상스 이후에도 꾸준히 표현됐다.
한스 멤링, <최후의 심판> 중앙 패널, 1466~1473년, 그단스크 국립미술관
한스 멤링, <최후의 심판> 중앙 패널, 1466~1473년, 그단스크 국립미술관
중앙 패널, 1466~1473년, 그단스크 국립미술관">
한편 천칭은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죄의 무게를 재 천국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화가 한스 멤링(Hans Memling)의 <최후의 심판>에는 기사 복장을 한 대천사 미카엘이 그리스도를 대신해 큰 저울 들고 서 있다. 그의 오른쪽 접시에는 선한 영혼이 두 손을 모으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고 왼쪽 접시에는 악한 영혼이 악마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다. 미카엘은 십자가가 달린 긴 창을 뻗어 타락한 영혼을 찌르려 한다.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은 곧 지옥의 불길로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장면은 기독교인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고 신앙심을 고취하는 한편,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저울을 든 여인>, 1664년경,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요하네스 베르메르, <저울을 든 여인>, 1664년경,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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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천칭의 모든 종류가 발달하고 일상적으로 널리 통용됐다. 이때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천칭의 의미에 대해 복합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그림 한 점을 그렸다. 아주 조용하고 단순해 보이는 <저울을 든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그림에는 창가 테이블 앞에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작은 천칭저울을 들고 서 있다. 그녀는 저울로 무엇을 재고 있을까? 아마도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보석이나 귀금속의 무게를 측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그림은 세속의 재물에 정신이 팔려 영원한 가치를 외면하는 사람을 비유한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한편 뒷벽에는 <최후의 심판> 그림이 걸려 있으므로 그녀는 사실상 물질 속에 숨은 영혼의 무게를 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밀조사 결과 천칭의 양쪽 접시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여인은 빈 저울을 들고 측량을 하기 전에 우선 저울이 정확한지 시험을 하는 중인가? 저울은 여인의 섬세한 손가락에 매달려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신중하게 저울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여인의 표정과 자세가 평온하기만 하다. 영혼을 밝히듯 황금빛 커튼 사이로 흘러드는 부드러운 빛, 내면의 진실을 비추는 거울, 사후세계를 암시하는 <최후의 심판> 등이 배치된 실내의 안정된 구도 역시 고요한 성찰의 명상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최후의 심판>과 재물 사이에 서 있는 여인은 신성과 세속의 균형을 맞춰 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빈 저울이 수평을 유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정의로운 삶이라는 인생의 명제 앞에서 정신적 판단 기준을 잃지 말라는 뜻일까?

고대부터 천칭의 이미지는 영혼의 무게를 재고 선악을 판별하는 도구로 표현됐다. 그것을 통해 사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한편, 현세에서도 정의를 실천하자는 의미를 전달하곤 했다. 오늘날 천칭의 내세적 의미는 쇠퇴했지만 현실적 정의와 법의 상징으로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저울의 접시에는 끊임없이 사건이 올라가고 그 무게를 재는 일은 신중과 공정을 기해야 하는 민감한 문제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때때로 빈 저울을 들어 중심축이 제대로 맞는지 살펴야 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측량의 기준점이 어긋나면 절대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은영 문학박사·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