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아트컬렉터 미야쓰 다이스케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기술 복제 시대인 오늘날에는 과거 특정 소수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예술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짐으로써 대중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트(미술 작품)를 ‘소유’한다는 것은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에 반기를 든 사나이가 나타났다. 바로, 세계적인 아트컬렉터 미야쓰 다이스케(53) 씨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만으로 23년간 400여 점의 미술 작품을 모으게 된 인생 스토리를 엿들어봤다.
샐러리맨 미야쓰 다이스케는 어떻게 컬렉터가 됐나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의 저자 미야쓰 다이스케는 책 제목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이후 줄곧 일본의 휴대전화 회사 내 인사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을 소개하는 첫 단어로도 ‘평범한 직장인’을 내세웠다. 이랬던 그가 1993년 30세가 되던 해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 작품에 반해 월급을 털어 작품을 구입하면서부터 아트컬렉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혹시나 부모로부터 여윳돈을 상속 받은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매달 월급이나 보너스를 알뜰히 모아, 그는 주로 우리 돈 100만~500만 원 상당의 그림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를 ‘천달러의 사나이’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23년간 모은 그림이 벌써 400여 점. 그는 현존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이유로 현대미술품(contemporary art) 위주로 수집한다. 이렇게 구입한 작품들이 작가의 유명세를 타고 최대 100배까지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컬렉터인 그는 단 한 점도 되판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그동안 모은 작품들을 통해 전시회는 물론, 자신만의 컬렉션을 위해 집을 짓고 꾸미는 ‘드림하우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의 ‘드림하우스’에서는 예술 작품이 벽지가 되고 카펫이 되며 의자가 되기도 한다. 미야쓰 씨는 “예술은 부유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즐거움을 주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게 만드는 매개체다”라고 강조했다.

샐러리맨, 컬렉터, 작가는 물론, 교토 조형예술대에서 객원교수까지 역임하고 있는 바쁜 그가 지난 9월 9~1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어포더블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에 강연자로 나섰다. 직접 만나본 그는 소탈했지만 아트에 대한 애정만은 누구보다 특별하고, 뜨거웠다.

본인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소개하셨는데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미술 관련 전시회나 박물관들을 자주 관람했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가의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 일본 전통미술가의 전시회를 보고 그 꿈을 접게 됐죠. 그의 작품들 속 미적 테크닉은 제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을 보여줬거든요. 제 실력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웃음) 그래서 일단 대학에선 경제학으로 전공하되, 미술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고 공부했어요. 물론, 전문적으로 미술에 대해 배운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이후 앤디 워홀의 작품 세계에 빠져 현대미술을 파고들면서 관련 신인 아티스트와 작품을 찾게 됐습니다. 이후 1993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점>을 보고 반해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컬렉팅을 한 것이 벌써 400여 점이 됐습니다.”

대학 강단에도 서는데 무엇을 가르치시나요.
“교토 조형예술대 객원교수로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아트’라 하면 굉장히 높이 평가되는 동시에 현실 세계와는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간극을 좁히고 싶어요. 따라서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아트와 사회 시스템, 금융 프로그램 등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데 집중하죠.”

작품을 선정하는 본인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선 미술 작품이다 보니 비주얼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대미술의 특징이 그러하듯 그 작품에 숨겨진 콘셉트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일입니다. 두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작품을 선정한다고 볼 수 있어요. 가령, 최근에 제가 수집한 작품 중에 한국 작가인 정연두의 <보라매 댄스홀>(2001년)이 대표적이죠.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관객들에게 밝고 화려한 춤의 이미지를 선사하는 동시에 ‘보라매’란 공간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어요. 보라매는 한국 공군의 상징이자, 한국의 역사와 민주주의, 평화에 대한 함의가 담겨 있죠. 이처럼 현대미술은 그 자체로 세상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 깊고 넓어질 수 있어요. 제가 이 예술품들을 수집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400점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텐데 구입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저는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주식도 하지 않아요. 그 대신 알뜰히 모은 돈으로 그림을 삽니다. 월급쟁이도 미술품 수집가가 될 수 있죠. 저는 아직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수집하고 있어요. 이미 유명한 작품들은 저 같은 일반 샐러리맨의 월급으로는 수집하기 어렵지만 이제 갓 부상하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죠. 사람들이 저를 ‘천달러의 사나이’로 부르는 것도 제가 수집하는 작품들 가격이 대부분 1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이기 때문이죠. 단 400점 중 5점만이 1000만 원 이상을 주고 구입한 것들입니다. 아울러 저는 아트투자자가 아닙니다. 컬렉터이기 때문에 지금껏 작품을 되판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수집하신 작품 중 가장 크게 가격이 오른 작품들이 있다면요.
“쿠사마 야오이의 1965년 작품인 <무한그물>과 1981년 작품인 <호박>과 얀 파브로의 1996년 작품인 <전사의 묵주> 등을 꼽을 수 있어요. 그중 <무한그물>은 1996년에 50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현재 가치가 50억 원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이 작품들을 되팔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수집하는 일이 일종의 예술가와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그 속에서 피운 추억과 우정을 돈으로 판매할 수는 없죠. 지금처럼 저와 제 아내가 큰 경제적 문제없이 삶을 지속한다면 제가 모은 작품들을 모두 사회에 기부할 계획입니다.”

드림하우스 프로젝트란 무엇이죠.
“현재 대부분 제가 수집한 작품들은 온도와 습도가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는 특수 창고에 보관 중이에요. 하지만 미술품과 함께 살고 싶어 1999년부터 도쿄 인근에 미술품으로 집 내부를 꾸민 ‘드림 하우스’도 건축 중이죠. 이것 역시 어떤 투자 목적을 두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거대한 전시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제 막 아트컬렉터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하자면요.
“가장 확실한 조언은 ‘본인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작품이 향후 더 높은 가치로 오른다면 더욱 좋을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본인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향후 목표가 있다면요.

“지금처럼 샐러리맨으로서도 컬렉터로서도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미술품 수집가의 역할은 신진 예술가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 작품을 수집해서 잘 보관한 뒤 후손에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제가 수집한 작품들을 박물관 형태로 기부하는 것이 큰 목표이자 꿈입니다.”

미야쓰 다이스케는…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
<현대미술 경제학(일본)>의 저자. 교토 조형예술대 객원교수 및 아트컬렉터. 1993년 아트컬렉팅을 시작해 현재 약 400점의 작품 소장. 2011년, 타이완 MOCA 타이페이 ‘Invisubleness is Visibleness’, 2004년
도쿄 오페라시티 아트
갤러리 ‘Why Not Live For Art?’, 2007년 대림미술관 ‘Collector’s Choice’ 등에 자신의 소장품 전시 진행. 1999년부터 자신만의 아트컬렉션을 모아 놓은 ‘드림하우스’ 건축 중.

글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