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있어야 자유가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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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여러분은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가. 행복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 마음 안에 틀을 잡고 있는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기준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기준에 따라 행복을 느낄 수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로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 그가 쓴 <미의 역사>란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혹은 우아한, 사랑스러운, 숭고한, 경이로운, 화려한 같은 표현들과 함께-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경우에 아름답다는 것은 선하다는 것과 같아 보이는데, 사실 수세기 동안 미와 선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중략)…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물리적인 아름다움-남자, 여자, 풍경-뿐만 아니라 하느님, 성인, 사상 등의 아름다움과 관련돼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이 ‘선하다‛와 연관됐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열사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면 숭고한 느낌을 갖고 그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때의 아름다움이란 선한 것에서 전달돼 오는 것이다. 그런데 선한 것을 판단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개인, 집단, 시대에 따라 변하고 다양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예민한 주제이지만, 존엄사가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십수 년 전엔 살인방조죄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킨 채 삶의 끝을 마감하는 것이 더 옳은 것, 선한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유를 가진 사람이 인기도 좋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세대 간에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 선함의 기준이 조금씩이라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갈등엔 순기능이 있다. 균형을 맞출 수도 있고 보다 나은 상호 보완적인 기준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갈등이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기준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유, 달리 표현하면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공간이 있어야 자유가 숨 쉰다
엘런 맥팔레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학 교수는 이에 대해 존중과 예의의 중요성을 말했다.
“우정은 존중과 예의에 기초합니다. 그 존중과 예의는 밀접함에 근거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때 거리 두기는 타인의 개별적 주체성, 이를테면 개별적 욕구와 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사회적 공간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의 시간과 공간, 욕망을 강제로 침범한다면 그것은 육체적 학대 못지않은 심각한 폭력입니다. 그만큼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공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서로의 공간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로 가깝게 뭉친다고 해도 각자 개성을 가진 상대방의 독립성, 자유도 동시에 보살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타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 그렇게 어렵게 들리지 않지만 실제로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자유가 손상돼 개인 간, 집단 간에 끊임없는 갈등이 생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자유를 망가트릴 수 있는 강력한 요인 중에 이기심이 있다. 영어로 ‘self-centeredness’라고 하는데, 관심이 나에게만 집중돼 있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내가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우월하고픈 욕구다. 이기적인 사람은 모든 상황을 자기 입장에서만 판단하기에 상대방의 자유를 제한하기 쉽다.

이기적인 사람의 내면에는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거야’라는 잘못된 가정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개인의 이기심이 모이면 집단의 이기심이 된다. 내가 속한 집단의 사상과 담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구성원 간의 강력한 친밀감을 원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이긴 하나, 지나치게 되면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게 된다. 과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최근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무장단체의 참혹한 테러 행위가 극단적인 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르기에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는 걸 아름다운 통합이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기는 하나, 그것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에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다. 자유를 기반으로 한 최대치의 통합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생각된다. 타인의 자유와 다름을 인정하는 수준이 곧 개인과 집단의 심리적 성숙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아닐까 싶다.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생각이 나와 매우 다르더라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런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보다 인기도 좋다. 그러다 보니 좋은 관계도 가지기 쉽고 덜 외로울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