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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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저는 예스맨입니다. 그 덕분에 회사에선 나이스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통하지만 정작 저는 할 일이 아닌 일까지 떠안고 끙끙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거절을 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네요.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상담을 하다 보면 거절을 잘 못해 고민인 분들의 사연을 자주 접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좋은 관계를 가져야 행복하고 성공한다고 알고 있다. 실제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72년이란 긴 시간 동안 700명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해 연구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좋은 관계가 행복과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거다. 이 연구 결과를 한 일간지 연재칼럼에 인용했더니 인터넷에 살짝 악성 댓글이 실렸는데 위트가 있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연구를 안 하면 모르냐. 하버드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어렸을 때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부모와의 관계다.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 관계가 좋아지고 착한 아이라는 칭찬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칭찬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에 칭찬을 받기 위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빨리 알 수 있으면 그만큼 모범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요구를 잘 읽어 반응해주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주변에 친구가 많아진다. 내 마음보다 상대방의 요구에 잘 반응하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보상이 있다. 착한 아이, 모범생, 나이스한 친구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주변에 인식되는 쾌감이다.

그렇지만 너무 상대방의 의견에만 맞추는 삶을 살다 보면 정작 중요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에 어색해지게 된다.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거절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이 아니다. 거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상대방에게 잘 보여주는 과정이다. 나를 상대방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란 평가에 빠져 ‘예스맨’으로만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거절 없이 예스맨으로 산다는 것은 나보다 상대방 마음에 더 관심이 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100명보다 소중한 1명

좋은 관계가 행복과 성공을 가져온다고 하는데 거절을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다 맞추어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관계는 아닐 것이다. 예스맨으로 살다 보면 주변 인식은 좋아질지 몰라도 점점 마음이 답답해지고 불편해진다. 주변에 친구가 많아도 고독감이 찾아올 수도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사람의 행복이 길게 유지된다고 한다.

<미움 받을 용기>란 책이 많이 읽혔는데, 미움 받을 용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받지 않아도 되는 용기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하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서 과감히 내 진짜 모습을 남에게 열어 보여주자는 것이다, 약점도 콤플렉스도. 그래서 그것을 공감하고 따뜻하게 반응해주는 사람과는 잘 지내는 것이다. 싫다 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너무 고생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서적 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그럴 듯하게 만든 내 모습에 호감을 주는 100명보다 용기 있게 내보인 내 진짜 모습에 따듯하게 반응해주는 1명이 내 자존감을 더 튼튼하게 해줄 수 있다.
“거절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