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시대의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
RETIREMENT ● Longevity
[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 석좌교수]

본 칼럼에서는 저자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백세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사람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며, 장수하는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리고 그들의 현재 삶의 모습은 어떤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이 오래 사는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100세 시대의 문제점과 미래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00세까지 살면서 좋은 일 궂은일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부득이 헤어지게 돼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백세인 정도 되면 그러한 안타까움을 안고 50, 60년은 당연하고 어떤 사람은 70, 80년을 그렇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은 장수의 부작용이라고 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신화 중에서 압권은 그리스 신화의 페넬로프 이야기다. 서양 신화에 정숙한 여인이 등장하기는 흔하지 않은데, 페넬로프는 호머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아내로서 최고의 정녀다.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트로이 전쟁으로 10년, 그리고 신을 우롱했다는 벌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다시 10년을 헤매다가, 떠난 지 20년 만에 겨우 고향 이타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그동안 108명이 넘는 구혼자들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그의 아내 페넬로프는 죽은 부왕의 수의를 짜는 기간만큼은 기다려달라고 호소해 양해를 얻고 옷을 짜기 시작했으나, 밤마다 다시 풀고 낮에 다시 짜는 일을 거듭해 시일을 끌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오로지 남편인 오디세우스의 귀환만을 바라며 20년을 수절하며 기다려 온 페넬로프는 이후 서양에서 가장 정숙한 여인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않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이 부모 은공을 갚고자 불국사를 창건할 때 석가탑을 짓기 위해 당시 최고의 석공이었던 백제 땅의 아사달을 불렀다. 그의 아내 아사녀는 3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남편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어 경주 불국사를 찾았으나 문지기가 불사에 여인이 끼면 안 된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꼭 보고 싶으면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영지(影池)라는 연못에 비칠 것이니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영지에서 남편이 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본 아사녀는 그 남편의 환영에 달려가다 물에 빠져 죽고 이후 이 소식을 들은 아사달도 아사녀를 따라 죽었다는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이 있다. 백세인 조사에서 이러한 페넬로프나 아사녀 못지않은 슬프고 안타까운 기다림의 사연들을 볼 수 있었다.

백세인의 숙명

강원도 백세인 조사에서는 사연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통일전망대에서 멀지 않은 고성군 산속 마을에서 만난 백세 할머니는 양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둘의 관계는 특별하다. 한국전쟁으로 할머니의 남편은 납북됐고 북한군이었던 양아들은 국군의 포로가 됐다가 방면돼 북에서 가장 가까운 고성군으로 들어와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양아들이 돼 함께 살게 됐다. 50년이 지났지만 할머니도 재혼하지 않고 오로지 북에 간 남편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며 언젠가 돌아올 남편과 길이 어긋나지 않도록 이사도 하지 않고 그 집에 그대로 살고 계셨고, 양아들도 결혼하지 않고 통일만 되면 제일 먼저 북으로 달려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반백 년이 넘었어도 변함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북에 남겨둔 가족을 찾아가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을 보면서 그리움의 강렬함과 위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도의 백세인 조사는 편안한 기분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지역의 기후도 온화하지만 풍광이 안온해 찾아간 마을마다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전남 담양군 수북면 삼인산이라는 멋진 산기슭에 사는 백세인을 만났다. 할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와서 스물넷에 아들 하나 남기고 영감님이 돌아가셔서 80년 가까이 청상과부로 지낸 분이었다. 아들 내외가 잘 모시고 있어 차림도 깨끗하고 몸가짐도 단아해 조사팀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분이었다. 우리를 만나자마자 “사람이 온께 좋소. 오래 산께 별일도 다 있소. 사람이 귀해라우” 하며 반겨주었다. 조사팀이 할머니에게 살아온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묻자, 긴 한숨을 내쉬면서 “영감 잃고 한 세상 못 본 것이 한이여” 하며 조사팀 중의 여성 멤버들에게 “영감을 하늘같이 여겨야 해” 하며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청상과부 생활 80년을 하면서 내내 일찍 떠나버린 남편을 그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삶의 엄정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령자 찾기를 목적으로 105세 이상 되신 분들만 따로 만나고 다니던 중, 산세가 독특한 마이산을 지나 전북 진안군 백운면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만난 윤정안 할머니는 계유생(1897년)으로 19세기, 20세기, 21세기의 3세기를 살아오신 특별한 분이었다. 조사팀이 만났을 때 107세셨고 자식이 팔남매였으며, 이들 또한 자식을 많이들 낳아 5대 가족으로 직계 자식의 숫자가 총 200명이 넘는 대가족을 이루었다. 할머니는 100세가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곱상하고 매우 수줍어하셨다. 할머니에게 제일 보고 싶은 가족이 누구냐고 어느 손자일 거라는 기대로 물었다. 할머니의 답은 우리의 의표를 찔렀다. “보고 싶다면 데려다줄 거야” 하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천당 가서 만날 수 있을랑가 모르겠어….” 할머니에게 “그럼 천당 가서 영감 만나면 뭐 하고 싶으신가요” 하고 다시 묻자, 이내 “뭐하긴. 영감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어. 영감 그동안 나 없이 어떻게 살았어”라고 했다. 함께 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배어난 감동의 말이었다.

페넬로프나 아사녀의 기다림보다도 몇 배나 오랜 기간을 기다리고 그리워해 온 백세인들을 보면서 삶의 바탕에 깔려 있는 기다림의 숙명을 본다. 더욱이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경우는 생사 여부도 명확하지 않아, 또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포기하며 이미 70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현실을 보며 우리 민족에게 덧붙인 한(恨)의 안타까움을 보았다.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