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Act]강종규 향리낚시터 대표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예부터 공기 좋고 물 맑기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향리. 산수유 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청정수가 흐르는 15만8677㎡ 규모의 낚시터를 운영하는 강종규(58) 향리낚시터 대표는 직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마을 이장이다. 한때는 잘나가던 건설사를 경영했던 그가 시골로 들어와 누리는 제2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건설업자로 100억 벌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요”
9년 전 경기도 양평군 향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강종규 향리낚시터 대표의 삶은 성공과 실패를 오가며 거칠고 굴곡져 있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흙수저’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외가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살림으로 누님은 다른 가정에 입양돼 성년이 돼서야 다시 만났다고 하니 가난은 그에게 늘 벗어나고 싶은 최대 과제였다.

“어려서 참 가난했죠.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살았어요. 그러다 군 입대를 했고, 군 생활을 하면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대에서 전기기술 관련 자격증을 따서 제대 후 한 10개월 월급쟁이로 생활하다가 스물여섯 살에 바로 독립했어요. 전기공사 관련 회사였는데 운 좋게 한보철강의 사업을 저희 회사가 많이 수주했죠. 이후 10년 정도는 정말 무섭게 돈을 벌었습니다. 그 당시에 100억 원짜리 계약까지 성사시켰거든요.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하다 보니 자만심이 생겨났고, 저도 모르게 경영이 느슨해졌어요. 그때 바로 한보철강이 부도가 나면서 하루아침에 빚쟁이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거기에 IMF 외환위기까지 닥치니까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딱 죽고 싶었습니다.”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의 방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분노가 그를 송두리째 휘감았다. 자살을 고민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무엇보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혔다. 1년간의 긴 방황 끝에 그는 작은 사업을 꾸려 2년간 재정비를 한 뒤 다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경북 문경시에 내려가 건설사를 인수해 아파트 시공 사업에 매진했다.

하지만 각종 이해집단과 엮여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기나긴 법정 싸움이 이어지는 등 만만치가 않았다. 그의 삶도 고단해져 갔다. 이때 그가 선택한 취미가 낚시다. 자연을 벗 삼아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동안 혼자 생각할 여유를 주는 낚시에 매료된 것이다. 그때부터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그는 낚시터를 찾아다녔다.

지금 향리낚시터 역시 9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오게 됐다가 첫눈에 반해 3일 만에 계약까지 성사시켰다. 처음엔 1, 2년만 살다가 나가야지 했던 것이 지금까지 그의 몸과 마음을 이곳에 머물게 하고 있다.

“솔직히 여기에 처음 왔을 땐 1년 만 있다가 법정 싸움만 정리되면 다시 서울에 가서 사업을 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여기 지역주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제 마음 가는 대로만 행동했죠. 원래 사업을 오래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권위의식이 높아서 타인과 소통하기보다 명령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 역시 처음엔 좀 그런 면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2년 정도 여기 있으면서 흙도 만지고, 자연과 함께 정화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변하더군요. 일이 생기면 급하게 화부터 내던 것도 한 박자 숨을 고르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그들을 배려하고 정을 줘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그런지 요새 동네 분들이 9년 전 제 눈빛과 지금 제 눈빛이 완전 다르대요. 순해졌다나요(웃음). 저도 가끔 절 보고 놀란답니다.”
“건설업자로 100억 벌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요”
그렇게 향리로 몸을 옮긴 지 2년 만에 그는 모든 사업을 접고, 낚시터를 운영하고, 논밭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을에 대한 애정이 싹튼 그는 솔선수범 마을 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바쁜 농번기마다 일손을 자처했고, 주변 환경 개선을 위해 꽃도 심고 거리 정화에도 힘썼다.

지역축제 기간에도 그는 묵묵히 제 몫을 해 나가며 주민들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 타지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향리 이장에 선출됐다. 요즘 강 대표는 전보다 더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이장이 되면서 좀 더 마을 일에 참여도가 높아졌죠. 예전에는 낚시터 일이랑 농사만 지었는데 지금은 매일 면에 나가서 지역관리자들과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처리해야 할 문서도 늘어났어요. 그런데 일은 그리 고되지만은 않아요. 정말 힘든 건 역시 사람이죠. 향리에 62세대가 살고 있는데 타지 사람들의 귀농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문제는 원래 주민들과 타지 분들의 생각 차이가 종종 발생해서 서로 갈등이 심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중재 역할을 하는데 맘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양측을 만나서 적극 대화하도록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해요. 그것이 진짜 함께 사는 마을이니까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만큼 강 대표가 힘을 쏟는 일은 또 있다. 바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는 것. 특히, 그는 산수유 외에도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라나는 지역 특산물의 판로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까운 지역 간 협약을 맺어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온라인 홍보 및 유통망을 구상하고 있는 그는 영락없는 향리 이장이었다.

“이제는 서울 생활이 전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이곳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늘 불같던 제가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배워 가고 있다는 거예요. 저 역시 행복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네요.”

김수정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