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가면을 던져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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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심리
[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누군가를 의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반응이다. 타인이 내가 이야기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우리 모두에게는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내재돼 있다.

부끄러움은 감정이지만 몸으로도 표현된다. 얼굴도 빨개지고 심장이 뛰기도 하고 땀이 나기도 한다. 이런 부끄러움의 감정이 일으키는 신체 반응을 응용한 기계가 거짓말 탐지기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저 사람에게 들키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생긴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럴 때 여러 신체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을 측정하는 것이 거짓말 탐지기다. 정밀한 거짓말 탐지기를 쓰지 않아도 이런 신체 반응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것으로 의심되는 친구에게 “너 A 좋아하지”라고 갑자기 물을 때, 얼굴이 빨개지며 큰소리로 “아니야. 절대 아니야”라 답한다면 무지하게 좋아한다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정상적인 것이지만 지나치면 개인에게 불편을 준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심할 때 찾아오는 것이 사회공포증이다. 타인의 평가에 대해 너무 의식한 나머지 사람들 앞, 특히 잘 모르는 사람과 있으면 심한 부끄러움 반응이 온다. 과도한 부끄러움 반응은 매우 불편한 반응이기에 점점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행동이 이차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과도한 부끄러움 반응은 낮은 자존감과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다. 타인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야 자존감이 다시 올라갈 수 있는데, 과도한 부끄러움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니 자존감도 더 떨어지고 부끄러움도 더 커져 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부끄러움이 문제인 것이지 정상적인 부끄러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 나아가 부끄러움이 사회에 유익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부끄러움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고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 능력이기에 오히려 부끄러움을 잘 느끼는 사람들이 이타적 행동도 많고 사회에 유익을 주는 행동도 많이 한다는 것인데, 내 부끄러움에 대해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부끄러움은 사회공포증에 이르러 내 생활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과도한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교나 경쟁 같은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인데 비교나 경쟁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서로 너무 경쟁하고 싸워 힘들다는 부모들의 고민 사연이 많다. 이런 형제간 경쟁이 한 살부터 시작된다는 주장도 있으니 그 본능의 뿌리가 깊은 것인데, 본능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욕구지만 너무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위축시켜 버린다.

근래 <미움 받을 용기>란 책이 많이 읽혔는데, 열등감 심리를 중요시한 정신분석가 알프레드 아들러 사상을 저자가 나름대로 해석한 책이다. 이 책에는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열등감이다.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이 사람에는 이겼어, 저 사람에게는 졌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경쟁에서 해방되면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해방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과도한 부끄러움은 낮은 열등감과 연결돼 있다. 비교를 많이 하다 보면 남도 쉽게 무시하지만 자신의 자존감도 떨어트리기 쉽다. 그래서 과도한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는 여유가 필요한데, 이 여유가 단지 머리로 경쟁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고 잘 찾아오지 않는다.

미움 받을 용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받지 않아도 되는 용기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하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서 과감히 내 진짜 모습을 남에게 열어 보여주자는 것이다. 약점도 콤플렉스도. 그래서 그것을 공감하고 따뜻하게 반응해주는 사람과는 잘 지내면 되는 것이다. 싫다고 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너무 고생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서적 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그럴 듯하게 만든 내 모습에 호감을 주는 100명보다 용기 있게 내보인 내 진짜 모습에 따듯하게 반응해주는 1명이 내 자존감을 더 튼튼하게 해줄 수 있다. 자존감이 올라가면 지나친 부끄러움도 조금씩 줄어든다.

가면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타인이 알고 있는 자신은 실제 자신과는 다르며 이 가짜 자아의 가면이 언젠가는 벗겨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라 한다. 가면감정이 심해지면 극심한 불안감이 주 증상인 공황장애가 찾아올 수도 있다. 인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던 한 방송인이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인기가 커져 언제 추락할지 너무 두려웠다”라고 한 고백이 기억난다.

페르소나는 그리스어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가면이 거짓이거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에 사회에서 요구되는 나의 모습에 나를 맞출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균형이 중요하다. 가끔은 가면에 가려 숨차하는 내 진짜 자아가 숨을 깊게 들이마실 수 있게 가면을 잠시 던져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