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48호 (2017년 09월)

기러기 아빠의 성(性)은 누가 돌볼까



[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가족과의 한시적인 별거를 선택한 ‘기러기 아빠’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자녀의 교육 문제 때문이라면 통상 ‘기러기 아빠’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혈기왕성한 이들의 성 건강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최근 한 연예인의 재혼 소식에 이어 그가 그전의 결혼에서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10억 원 가까이를 가족 부양을 위해 조달했으나 결국 파경을 맞은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매달 3500만 원을 송금했다니 그가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동분서주 했을까에 대한 공감과 함께 기러기 아빠로 사는 생활의 고단함이 다시 부각됐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로 4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50대 가장이 생활고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빠처럼 살지 말라’는 유서를 써 놓고 자살한 일도 있었다.

‘기러기 아빠‘란 해외에 조기유학을 보낸 자녀와 아내의 교육비 및 생활비를 대기 위해 자신은 한국에 남아서 홀로 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송금하고,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어 가족을 만나는 아빠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다.

기러기 아빠라는 개념이 시작된 2000년 초에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의사, 교수, 사업가, 연예인 등이 주를 이루며 약간의 선망과 함께 ‘기러기 아빠’의 대열에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점점 중산층과 단순노무자 등 저소득층까지 ‘기러기 아빠’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2013년 한국의 기러기 아빠는 드디어 20만~3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러기 가족을 선택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대개 비정상적인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싫어서 내 아이만큼은 좀 더 나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고, 교육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오게 해서 계층 상승을 이루겠다는 한시적인 별거의 개념으로 결정한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이유에서 기러기 가족으로 잠시만 살아 보자는 결정을 한다.

하지만 이미 부부관계가 악화돼 함께 살기 어려운데,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혼 남녀로 살기보단 멀리 떨어져 살면서 자식 교육이라도 건져 보자는 의도로 시작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들의 생활을 보면 참 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해외 거주 비용을 좀 더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한국의 집을 줄인 경우가 많아서 대개 기러기 아빠들은 좁은 아파트나 원룸에서 생활한다. 집에 들어와도 사람의 온기가 없으니 거의 매식을 하고,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다 잠들기 일쑤다.

◆기러기 아빠로 산다는 것…문제는 외로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기러기 엄마에 비해 기러기 아빠들의 건강은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운동도 하고,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고, 건전한 취미활동을 즐기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가 송금기계로 전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떤 때는 ‘힘내세요,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늘 똑같은 문자나 화상통화가 겉도는 느낌이 드는데, 그때는 다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하고 싶어요. 하지만 전 아빠고 가장이니까.”

“사실 만만치 않은 교육비와 생활비를 매번 송금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자식들에게 내색하기는 쉽지 않고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죠. 어떤 때는 가족들이 내 등에 빨대를 꼽고 피를 빨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처음 아내가 아이들 해외유학에 대해 말할 때 왜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을까 후회합니다.”

게다가 기러기 아빠와 엄마는 대개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성 욕구를 어떻게 해결할까? 남자나 여자나 사랑받고, 하고 싶은 욕구로 섹스를 한다. 또 이런 정서적, 심리적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육체적 성 건강을 위해서 규칙적인 성생활은 꼭 필요하다.
 
그들은 그럼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섹스를 할까? 그것도 아내나 남편을 만났을 때만? 청소년도 아니고 기러기 아빠들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성인 남자이기 때문에 섹스를 꼭 아내와 하지 않아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 그럴 기회도 한국은 넘쳐난다. 내가 하려고만 한다면 성적 서비스를 받을 곳은 너무나 많다. 

물론 대다수의 기러기 아빠들은 높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금욕을 할지도 모른다. 간간이 자위행위를 하거나 참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건전하게 헬스나 테니스 등으로 성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며 ‘바른생활’을 할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단지 감각적인 쾌락을 위해서만 섹스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서적으로 누군가와 아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섹스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결혼 전처럼 일회적인 파트너를 만나기도 하고(친밀감이 깊어지면서 따라오는 여러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계가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정한 상대를 만나면서도 ‘나는 기러기 아빠임’을 밝히고 법적, 경제적 책임을 지지 않는 쿨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사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일회적인 관계는 건강·경제·심리적 면에서 부담이 크다. 또 이런 일회적인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섹스를 사람과의 관계를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해소’의 문제로 보기 쉽고, 섹스 중독에 빠질 수도 있으며, 훗날 아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소모적인 섹스로 사람이 황폐해지기도 쉽다.

일정한 상대와 쿨한 관계는 더욱 쉽지 않다. 섹스를 통해 친밀감은 쌓이고, 그러다 보면 뭔가 깊은 관계로 맺어지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은 진리다. 일상 속에서 아빠라는 존재를 경험하지 못한 가족들은 오랜만에 잠깐 아빠를 만나는 것은 좋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거추장스럽고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야 가족이고, ‘미운 정’이란 갈등이 생겨도 그것을 풀어내고, 또 풀어내는 방법에 이해가 생기는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결혼으로 묶였다고 다 부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서로 많은 대화를 하고, 돌보고, 안쓰러워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섹스도 해야 그것이 부부다.

기러기 가족을 선택하기 전에 혹은 지금 기러기 가족으로 살고 있더라도 심각히 생각해봐야 할 것은 ‘내 인생은 한 번’이라는 것이다. 10년 후에 돌아봐도 지금의 결정을 잘 했다고 생각할 것인가?

행복한 사람의 인생이란 함께 느끼고 나누며 사는 것이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라도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돼선 안 된다. 아이들에게도 아빠와 엄마가 서로 돌보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어른답게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다. 사랑은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면서 배우는 것이므로.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민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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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9-0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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