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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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선물은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기에 감성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기에 훌륭한 기획과 명품까지 동원된 이벤트와 선물도 실패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만 있으면 누구든 감동시킬 수 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가족, 친구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 시즌이다. 그런데 선물로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 큰 지출을 감행했건만 상대방 반응이 시원찮으면 당황스럽다. 돈도 아깝고 내 마음도 쑥스럽다. 몇 번 실패하고 나면 단순하게 살자 생각하게 되고 상품권을 선물로 이용하게 된다. 사실 이용의 편리성만 생각하면 상품권을 주느니 그냥 현금을 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돈이 선물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나 보다. 현금보다 불편한 상품권이 선물로서의 경쟁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으니, 선물의 가치는 그 물건 값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표현할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으로 사랑을 얻고 그 사이에 채널이 형성되면 그다음에 전달되는 선물은 비쌀수록 나쁠 리 없다. 그런데 돈이 권력이다 보니 마음을 돈으로 사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돈의 힘으로, 물량 공세로 마음을 얻고, 그리고 ‘돈 들여서 너의 마음을 샀으니 그 보답으로 이제부터 진정한 사랑을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기계적 친절’이 싫다고 한다. 고객들은 민원을 내고 회사는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라고 친절 교육을 한다. 살아 있는 생물인 사람이 스스로를 기계인 양 자세를 낮추어 친절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것이 싫다고 아우성이다. ‘진짜 사랑’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감성 시스템이 만드는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기에 돈만 준다고 펑펑 쏟아져 나올 수 없다. 돈의 요구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감성은 기계적인 수준 아닐까. 진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감성 마케팅은 생존을 넘어선 감성 만족이란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진짜 친절, 진짜 사랑에 대한 소비자 욕구를 증가시켜 버렸다. 돈을 지불해 물건을 살 때 살짝 따라오는 친절에도 우리는 겁나게 감동했었다.

서프라이즈 선물보다 관심과 배려의 선물

20년 전쯤, 한 자동차 회사가 차량을 새로 구입한 구매자에게 불편함이 없는지 묻는 전화는 감동 자체였다. 그러나 그런 서비스가 일반화된 지금은 피곤하기만 하다. 전화까지 해서 귀찮게 하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성이 생겨 버린 것이다. ‘진짜배기 친절에 대한 수요’와 ‘사람이 진심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친절의 공급량’에 심한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 감성노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주된 원인이다. 단골 고객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으나 진심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런데 물건에 친절과 사랑을 칵테일해 마케팅을 하다 보니 우리는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됐다. 불친절함에 대해 막말과 인격적 무시까지 하며 화를 내는 고객은 사실 스스로에게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왜 돈으로 너의 마음을 살 수 없느냐’고 말이다. 감정적인 민원을 많이 내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의 마음은 병들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친절중독의 금단 증상으로 우울과 분노를 보이는 것이다.

선물은 상호 작용이다. 내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서로의 마음이 통할 때 진짜 친절과 사랑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며칠째 대화 없는, 부부 갈등을 해결하려고 비싼 선물을 했는데 오히려 아내가 더 화를 내 자신도 화가 났다는 남편의 고민 사연이 있다.

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지 않은 남편에게 섭섭한 상황이었다. 마음의 소통 채널이 단절됐다 느꼈을 것이다. 며칠간 대화의 단절은 남편에게 미안함 더불어 불안감을 주게 된다. 그 불안감만큼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지만 이런 멋진 선물이 아내 입장에선 화내고 속상할 수 있는 자신의 자유마저 빼앗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받으면 한심한 자신이 되고 거절하면 나쁜 여자가 돼 버린다.

서로 관계가 좋을 때 서프라이즈 선물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깜짝 선물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해일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기획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읽었기에 감동하는 것이다. 청혼을 기대하고 있는데 깜짝 청혼을 하니 감동하는 것이지 결혼 생각도 없는데 시도하면 깜짝 놀라 여자는 멀리 도망가 버릴 수 있다.

앞의 부부의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경청하는 마음을 먼저 선물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나서 거절당한 명품 백도 슬며시 다시 건네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일차원이 아닌 이차원 이중구조이기에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면 아내도 너무 내 주장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프라이즈 선물, 비싼 선물도 좋지만 먼저 상대방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준비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 방법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몰라서 고민되면 물어보는 것도 좋다. 예상 못한 선물보단 물어서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이 더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질문 자체도 관심과 배려의 선물로 상대방은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