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섹스로봇에 마음까지 뺏길까?
[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사용자의 섹스 취향에 대한 기억과 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AI) 섹스로봇이 등장했다. 섹스토이에서 정서적 연인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는 섹스로봇에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까?

오랜만에 후배들과 대학로에서 만나 연극도 보고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마침 그날은 올겨울 들어 가장 혹한의 날씨였던 터라 자연스레 화제가 이상기온 등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AI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성 전문가인 필자가 있는 탓에 섹스로봇에까지 이야기가 진전됐다.

섹스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한 후배가 갑자기 필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선배님은 섹스로봇을 살 수 있게 되면 구입하실 거예요?” 섹스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 왔지만 이런 질문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어서 잠시 멈칫했지만, 곧 대답했다. “아마도 사지 않을까? 지금은 내가 젊지만, 내가 70세가 넘어가면 누가 나를 잘 돌보고 놀아주겠어? 꼭 섹스를 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내 곁에 있어주고, 따뜻한 스킨십도 나누고, 말동무도 해주고, 기능이 좋아지면 토론도 가능할 거야. 그렇다면 사야지.”
“그래도 어떻게 섹스로봇을 사겠어요?”
“앞으로 섹스로봇은 섹스로봇이라고 한계 짓지 않을 걸? 아마 그 로봇이 가진 많은 기능 중에서 섹스도 하는 거겠지. 이를 테면 나랑 대화도 하고, 비서 역할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식사 준비도 하고, 청소도 하고, 집 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맡아서 척척 해내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내가 그 로봇을 소개하면서 ‘얘가 내 섹스 파트너입니다’라고 하지는 않겠지. 아마 비서라고 하지 않을까? 하하. 지금은 남자들을 위한 섹스로봇이 관심을 모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들을 위한 남자 섹스로봇이 인기를 끌 거야. 물론 다기능 로봇이라고 선전할 테지만.”

◆섹스로봇과의 섹스는 외도일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 ‘섹스로봇’에 대한 질문을 올려보았다. ‘섹스로봇과의 섹스는 외도인가’를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외도라는 대답보다는 ‘섹스토이 같은 장난감 놀이에 불과할 것’이라는 대답을 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을 자신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AI를 탑재한 섹스로봇이 단순히 스위치를 누르면 작동되고, 빙빙 돌거나 빨아들이거나 하는 바이브레이터 같은 섹스토이의 기능만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섹스로봇에 친밀감, 결속감 같은 정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애완견이나 애완고양이에게 갖는 정서적 친밀감보다 훨씬 강력한 감정을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AI를 주제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하나는 가장 자유로운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는 재즈의 작곡과 연주에 AI와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의 경합을 붙였다. 물론 관객들은 한쪽 팀이 AI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번갈아가며 곡조를 주거니 받거니 연주한 끝에 어느 쪽이 더 감동적이고 좋았는지를 판단하게 했는데, 재즈 뮤지션은 60%, AI는 40%의 점수를 받았다. 나중에 사람과 AI와의 대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무척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또 하나는 3명의 젊은 여성들이 각각 남성들 4명씩과 채팅을 하게 했다. 물론 여성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며, 더욱 그중 하나는 AI라는 것을 몰랐다. 1시간가량 네 남자(?)와 대화를 주고받은 여성은 그중 한 사람을 데이트 상대로 골랐는데, 놀랍게도 3명 중 2명이 AI를 골랐다. 그 결과를 알게 된 여성들은 처음엔 깜짝 놀랐고, 곧 얼굴이 복잡해졌다.

이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실 재미있었다기보다는 좀 두렵고 당황스럽고 불편해졌다. 우리가 사람의 감정, 창의력, 정서를 로봇이 가질 수는 없을 거라고 과신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트 상대로 AI를 선택한 여성들의 표정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이 결과는 AI가 여성들이 상대 남성에게 바라는 낭만적인 정서와 배려, 존중, 그리고 유머, 나아가 속임수까지를 꽤 익숙하게 구사했다는 것이다. 영화 <허(HER)>에서 한 독신남이 여성의 목소리만으로 구현되는 AI 시스템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녀(?)의 진화하는 연애 능력을 만족시켜줄 수 없어 실연(?)당하는 이야기가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이 아니란 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AI는 학습이 가능한 AI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얼마 전에도 AI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AI끼리의 소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 두려움이 섞인 논평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런 AI 시스템을 탑재한 섹스로봇이라면 단순한 섹스토이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특히 섹스라는 아주 사적인 행위를 나누다 보면 사람의 모습을 한 로봇에 ‘사랑’이라는 정서가 흐를 수밖에 없다. 옛날에 자신이 만든 석고상 ‘갈라테이아’를 사랑해서 옷을 입히고, 같이 자고, 꽃을 바치다 결국엔 신에게 서원해서 사람으로 만들어 아내를 삼았던 피그말리온처럼 말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섹스로봇과 결혼하고, 상속을 할 것이다. 심지어 같이 묻히길 원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가진 윤리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섹스만을 위한 로봇이라는 개념을 깨면 될 일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문명기계도 ‘성’, ‘섹스‘와 관련되면 비약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이미 우리는 아마존의 알렉사, 애플의 시리, 구글의 홈 등 음성인식 AI와의 대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섹스로봇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AI를 탑재한 고성능 다기능 로봇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지금은 좀 멍청해 보이고, 모두 젊고 예쁜 여자의 얼굴에 육감적인 몸매를 하고 있어서 섹스 기능을 강조하고 있지만, 곧 섹스로봇은 우리의 주변에서 일상을 함께하는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외모는 미남미녀가 되겠지만 이 로봇은 지금의 불완전하고 어색한 디자인에서 더 나아가 아마도 우리가 SF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우리와 똑같은 외모를 가지게 될 것이며, 우리와 함께 살며 일상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 것이다.

그 로봇은 우리가 외로울 때 대화 상대가 돼줄 것이고, 몇몇 관심사에 대해서는 진지하고 신나는 토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비서 역할과 청소, 빨래, 다림질, 요리 같은 집안일도 척척 내게 맞춰 해내는 기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20년 안에 이웃으로 만나게 될 로봇, 당신은 그/그녀에게 어떤 인사를 하게 될까?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