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금란방>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연말연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공연을 보고 싶다면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창작가무극 <금란방>은 어떨까. 왁자지껄한 전개 속에 허를 찔러 시대를 풍자하는 몰리에르식 희극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허락되는 그곳
서울예술단이 오는 12월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올해 마지막 정기공연으로 유쾌한 희극 한 편을 선보인다. 창작가무극 <금란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금란방>은 18세기 조선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 금주령과 전기수(傳奇叟)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 조선 후기 최고의 유행은 소설 읽기였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책값이 비싸 책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직업이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낭독가 전기수였다. 전기수는 단순히 이야기만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몸짓, 손짓, 표정, 말투로 연기를 했으며, 탁월한 말솜씨로 흥미로운 대목에 이르면 소리를 그치고 청중이 돈을 던져주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낭독을 시작하는 등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끼를 겸비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이 시기는 강력한 왕권 확립의 일환으로 엄격한 금주령이 시행된 영조의 통치 시기였다. 금주령은 조선시대 500년 동안 국가의 기본 정책이었으나, 민가의 제사는 물론 종묘제례에서도 술을 쓰지 않은 임금은 영조가 유일했다. <금란방>은 강력한 금주령을 실시했던 영조 시대에 있었을 법한 밀주방이자 매설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분, 연령, 성별의 차이를 뛰어넘는 유쾌한 소동극이다.

무엇보다 <금란방>은 금기(禁忌)를 깨는 이야기다. 가지 말라는 곳은 더 궁금하고, 마시지 말라는 술은 더 달콤하며, 하지 말라는 사랑은 더 짜릿하기 마련. 술시(戌時, 7~9시)가 되면 문이 열리는 그곳, 금란방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옆 사람 눈치도 볼 필요가 없고, 웃고 싶으면 박장대소하고, 공감이 가면 환호하고 그렇게 잠시 잠깐 시끄러운 세상사일랑 접어두고 금란방의 손님이 돼 이자상이 들려주는 오묘한 이야기와 금기가 만들어낸 낭만에 풍덩 빠져보는 건 어떨까.

이를 위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블랙박스시어터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작품 속 비밀스럽고 은밀한 금란방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특별한 방법으로 입장하게 될 조선시대의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격인 금란방의 문이 열리는 순간, 관객들은 내비게이션에 안 나오는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간판 없는 ‘스피크이지 바’의 문을 열었을 때의 성취감만큼이나 짜릿하고 색다른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탄탄한 극본과 연출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서울예술단과 처음 작업하는 창작진들의 면면 또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출은 연극 <날 보러와요>·<보도지침>, 뮤지컬 <판>·<아랑가>·<러브레터> 등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풍자부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변정주 연출가가 맡았다.
모든 것이 허락되는 그곳
극본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등을 통해 대학로의 새로운 이야기꾼으로 급부상한 박해림 작가, 음악은 <라흐마니노프>·<붉은 정원>·<살리에르> 등 물 흐르듯 유려한 음악으로 사랑받는 이진욱 작곡가가 맡아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