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비진도·욕지도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한경 머니 기고=양보라 여행전문기자] 우리 땅에 이보다 더 푸진 바다가 있을까 싶다. 경남 통영 얘기다. 봄 도다리, 여름 하모(갯장어), 가을 전어, 겨울 굴 등 통영 앞바다는 사시사철 해산물이 올라온다. 그래서 통영 여행은 부지런히 ‘먹는 게 남는 것’이라 여겨 왔다.

그러다 생각했다. 혀끝이 아니라 두 발로 통영의 바다를 한번 만나보자고. 이것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박혀 있는 통영의 부속 섬 비진도와 욕지도를 일부러 찾아간 이유였다. 북적북적한 통영 시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갓진 분위기 속에 시퍼런 물빛을 감상하며 바닷길을 걸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통영의 진짜 매력에 이제야 눈을 떴다고. 허겁지겁 갯것을 삼키지 않고도 꼭꼭 씹어 바다를 맛본 기분이었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섬의 잘록한 허리를 안다
통영은 항구도시다. 우리 한반도 남녘 끝자락에 붙어 있는 ‘육지’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게 통영은 ‘섬’이다. 통영시 산하에 무려 570개의 섬이 딸린 까닭이다. 바로 이 섬들이 우리가 ‘통영’ 하면 자동 연상되는 ‘다도해’ 풍경을 빚어낸다. 크고 작은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통영의 바다는 펄이 너른 서해나 거칠 것 없이 쭉 뻗은 동해와 달리 앙증맞고 온화하다.

통영 부속섬 비진도로 입도하기 위해 4월 하순 통영에 닿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차로 4시간 30분이 걸려 마주한 다도해는 기억 속의 평온한 바다가 아니었다. 하늘은 꾸물꾸물했고, 파도는 잔뜩 성이 난 모습이었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비진도로 향하는 여객선도 전면 운항이 금지됐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혹시나 비진도 근처에 가지도 못할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밤잠을 설쳤다. 해마다 통영을 찾았지만, 아직 실체를 보지 못한 비진도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그만큼 컸다. 비진도는 소매물도, 사량도 등 이름난 통영 부속섬에 비하면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통영 현지 시민들이 가까운 여행지로 추천하는 섬이어서 호기심이 동했다. 여름 피서지로 인기 있고, 섬을 조망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다.

간밤의 기도가 통했던 것인지 이튿날 통영은 맑고 건조한 초여름의 세상이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시퍼런 바다가 잔잔했다. 당장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비진도행 표를 끊고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비진도까지 뱃길로 약 14㎞ 떨어져 있다. 40분 바다를 가르니 어느덧 여객선은 섬의 작은 항구에 짐과 사람을 부렸다.

면적 2766㎢, 인구 300명이 사는 작은 섬 비진도는 두 덩이로 이루어졌다. 육지에 가까운 섬을 안섬, 먼 섬을 바깥섬이라고 부르고 각각 내항과 외항을 품고 있다. 외항에 내려, 섬을 눈으로 훑는데 왜 비진도가 통영 현지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섬인지 단박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안섬과 바깥섬 중간이 이어져 있어 모래시계처럼 생긴 섬 구조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모래시계의 허리 부분에 새하얀 모래사장이 조성된 것이 특별했다. 통영 앞바다는 김이며 굴이며 먹을 것을 잔뜩 걷어 들이는 천혜 어장이나 풍덩 뛰어들어 놀 수 있는 놀이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비진도에는 수영하고 스노클링을 하고 맨발로 거닐 수 있는 백사장이 떡 하니 존재했다. 그래서 통영 사람들은 비진도를 한여름 피서지로 삼는다. 요새는 한적한 섬 분위기를 즐기려는 외국인 여행객도 알음알음 찾아오기도 한단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얼른 섬의 꼭대기에 올라 비진도의 자태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섬의 잘록한 허리를 등 뒤에 두고 바깥섬으로 향했다. 비진도 바깥섬에는 섬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한 트레일 ‘산호길’이다. 이 길은 4.8㎞ 이어져 있고 코스 중간 중간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산호길 안내판을 따라 기세 좋게 길을 나서는데, 산호길은 만만히 걸을 길은 아니었다. 오금이 절로 굽혀지는 오르막길을 지나니 이윽고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다. 바위로 만든 계단을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다. 한번 나선 길을 돌아갈 수는 없어 억지로 계단을 타야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숲이 우거져 나뭇잎이 따가운 햇볕을 죄 막아준다는 점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라치면 바닷바람이 쓱 하니 수분을 앗아가는 것도 좋았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은 길이었겠지만 초보 트레커는 이를 악물고 산호길을 올랐다.

30여 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갑자기 길이 평탄해지면서 미인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에서 허리를 펴고 아래를 굽어보는데 절로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두 개의 섬이 새하얗고 얇은 허리로 이어진 비진도의 자태가 온전히 드러났다. 이 자리에 서서 섬을 내려다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록한 허리가 매력적인 여인을 떠올렸을 법했다. 통영 사람들이 비진도를 ‘미인도’라고 부르고, 미인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를 ‘미인전망대’로 작명한 것이 절로 이해됐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비진도의 허리춤에 쌓인 새하얀 모래에 옥색 파도가 찰박거리는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비진도 앞바다는 세상의 온갖 파랑을 보여주겠다는 심산인지 청록빛, 에메랄드빛, 코발트색으로 곳곳이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파랑의 세계에 아담한 섬이 동동 떠 있었다. 이 장면이 보상으로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기꺼이 먼 길을 달려 통영에 오고, 배로 바다를 가르고, 산길을 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인전망대를 뒤로하고 산호길을 다시 걸었다. 섬의 최고점 선유봉(312m)까지 오르막이고, 다시 외항으로 회귀하는 길은 내리막이었다. 산호길의 반대편에서 힘겹게 길을 올라오는 트레커에게 조금만 더 가면 굉장한 풍경이 기다린다고 힘을 북돋아줬다. 길의 막바지 노루여전망대에 이르러서는 미리 사 온 충무김밥 도시락을 맛봤다.

매큼하게 무친 오징어에 석박지까지 곁들여 담백하게 김으로 싼 밥을 꿀떡꿀떡 삼켰다. 길섶에 난 야생화며 멋진 그늘을 만들어주는 물푸레나무며 섬의 생명을 구경하며 걷는 데도 산호길을 완주하는 데 2시간 30분이면 충분했다. 비진도는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한솔해운 여객선을 타고 입도하면 된다. 통영에서 첫배는 오전 6시 50분, 비진도에서 통영행 막배는 오후 5시 10분에 뜬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태평양을 마주하는 길
욕지도는 통영에서 뱃길로 32㎞ 떨어진 면적 12㎢에 이르는 섬이다. 주민 1500여 명에 불과한 소담한 섬이지만 주말에는 제법 사람이 북적이는 여행지로 변모한다. 섬을 찾는 여행객의 70~80%는 ‘월척’을 노리는 낚시꾼이다. 따뜻하고 청정한 욕지도 앞바다는 봄에는 볼락, 여름에는 고등어, 가을에는 농어, 겨울에는 학꽁치를 낚을 수 있는 어장이다.

하지만 욕지도를 ‘낚시의 메카’로만 취급하기에는 아쉽다. 욕지도 곳곳에 비경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섬의 매력을 들여다보려면 해안선을 따라 섬 이곳저곳을 걸어보라”고 한 욕지도 관광해설사 김흥국 씨는 통영시가 2012년 조성한 해안 산책로 ‘비렁길’을 특히 추천했다. 비렁길은 관청마을부터 혼곡마을까지 1.5㎞ 정도 이어져 있어, 길을 왕복하는 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욕지도 여객선터미널에 닿자마자 비렁길 출발점 관청마을로 향했다. 바다를 벗하며 걷는 평탄한 길을 떠올렸는데 비렁길은 깎아지를 듯한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 산책로였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비렁’은 ‘벼랑’을 뜻하는 남쪽 사투리입니다. 욕지도는 섬 전체가 암봉이에요. 천왕봉(329m), 대기봉(255m), 망대봉(205m) 등 봉우리가 바다를 뚫고 불쑥 솟아오른 모양새죠. 그래서 욕지도 해안선 끝은 해안절벽으로 이뤄졌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가 비렁길 입구에서 자못 긴장했다. 절벽과 절벽을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산책로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욕지도를 찾는 여행객 대부분은 출렁다리만 들르지만, 욕지도 비경은 출렁다리 뒤편 비렁길에 있다”는 김 해설사의 말을 되새기며 꾹 참고 건넜다.

아찔한 출렁다리를 지나자 나무에 가려졌던 바다 풍경이 트였다. 동해처럼 너른 바다였다. 남해 바다는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라고만 생각했다. 비렁길의 바다는 짙푸르고 시원시원했다. 욕지도가 통영 최남단에 떠 있고, 비렁길이 욕지도의 남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풍광이었다.
“우리나라 영해라 남해라고 부르고 있지만, 비렁길에서 보는 바다는 남태평양이야. 대마도도 제주도도 가리지 않는 바다지.” 비렁길에서 만난 욕지도 주민 김종면 씨는 “욕지 바다를 보면서 자란 사내가 원양어선과 무역선을 타면서 더 큰 바다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걸으며 마주한 통영의 진짜 매력
호쾌한 바다를 왼편에 두고 비렁길을 따라 혼곡마을 방향으로 걸었다. 암석 위를 걷는 구간도 있고, 숲속의 흙길을 걷는 구간도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수풀에 가려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도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귓전을 울릴 만큼 비렁길은 바다와 바투 붙어 있었다.
내친김에 혼곡마을 비렁길 끝자락에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대기봉까지 올랐다. 발이 재빠르다면 30분 만에 정상에 오를 만한 거리였는데, 전망을 즐기며 가느라 1시간 가까이 걸렸다. 대기봉 정상에서는 욕지도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항구를 조망할 수 있었다. 다시 혼곡마을로 되돌아오는 길에 몸이 후끈거리고 땀이 났다. 땀방울이 맺히기 전에 삽상한 바람이 몸을 식혔다.

욕지도 여행의 출발점은 통영 삼덕항이다. 욕지도행 여객선을 띄우는 영동해운을 이용하면 된다. 욕지도에서 꼭 맛봐야 할 별미가 있다. 바로 고등어다. 욕지도는 국내 최초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한 섬이자 현재도 국산 고등어 주산지다. 덕분에 욕지도에서는 고등어를 회로 즐길 수 있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죽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회로 먹기 어렵다. 욕지도 여객선터미널 주변에 고등어회를 다루는 횟집 6곳이 있는데 원조 식당으로 꼽히는 곳은 1993년 문을 연 ‘늘푸른회센타’다. 고등어회는 식감은 참치회, 맛은 전갱이회와 비슷하다.

통영에 가족여행객이 묵기 좋은 깔끔한 숙소를 물색하고 있다면 추천할 만한 곳이 동원리조트(dongwonresort.co.kr)다. 2016년 개장한 숙박시설로 미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통영 필수 여행 코스로 떠오른 통영 루지까지 산책코스를 따라 걸어서 15분이면 닿는다는 장점이 있다. 숙박객에게 통영의 랜드마크 ‘미륵산케이블카’ 입장료를 20% 할인해준다. 가족이 묵을 수 있는 패밀리 객실을 주중 10만 원 선, 주말 15만 원 선에 예약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