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박람회, 눈부신 혁신의 전도사
[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무더운 8월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다. 상류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여행의 개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우리가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는 1851년 영국 런던 박람회가 바로 최초 단체여행의 시작이다.

런던에서 처음 개최된 만국박람회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산업 기술과 혁신적인 발명품을 최초로 선보이는 장이 됐다. 이후로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킨 많은 물건들이 박람회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는 전화기와 재봉틀에 관심이 쏠렸고, 1878년 프랑스 파리 박람회는 축음기의 시제품이 첫선을 보였다. 1885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는 이제는 모두의 이동수단이 된 자동차가 첫선을 보였다. 1893년 시카고에서는 껌과 지퍼,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빵, 고기, 양파를 합친 현대식 햄버거와 콘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 우리가 매년 미국, 스페인 등에서 개최되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와 같은 전자박람회를 통해 전기자동차, 드론, 3차원(3D)프린터, 신형 스마트폰 등을 보며 신기해하는 것이 19세기의 풍경과 너무도 흡사하게 느껴진다.

신예의 장, ‘19세기 CES’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오랜 준비 끝에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야심 차게 열어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대박람회’라 불리며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했는데, 온실 건축가였던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이 설계한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는 전시관 건물이 주인공이었다. 이것은 건물 전체가 유리만으로 지어져 19세기 신건축 운동의 역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중요한 건물이었다.

수정궁은 한 번도 건물의 주재료로 나선 적이 없는 유리와 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대미문의 획기적인 건물이었다. 이는 1845년 폐지된 유리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 당시 판유리는 수공으로 제조돼 일반 대중이 사기에는 턱없이 비싼 사치품으로 지금의 특별소비세 격인 유리세가 부과됐다.

그러나 1845년 판유리 제조법에 큰 발전이 있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상용화됐고 유리세는 폐지됐다. 이러한 판유리를 주재료로 써서 만들어진 수정궁에서 열렸던 런던 박람회는 대성공을 이루었다.

이렇게 성공적인 박람회를 총괄 기획한 사람은 19세기 영국을 63년간 통치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이었다. 당시 영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20만 명이 관람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영국의 만국박람회는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때 대중교통 수단으로 새롭게 등장한 철도와 합해져 인류 최초의 패키지여행 상품을 등장시켰다.

여행은 그 이전까지 상류층과 일반 대중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커다란 요소 중 하나였다. 일반 대중에게 있어서 여행은 친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마침 등장한 철도는 사람이 타든 안 타든 움직여야 하는 속성 때문에 값싼 차비를 가능케 했다. 이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맞물려 발 빠른 사업가들로 하여금 인류 최초의 패키지여행 상품을 고안해내게 했다.

런던 박람회는 ‘산업혁명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면서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정당화’를 알리는 서막이 됐다. 런던 박람회 이후 만국박람회는 각국 국력의 홍보마당이 됐다. 특히나 프랑스는 집중적으로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최초의 박람회를 열었던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1855년 파리에서 처음 열렸던 만국박람회의 주제는 거대한 증기기관이었지만, 그 외에도 이제까지 없었던 재미있는 발명품도 많았다. 커피머신과 바퀴만 돌리면 바느질이 저절로 되는 재봉틀이 등장했다. 여성을 가사일로부터 해방시킨 일등 공신인 세탁기도 이 기간에 처음 선보였다.
만국박람회, 눈부신 혁신의 전도사

새로운 벨에포크의 시대

파리에서 두 번째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1867년은 가스와 일본 문화가 주인공이었다. 전시장 주변에 수십 km에 달하는 가스관이 설치됐고, 수천 개가 넘는 가스램프가 밤에도 전시장을 대낮처럼 밝혔다.

또한 1분에 수십 장을 찍어내는 인쇄기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잠수용 마스크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1867년 파리 박람회 이후 프랑스 미술 시장을 통해 유통된 일본 미술품들은 일본 미술의 독창성을 프랑스 사회에 전달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일본 문화에 심취되는 자포니즘을 일으키게 됐다.

1878년 파리 박람회의 주인공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내는 전구라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전화나 타자기 등이 등장해서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를 일으킨 것도 이때였다. 1889년 파리 박람회를 통해서 프랑스는 드디어 영국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둔다.

우리가 파리 여행 일정에서 빼놓지 않는 에펠탑이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다. 에펠탑은 19세기 사람들이 그 당시 체험했던 발전과 변화를 가장 극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여주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상징물로 에펠탑 건설을 기획했다. 이것은 별다른 장식 하나 없이 오로지 철근과 나사만으로 만들어진 놀라운 건축물이었다. 처음 탑이 만들어질 때에는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인 건축물의 외관에 언론과 시민들의 반발이 심했으나 지금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19세기 세상 사람들을 미래의 희망으로 들뜨게 했던 만국박람회는 패키지여행과 눈부신 문명의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측면 외에 제국주의와 그로 인한 전쟁의 상처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낳으며 1900년을 기점으로 빛을 바래 갔다.

요즘 인공지능(AI)을 통한 신기술의 등장으로 전자박람회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과거의 화려했던 만국박람회를 재현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새로운 벨에포크를 기대해본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