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71호 (2019년 08월)

힐 다잉, 삶을 다시 보는 시간

[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여보, 이제 내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나네.”

7월 14일 효원힐링센터 제567회 임종체험(힐 다잉) 프로그램이 열린 날, 유언장을 읽던 50대 남성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감사하고 정말 고마워. 나… 먼저 갈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 생애 마지막 순간, 그날을 미리 연습한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 영등포구에 자리한 효원힐링센터. 센터 안으로 죽음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임종을 체험한다니, 자못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온 이들이 함께 온 이들에게 농담을 건넨다. “으, 나 살짝 무서워”, “진짜 막 TV에서 나온 것처럼 눈물이 날까?” 곧이어 ‘죽음체험 신청서’와 ‘나의 묘비명’을 받아든 이들의 얼굴에서 이내 웃음기는 사라지고 진지함이 감돈다.

√ 행복하십니까?
√ 사후세계가 있을까요?
√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나요?

이따금 떠올려는 봤어도,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신청서에 툭툭 던져진다. ‘나의 묘비명’이라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시인 천상병)’, ‘괜히 왔다 간다(중광)’,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조지 버나드 쇼)’ 등 남의 것을 훔쳐봐도, 내 묘비명에 적을 만한 그럴싸한 말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가 되면 무얼 말하고 싶을까.

고민 끝에 신청서를 적고 나자 무대는 사진관으로 옮겨진다. 로비에 작게 마련된 한쪽 공간에서 사진가가 영정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웃으세요. 이거 증명사진 아니니까, 활짝 웃으세요. 행복하게!” 찰칵, 인생에서 수만 번은 들었을 셔터소리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날 임종체험을 경험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한 이들은 30명 남짓.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임종체험을 알게 됐다는 20대 엄규헌 씨와 이순진 씨, 아는 언니의 추천으로 친구와 함께 신청한 대학생 김가영 씨, 동호회 모임에서 함께 찾은 50대 이범주(가명) 씨와 친구들, 미국에서 유튜브로 한국의 임종체험을 접한 후 물을 건너온 토이(Toi) 씨까지.

각기 생김새와 나이는 달라도 목적은 같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삶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서 찾아오게 됐다”고. 



죽음을 빙자한 삶의 체험

약 2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되는 ‘힐 다잉 프로그램’은 체험의 목적과 마음의 준비를 알리는 정용문 효원힐링센터장의 강연에 1시간을 할애했다. 죽음에 대한 지루한 강연이 이어질 거란 예상을 깨고, 첫 마디부터 강렬한 질문이 날아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개 두 마리는 키운다고 합니다. 마음의 개, 선입견(犬을 비유)과 편견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정 센터장은 “죽음체험은 죽음을 빙자한 삶의 체험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누구일까’, ‘내 자신과 이웃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등 나를 둘러싼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 죽음체험, 힐 다잉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나의 가족이 죽음을 맞이할 때 주어지는 시간은 2~3분,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릅니다. 울다가 끝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리고 죽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적어도 죽음이 (인간의 삶에서) 예정된 것이라면, 그 순간 어떤 이야기를 하고, 또 어떻게 이별을 맞이할지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 센터장의 강연은 과거를 거슬러 올랐다. 수의를 준비하던 그때 그 시절, 사위가 묏자리를 선물했더니 무뚝뚝한 장인의 얼굴에서 함박꽃이 피었다는 일화, 아파트에서 장례를 치렀던 불과 30년 전 이야기. 삶과 죽음에 경계가 없었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일상 중 하나였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 이제 여러분은 1시간 뒤 모두 죽습니다. 한 번 웃어보세요. 죽기 전에 한 번밖에 없는 마지막 웃음인데, 어떻게 웃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어주세요.”

강의실이 떠나가라 웃음꽃이 핀다. 모두가 박장대소로 앞으로 다가올 가상죽음을 맞는데, 프레젠테이션에 한 장의 흑백사진이 뜬다. 50년 전, 수십여 명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다.

“이 사람들의 표정을 웃는 사람, 무표정인 사람, 찡그린 사람 등 세 가지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 웃는 사람이 찡그린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살았다고 해요. 적극적으로 표현하세요. 삶은 짧습니다.”  



1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문밖을 나서자 참여자들의 영정사진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익숙한 내 얼굴 위로 검은 띠가 두 줄, 생애 가장 마주하기 싫은 내 사진을 받아들었다.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임종체험실로 향하자 입관 시 쓰이는 관이 줄지어 자리해 있다. 제자리에 앉아 촛불 뒤로 영정사진을 세워 놓으니, 붉은빛 내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머리를 스친다.

그 시간,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가족과 사별하는 순간들에 대한 기록들이 흘러나왔다.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아빠, 사랑해요”, “우리 애들 남겨줘서 너무 고마워. 애들 잘 키울 테니까 OO 아빠는 걱정 없이 가” 등 죽음을 눈앞에 둔 투병환자 가족들의 마지막 이야기가 공간을 메웠다. 이제 내 생애 마지막 이야기를 남길 시간, 영정사진 옆 유언장을 펼쳐 든다.

√ 장례 방법: 화장(      ) 매장(      ) 가족 결정(      ) 
√ 신체 기증: 장기(      ) 시신(      )  아니요(      )

고민 끝에 몇 가지 선택을 하고 나니, 아래 수많은 공백이 보인다. 채워야 할 나의 마지막 유언. 엄마, 아빠, 오빠, 나의 강아지, 그리고 나.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라진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수많은 영정사진들. 환하게 웃는 타인의 모습 뒤로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들.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부부간에 싸움도 했고 아이들한테 상처를 너무 많이 주고 살아온 게 후회스럽다. 경제적인 문제로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올바르게 잘 커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너무나 사랑한단다. 남편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했는데, 여보,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1962년생 김서인(가명)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을 마쳤다.

“내가 죽을지 몰랐다. 그런데 결국 나에게도 이 시간이 왔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왔을까. 죽으면 다 부질없는 것을.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없더라도 부디 잘 살아가줬으면 한다.” 1994년생 엄규헌 씨도 마지막 유언을 낭독했다.

“자, 이제 옆에 놓인 수의를 입습니다. 수의에는 어느 곳을 뒤져봐도 주머니가 없습니다. 빈자도, 부자도 죽을 때는 빈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의를 입자, 이제 체험의 마지막 순간만이 남았다. 내 옆에 길게 놓인 오동나무 관 안으로 몸을 눕힐 시간.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조그마한 관에 몸을 뉘자, 모든 것이 생경해졌다. 딱딱한 나무, 뒤척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 베개도 이불도 없이 모로 누운 나. 정 센터장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제 여러분은 죽습니다. 장기의 기능이 하나둘 멈추고 숨도 멎고 죽을 것입니다. 가슴은 답답하고 죽음이 느껴집니다. 숨이 멎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은 여러분의 시신을 장례 치르겠습니다. 관 뚜껑을 닫고 화장을 하겠습니다.”

눈을 감자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뚜껑을 내리치는 망치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관 뚜껑이 영영 열리지 않을 것처럼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10분간의 입관체험이 끝나고 관 뚜껑이 열렸다. 빛, 세상과 다시 만난 것이다.



임종체험을 마치고 다시 만난 이들은 어쩐지 산뜻한 얼굴이었다. 엄규헌 씨는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갈 때까지 그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며 “아주 가끔씩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면 주위를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인영(가명) 씨는 “막상 죽는다고 하니 맛있는 것도 생각 안 나고, 통장 잔고도 생각나지 않았다”며 “오늘 집에 가서 가족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토이 씨도 눈물을 훔쳤다. 한국어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고, 유언장을 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세례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면서 “관을 열고 나오자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디에서도 해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50분에 걸친 임종체험 프로그램은 모두에게 삶의 격려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센터에 따르면 생을 마감하려고 마지막 유언처럼 이곳을 찾았다가 삶의 의욕을 다시 찾은 사람들이 왕왕 있다고 한다.

백성희 백석대 보건학부 교수는 “죽음체험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후회와 반성을 통한 새로운 시작의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며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갖게 하는 철학적 교훈이 있다”고 전했다.

죽음에 대한 모든 질문은 다시 삶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격언을 전한다. “잘 보내진 하루가 편안한 잠을 주듯이/ 잘 쓰인 일생은 평안한 죽음을 줄 것이다.”

임종체험 하고 싶다면 …

효원힐링센터
효원힐링센터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무료 임종체험장이다. 김상봉 효원상조 회장이 한국 자살률을 낮추는 데 기여하기 위해 2012년에 설립했다. 김 회장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부문에서 1위”라며 “생명 사랑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퍼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기 위해 센터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무료인 대신에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학교, 종교, 기관, 기업 등 단체 신청도 환영한다. 프로그램은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다.
▹ 위치 서울 영등포구 83-2번지 우송빌딩 4층
▹ 문의 1644-3350

하늘소풍이야기
한화손해보험이 복지관 등 지역 노인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자서전 쓰기, 유언장 작성, 장수사진 촬영, 상속 및 유언 법률 강의, 장묘시설 견학 등을 통해 어르신들의 웰다잉을 돕는다. 한화손보에 따르면 교육 후 설문조사에서 노인들의 죽음 불안 태도는 교육 전 평균 52.1점에서 교육 후 45.8점으로 6.3점 감소했으며, 노인 생활 만족도는 교육 전 17.2점에서 교육 후 19.0점으로 1.8점 상승했다고 한다.
▹ 문의 1566-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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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문 효원힐링센터장
“유한한 인생, 마음 표현할 기회 많지 않아”


-어떤 분들이 주로 임종체험을 찾아오나요.
“10대부터 90대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하게 찾아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해 입소문을 타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더 접할 기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업이나 종교 등 단체모임에서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CNN, NHK 등 세계 각국 유명 외신들이 다녀가면서 외국인들도 임종체험을 하기 위해 우리 센터를 찾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해외에서도 카페 형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있지만, 이곳처럼 세트장 같은 공간은 유일무이하다고 하더군요.”

-방문객들의 사연도 다양할 것 같아요.
“201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벌써 567회를 맞았습니다. 방문객들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아보고 싶다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삶의 애착을 느끼는 과정인 거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예행연습처럼 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만 강연을 듣고 체험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바꾸기도 합니다. 저 역시 한 분이라도 구제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프로그램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암 말기 환자 분이 가족과 함께 찾았습니다. 체험을 신청한 가족의 의도는 환자가 병과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과도 사이가 악화되기만 하니까, 오히려 체험을 통해 고통을 극복해보고자 함이었다고 했습니다. 환자 분이 ‘나 때문에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온 가족이 아팠음을 이제 알았다’고 말해 유언장을 낭독하는 순간 현장에 있는 모두가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또 한 분은 70대 초반 남성분이셨는데, 알코올 중독으로 20년간 힘들어하신 분이 오셨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싶다며 비로소 후회하는 자신을 꾸짖은 기억도 납니다.”

-그럼에도 아직 임종체험 하면 ‘무섭다’는 인식이 더 큰 것 같아요.
“현재의 죽음을 대하는 문화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죽음 하면 다 두렵고, 공포감을 느끼잖아요. 원래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죽음을 대하는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거 문화로 다시 되돌려 놔야 하는데, 사회적 책임을 갖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임종체험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례 관련 업무를 하면서, 또 강사로 임하면서 죽음의 현장에서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습니다. 유한한 인생 속에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특히 더 그러합니다. 바로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생각들을 전하기 위해, 마음 편히 살다가 잘 죽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임종체험이 필요합니다.”

정용문 센터장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학문적인 증명보다 실질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강의하는 경험 중심의 죽음 전문가다. 장례지도사의 실무 교육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통상장례 혹은 노인의 죽음 준비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현재 효원힐링센터에서 힐 다잉(임종)체험의 강의와 진행을 맡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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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7-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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