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한창수 고려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이 교육, 부동산, 주식…. 어느 순간 당신의 생각이 멈춰 있지는 않은가.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교양 있는 자가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100세 시대의 절반, 여전히 만리 길을 걸어야 할 중년에게 던지는 철학적 단상. 우리는 생각하고 사는가.
[big story] 생각 많이 하는 중년이 행복하다
오후 4시, 중년의 김 부장이 박 상무 방에서 나왔다. 아주 어두운 얼굴이다. 1분기 매출 예상이 영 시원찮다고, 대책을 세우라고 한소리를 들었다.

관리자답게 ‘생각’을 좀 하라는 핀잔까지 들었다. 이번 분기는 국내외 경기 탓이 크기 때문에 자칫 판매점이나 담당자들을 재촉하다간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조심스러운데, 그냥 상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맞는지 머리가 복잡하다.

어제 술기운이 남아 있는지 뒷골이 땅기고 눈도 좀 뻐근하다. 이번 주말엔 어딘가로 떠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며칠이라도 지냈으면 좋겠다. 뭐, 그래봐야 집에서 잠이나 자겠지만.

‘행복과 건강’ 좌우하는 생각

인생을 살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지 않고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느낌에만 의존해서 사는 반응형 인간이 되겠다고 결심을 한다고 해도 파충류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본인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유 과정을 거치느냐, 아니면 타인의 의도에 따라 남이 정해준 생각을 마치 자기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느냐 하는 것 2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현명한 성인은 현재 상황을 재해석해서 본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긍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생각 습관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신병 훈련을 받는 해병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는가.

심리학자가 말하길 노화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노인들의 행복감이 더 높으며, 회사원들도 본인의 업무 능력을 스스로 높게 평가하는 경우에 삶의 만족 수준이 더 높다고 한다. 높은 삶의 만족도와 긍정성은 암 환자들의 면역력을 좋게 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나의 행복 수준과 신체적 건강까지 좌우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생각이란 무엇이기에 감정도 좌우할 수 있다는 걸까. 내 생각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저처럼 인간의 한계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까.

생각, 즉 사유(思惟)는 인간이 주변 자극을 받아 반응하기 위해 거치는 일련의 논리적 추론 과정을 말한다. 환경의 변화를 경험할 때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마음속에 저장된 지식들을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검토하고 나서 새로운 지식을 얻어 나가는 과정이다.

굳이 뇌과학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생각이란 인간이 외부의 정보를 판단하고, 개념을 만들어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 결정을 하고자 할 때 뇌신경 연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이성적·감정적 처리 체계’를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숙성시켰던 생각들은 당시의 상황과 감정과 연결돼서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엔 삶의 기억, 메모리가 돼서 매 선택의 순간마다 참고하는 나만의 인생수첩이 된다. 이것을 흔히들 경험이라고 하고 연륜이라고도 한다.

생각하는 과정의 기본은 ‘이해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분석하고, 비교 과정을 거쳐 본질적인 부분을 뽑아내고 이를 추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과정 두 번째는 ‘내 의견 만들기’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긍정적인 의견을 내는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견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는 비가 올 것 같다든지 친구가 올 것 같다는 상황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하기의 마지막 과정은 ‘결정을 내려서 행동을 결정하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좋은 판단을 하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건, 혹은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생각과 고민을 통해서 나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다.

장 피아제(Jean Piaget)라는 스위스 출신 철학자, 생물학자 겸 심리학자는 딸의 성장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생각과 판단 과정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경험을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적 구조를 그 사람만의 고유한 도식(스키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구조는 아기 시절부터 나이 먹고 성장을 하면서 질적으로 변화를 거치고 발달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2세까지는 감각운동기라고 부른다. 아기가 빨고 잡고 보는 것 같은 감각운동에 의존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기다. 어린 강아지나 아기 원숭이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말 그대로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수준의 시기다. 동물적 수준에서 반응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판단력이 좋아지는 시기다. 2세 이후 6세 정도까지는 전조작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동물적 반응의 수준은 벗어났지만, 아직 개념 형성이 충분하지는 않아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관적 혹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무리 설득을 하려고 해도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 아이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시기이고, 컵에 있던 물을 대접에 붓듯이 모양이 달라지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기다. 이 시기의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이는 대로 믿는다.

7세에서 12세까지의 학령기는 구체적 조작기다. 이제 이 시기에 이르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기억할 수 있다. 아기일 때 좋아하던 까꿍 놀이를 하려고 하면 아마 유치하다고 멀리 가 버릴 것이다. 논리적인 추상화가 어느 정도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에 도덕적 개념을 설명하고 국가 사회와 민족에 대한 대화도 가능하다.

그러다가 13세 이후로는 언어를 이용해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시기가 온다. 진정한 인간이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논리적, 제대로 된 추상적·과학적 사고가 가능한 시기로서 이 시기 이후 인간의 생각 구조는 형식적 조작기라고 부른다.

이제 당신이 성인이 됐다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주변 상황에 대한 본인 의견을 정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다 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 같은 것을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령기 청소년들이 부모들과 같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과학탐구 혹은 수학 문제 푸는 법을 이미 다 아는데, 왜 자꾸 반복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어떤 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이를 충분히 먹은 어른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나 경제, 각종 사회 이슈 등 사회 인문학적인 현상에 대해서 라디오나 TV에서 듣고 보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일부를 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학습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난 이후에(學), 열심히 반복하고 열심히 생각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習)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입시 공부를 하는 학생 가운데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난 이후 반복 연습을 통해 본인의 사고체계 속에 습관처럼 녹아 들어가게 만든 친구들이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생각과 사유는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분이 되게 만드는 과정이다. 진정한 전문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이런 과정을 거친다. 충분한 숙련 기간과 경험을 거친다는 것은 바로 머릿속에서 나의 생각으로 숙성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가지게 된 지식은 사유를 통해 숙성이 돼야만 나의 행동과 말투에도 녹아 들어간다.

나의 모든 가치 체계에도 반영이 된다는 것이다. 사유를 거치지 않은 머릿속 지식 혹은 누군가에게 들은 지식은 설익은 지식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본인의 이익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본인 스스로 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은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big story] 생각 많이 하는 중년이 행복하다

반복에 또 반복, 생각도 연습하기


사유 과정을 거친 지식은 새로운 영역으로의 응용이 가능하다. 마치 끝내지 않은 숙제나 덜 읽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듯이 전두엽에 올려놓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며칠 보내다 보면 무의식 속에 녹아 들어 있던 과거의 경험과 어우러지면 나에게 맞게 완벽히 녹아 들어가게 된다.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식사를 하면서 음식의 색깔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씹고, 냄새를 맡고, 몸 안으로 내려가는 것을 들여다보는 마음 챙김의 과정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생각을 하면 지금은 당장 힘이 들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본인에게 이로운 쪽으로 해석하고, 또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내는 마법이 부려질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한 내 의견을 만들 때도 생각을 충분히 하고 머릿속에서 궁리를 하는 시간이 있어야 나의 오리지널한 의견이 생긴다. 남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고 살기로 결심한 분이 아니라면 내 마음이 어떤 말을 하는지 잘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낸 이후에 의견을 제시하는 연습을 하는 게 좋겠다.

그렇다고 염려와 걱정으로 지나치게 긴 시간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금물이다. 정신병리학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걱정과 집착에 빠져서 지나친 계산을 하는 경우에 분석마비(analysis paralysis)에 빠져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어차피 완벽한 답을 얻을 때까지 너무 긴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강박적인 걱정으로 일상을 보낼 순 없다.

좋은 생각의 방법, 건강한 사유의 조건이 있을까. 우선, 그 일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건강한 측면을 반반씩 생각해보라.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편하고 익숙하게 느끼는 쪽에 점수를 더 주는 지적 오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부정적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 둘째, 내 생각이 혹시 편견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해서 자신의 느낌을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느낌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언어적·비언어적인 경험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에 배어 있는 당신만의 레이더망이다. 물론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겠지만, 당신의 건강한 감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의견은 잘 들어 두는 연습을 해보자. 일단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 내 생각을 성숙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한번 좋다고 느끼면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워지는 경우도 많다. 당신의 생각을 통한 모든 판단의 기본은 항상 타인과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한창수 교수는…
고려대에서 노인정신의학을 전공했다. 2010년 대한정신약물학회에서 오츠카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GSK 학술상을 받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