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여요”
Enjoy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고민이 적지 않다. 심한 경우 “자신이 사회공포증이 아니냐”며 셀프 진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 생활을 오래한 경우에도 이런 두려움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 새로운 부서, 새로운 역할은 신입사원처럼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다.

“저는 ‘사회공포증’ 때문에 고민입니다. 평소와는 달리 새로운 환경에 놓이거나 낯선 사람, 많은 사람 앞에 서면 목소리가 떨리고 머리가 하얘집니다. 낯선 환경에 압도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 같은데요. 학창시절에는 새 학기 때 이런 경험을 자주 했죠. 주위에서도 회사에 입사하거나 이직하면, 새로운 환경과 인간관계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와 같은 사회초년생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떨지 않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한 신입사원의 고민이다. 이런 고민은 신입사원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발표를 할 때 떨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 앞에 서서 발표를 할 때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져 목소리가 떨리고 머리가 정지해 버려 당황스럽다는 임원들의 고민도 듣게 된다.

우선 앞에 고민의 주인공은 사회공포증이 아니다. 매우 정상적인 감정 반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학생으로 새 학기를 맞거나 사회초년생으로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몸과 마음은 긴장을 하게 된다. 긴장을 안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병적인 사회공포증은 그런 정상적인 긴장감을 넘어, 새로운 사람에게 노출되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수행해야 할 때 매우 심한 공포를 느껴 공황이 올 정도로 불안 반응이 심하게 찾아오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우울증이 함께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정상적인 일상생활, 직업적 기능, 사회적 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되는 정도로 심각한 경우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문가와 상담해서 치료 필요성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병적인 불안감에 대해선 치료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에 대해서는 내 마음이 잘 일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스트레스 하면 나쁜 녀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전략이 스트레스를 피하거나 줄이거나 없애는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전략은 백전백패를 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는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우리가 피한다고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새로운 자극에 생존하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이 꿈틀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생물체에게 자극을 주었을 때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 있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불편하지만 내가 느끼는 불안 증상들은 내가 잘 적응하고 있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적응에 따른 정상적인 불안 증상을 나쁜 것으로 보고 무조건 찍어 누르게 되면 더 큰 불안 증상이 터져 나올 수 있다. 불안 증상은 블랙홀 같아 시비를 걸면 에너지를 빨아들여 더 불안을 크게 만든다. 이에 새로운 환경의 적응에 따른 불안 증상을 다루는 팁을 소개해본다.

첫째, ‘내가 느끼는 불안은 정상이야’라고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찍어 누르지도 말고 도망치지도 말고 이것도 하나의 소중한 내 인생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여유와 깡이 필요하다. 불안은 시비를 거는 데 별 반응을 안 하면 재미가 없어 에너지가 빠지며 약해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계속 찍어 누르고 싸우고 그러다 보니 지치고 불안이 더 커지면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며 자존감마저 떨어지게 된다.

둘째, ‘내 마음 안에 행복이란 어떻게 정의돼 있나’를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심리철학적 접근으로 어렵지만 강력한 스트레스 관리 전략이다. 불안, 공포가 없는 편안한 마음이 행복으로 정의돼 있다면 오히려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인생은 항상 굴곡이 있고 ‘인생은 어렵다’라는 말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안이 없는 평안한 행복이란 없다”란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행복은 불안 없는 평안이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란 정의가 더 좋다고 한다. 의미 있는 삶이라 멋진 말이긴 한데 삶이 의미 있긴 위해선 선행돼야 하는 것이 삶의 통증이다. 통증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통증이 나를 성숙시키고 내 삶을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든다니 지금의 불안, 통증도 힘들지만 인생의 친구라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소개한다. 불안과 우울이 찾아올 때 그것마저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통 크게 느껴보자고 생각하며 떠올리면 좋을 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앞의 팁은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같은 중장기적인 전략이라면 당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지친 뇌를 단기적으로 충전해주는 활동도 필요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도 마음도 바쁘다 보면 뇌를 사용만 하지 따뜻한 에너지로 충전하는 것에 소홀할 수 있는데 역설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을수록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더 밀도 있게 가져가야 한다.

좋은 사람, 가을의 정취, 공연 같은 문화 활동 등 내가 평소에 즐겼던, 그리고 즐기고 싶었던 소중한 것들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그럴 시간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마음이 바쁜 것일 수도 있다. 점심시간 잠깐 짬을 내 가을을 느끼며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도 훌륭한 멘탈 바캉스 활동이다.

단, 발표 공포증이 실제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하다면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전문가를 찾아가 약물 치료 등이 필요한지 상의할 필요가 있다. 발표 공포증은 정신의학적으로 잘 조절될 수 있는 증상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