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나홀로 가구 전성시대, 경제·생활 트렌드 바꾼다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나 홀로 지내는 게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 없는 시대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0%, 600만 가구라는 통계상 수치가 의미하는 바도 크지만, 1인 가구들이 스스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개인화 트렌드 및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아예 1인 가구를 선망하는 젊은 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에 한경 머니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 한 1인 가구의 주요 특성을 살펴보는 한편,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 등과 관련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Special] 나홀로 가구 전성시대, 경제·생활 트렌드 바꾼다
금융사도 주목한 1인 가구

나홀로 가구가 ‘대세’인 시대다. 일본을 비롯해 대다수 유럽 선진국의 경우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일반화된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일(1)코노미’라는 단어가 이슈화될 정도로 급격히 또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나홀로 가구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현대 사회를 ‘싱글턴 소사이어티(Singleton Society)’로 정의했다. 싱글턴은 미혼자와 비혼자를 비롯해 이혼 후 재혼하지 않은 가구 등 홀로 사는 가구를 총칭하는 말이다. 여성의 지위 상승과 함께 대도시화, 통신 발달, 인간의 수명 연장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미국의 경우 이미 성인의 절반 이상이 1인 가구로 살아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유럽의 대표 복지국가로 꼽히는 나라들 역시 혼자 사는 가구가 전체의 40%에 육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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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웨덴의 경우 전체 가구의 50%, 스톡홀름 시내로 국한하면 무려 60%가 1인 가구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특성과 함께 공동주택 등 1인 가구를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충실히 마련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럽 주요국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 역시 혼자 사는 가구가 급증하면서 전체 가구의 30% 이상을 1인 가구가 차지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오는 2035년까지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인 4800만 명이 독신 가구로 살아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족 중심의 사회보장제도가 튼튼한 나라라는 점에서 공동체 중심의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과거부터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립돼 있어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사회복지 시스템을 마련해 왔다. 전체 국민 5명 중 1명이 70세 이상인 ‘노인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노인 빈곤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시스템 덕분이다. 이 같은 나홀로 가구 급증세는 비단 선진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1인 가구가 가장 빠르게 늘어난 국가로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뤄낸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이 꼽히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세는 한 나라의 경제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사회·구조적 변화인 셈이다.

나 혼자 사는 한국인 30% 육박
경제 발전의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나라 역시 홀로 사는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1인 가구는 약 562만 가구로, 국민 100명 중 11명꼴로 홀로 지내고 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6%에 달하며, 서울을 포함한 전국 9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미 30%를 초과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과거 1980년대 1인 가구 비중이 5%에도 못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증가세다. 1인 가구 비중은 30대가 191만으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이 155만으로 뒤를 잇고 있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세대당 가족 수도 2016년 기준 2.43명으로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며, 당초 2020년으로 예상됐던 1인 가구 30%대 돌파 역시 이미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인권 상승과 평균 수명 연장 등이 나홀로 가구 증가세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급격히 늘어난 주거비 부담과 남녀 및 세대 갈등을 부차적 요인으로 꼽는 목소리도 나온다.
[Special] 나홀로 가구 전성시대, 경제·생활 트렌드 바꾼다
최근 수년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홀로 사는 남성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평균 수명이 긴 여성들의 1인 가구 비중이 월등히 높았지만, 최근에는 남녀의 1인 가구 비중이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는 미혼 남성의 인구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데, 한국 남성의 생애 미혼율은 2015년 기준 약 11%로 일본의 15~20년 전과 유사한 단계에 있다는 게 KB금융경영연구소 측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물론 세계 주요국들이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높이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1인 가구 증가세는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오는 2028년을 기점으로 총인구의 자연 증가가 멈추고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미혼·이혼 인구의 증가 등 가구 형태의 변화를 이끄는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면서 1인 가구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라며 “1인 가구의 생활 행태가 사회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아”
이처럼 1인 가구의 증가세는 피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증가세가 미혼율 상승에 따른 출산율 하락 및 인구 고령화와 함께 동반되면서 혼자 사는 가구를 향한 부정적 시각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 경제적으로 궁핍한 독거노인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1인 가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2017년 기준 50대 이상의 나홀로 가구가 전체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통념과 달리 실제 1인 가구들이 느끼는 생활 만족도는 긍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KB금융 경영연구소가 전국 1인 가구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스로가 생각하는 1인 가구의 이미지는 ‘자유’, ‘편안함’, ‘여유’, ‘자립심’ 등 대체로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특히 설문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1인 생활을 지속할 의향이 있으며, 이들 가운데 54%는 그 이유로 ‘혼자 사는 것이 편해서’라고 응답했다. 또 ‘향후 10년 이상 혼자 살 듯하다’는 예상 응답의 비중도 40~50대의 경우 절반을 넘어섰다.

더욱 눈에 띄는 부분은 1인 가구에 대한 인식 변화다. 현재 혼자 사는 가구의 절반가량은 비자발적으로 나홀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1인 가구를 삶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인식하는 비중은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이런 경향은 중년층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고 있는데, 실제 40대의 경우 비자발적 사유가 아닌 선택적으로 1인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는 세대별 결혼(재혼) 의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전체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인 57%가량이 결혼 의향을 묻는 질문에 ‘없음’(17.7%) 혹은 ‘모름 or 계획 없음’(39.8%)으로 응답했다.

특히 결혼 의향이 없다는 응답자 비율은 남성보다 여성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았으나, 올해 조사에서는 20대 1인 가구 남성이 같은 연령대 여성보다 결혼 의향이 낮은 것으로 조사돼 눈길을 끌었다. 이는 젊은 세대의 경우 주거 문제 등의 경제적 애로와 함께 갈수록 심화되는 남녀 갈등이 또 다른 요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삶의 만족도 측면에서는 전체의 60%가량이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는데, 분야별로는 특히 ‘공간적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경제적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을 우선시하고 주변인들의 방해를 극도로 꺼리는 개인화 트렌드를 반영하는 결과로 풀이된다.

‘주목해야 할’ 1인 가구
나홀로 가구의 낮은 경제적 만족도는 우리 사회의 미흡한 사회복지 시스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실제 1인 가구를 위한 공동주택 등 주거 문제 해결에 적극적 지원에 나서는 유럽,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출산율 회복에만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주택청약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특히 2030세대의 경우 주거 문제와 함께 직업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도 큰 상태인데, 제도적 미비 속에 인구 고령화까지 급속히 진행될 경우 1인 가구의 빈곤 문제가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1인 가구에 대한 연구 조사 등 민간 차원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나홀로 가구를 겨냥한 마케팅 차원의 현황 파악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1인 가구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적 조언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다. 국내에서는 KB금융지주가 올해로 3년째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한국 1인 가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1인 가구의 현황과 각종 통계는 물론 다양한 문항의 설문조사를 통해 홀로 사는 가구들이 겪는 각종 애로사항과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Special] 나홀로 가구 전성시대, 경제·생활 트렌드 바꾼다
보고서를 발간한 정인 1인가구 연구센터장은 “애초에는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 차원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회차가 거듭되면서 1인 가구 시대의 원활한 정착을 위한 공익 목적의 연구로 진화하고 있다”며 “1인 가구 증가세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모두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실제 해당 보고서 발간 이후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일부 지자체는 물론 유통·식품 업체들로부터 관련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정 센터장의 설명.

특히 보고서에는 1인 가구의 성별 구성은 물론, 연령별 순자산과 부채 현황, 소비 행태, 여행, 취미 생활 등의 다양한 생활 정보를 담고 있다. 또 1인 가구의 주거 및 생활환경 등 실질적 애로사항과 함께 향후 은퇴 준비 및 주택 구입 의향 등과 같은 세부 항목까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 센터장은 “1인 가구의 경우 최대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높아 경제 및 생활 정보에 대한 니즈가 높은 편”이라며 “올해 설문조사에서도 1인 가구를 위한 생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포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이 60%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