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 WHO “게임 중독=질병" 전공 학생들 사기 떨어질까 우려



[하이틴 잡앤조이 1618=박인혁 기자] 게임 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하기로 한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대해 찬반양론이 뜨겁다. 게임업계와 보건의료계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게임 관련 특성화고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학생들의 의욕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특성화고 취업률이 대폭 하락하면서 특성화고 인기도 줄어들고 있다. 교육통계분석자료집에 따르면 2018년 특성화고 출신 취업자는 3만7995명으로 전체 졸업생의 65.1%에 불과하다. 이는 2017년 4만8001명 74.9%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일부 지역과 인기 학과를 제외하고 특성화고의 정원 미달은 현실로 다가 왔다. 특성화고에서는 취업만큼이나 진학을 적극 권하며 대학 진학률이 32.8%에서 36%로 높아졌지만 특성화고의 본래 취지에 비춰본다면 결코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다.

특성화고 인기가 줄어들면서 특성화고 입학 경쟁률도 낮아졌다. 현장실습생 사고와 개악된 현장실습제도 등 다양한 요인이 특성화고 인기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개선의 움직임은 더디다.

특성화고 열풍이 주춤한 가운데 최근 게임과 관련된 학과를 운영 하고 있는 특성화고는 하나의 고민거리가 더 생겼다. WHO(세계 보건기구)가 게임 중독에 대한 질병 코드를 부여했다는 발표 때문이다.


게임 중독의 새로운 이름, 6C51

지난 5월 25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세계보건기구) 총회 B위원회에서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ICD-11(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WHO가 이번에 정신적, 행동적, 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한 게임 중독 관련 질병의 정확한 용어는 Gaming Disorder(게임이용 장애)이며 이에 대한 코드는 ‘6C51’이다. WHO의 정의에 따르면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이 손상되고 ▲게임을 삶의 다른 관심사및 일상생활보다 우선시하며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게임이용 장애로 판단한다.

한국표준질병분류는 국제질병표준분류 기준을 근거로 5년을 주기로 개정된다. 2020년에 예정된 KCD개정은 ICD-10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2022년 1월 발효되는 ICD-11에 의한 게임 중독 질병코드는 실질적으로 2025년에 고시돼 2026년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WHO의 이번 판단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국내 게임산업의 피해액이 2025년 5조 200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계와 게임업계 대립 고조

의료계와 게임계는 이번 WHO발표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게임업계는 즉각 공동 대응에 나섰다. 5월 29일 한국게임학회와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포함한 90여 개 단체 및 대학은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를 발족했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은 5월 28일 열린 긴급토론회 발제를 통해 “게임을 질병의 하나로 규정하고 국가의 치료 대상을 삼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에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규제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게임산업계의 경청과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은 “WHO홈페이지 의견 수렴 창구와 국제 우편을 통해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며 “향후 국제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의 부당성을 과학적 근거에 의해 밝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6월 20일 대한보건협회를 포함한 총 9개 공중보 건·정신보건 전문단체는 “세계보건 기구의 게임사용장애 진단장애를 지지한다”며 “소모적인 공방을 중단하고 국내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절차를 차분히 진행해 나가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ICD개정안은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쳐 도입되며 2026년에나 도입이 가능하다”며 “국무조정실은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 및 게임업계, 보건 의료계 등이 참여하는 민간 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또한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관계 부처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특성화고 교사, “게임=마약 등 극단적 표현 피해야”

게임 관련 전공을 운영하는 특성화고는 ▲서울디지텍고 게임콘텐츠과 ▲세명컴퓨터고 게임소프트웨어과 ▲수원공업고 디지털게임과 ▲울산애니원고 컴퓨터게임개발과 ▲춘천 한샘고 게임개발과 ▲한국게임과학고 컴퓨터게임개발과 ▲ 한국애니메이션고 컴퓨터게임제작과 ▲한세사이버보안고 게임과 ▲덕수고 게임컨텐츠과 등이 있다. 안양에 위치한 경기글로벌통상고는 마이스터고 지정을 받아 2020년 ‘경기게 임마이스터고’ 개임개발과 신입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전공 명에 직접 ‘게임’이 들어가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IT 및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는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학생들 중에는 게임 관련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이들이 WHO의 이번 발표에 대한 특성화고의 반응에 귀 기울이는 이유다.

하지만 특성화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은 의외로 “달라질것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게임 관련 전공의 경우 기본 적으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공이고 기본적인 입학 지원율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동안 게임 관련 부정적인 정책이 시행될 때에도 지원율이 다소 줄어들지언정 학과 운영에는큰 변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일부 언론에서 ‘게임=마약’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을 학생들이 접했을 때 상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디지텍고 김도형 교사는 “WHO발표로 게임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지거나 학과 운영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며 “하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 게임컨텐츠과를 개설한 덕수고에서는 신입생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정민 교사는 “게임은 엄연히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고 특히 청소년들은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교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며 “과몰입하지 않게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지 게임을 많이 한다고 중독 상태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게임 분야 특성화고의 또다른 고민

특성화고에서 게임 관련 전공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단순히 학생들이 좋아하는 문화 콘텐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임 분야가 고졸 채용에 가장 유연한 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실력이 있다면 학력이나 학벌이 문제되지 않는다. 현재 신분이 고등학생이라도 실력이 있다면 정당한 연봉을 지급하는 것은 게임 업계가 가진 특수성이다.

이와 관련해 컴퓨터게임제작과를 20년 운영해온 한국애니메이션 고는 최근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결석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도해야 하는 것이다. 학습 중심 현장실습 제도에서는 학생들이 근로자의 위치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게임회사에서 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근수 부장교사는 “게임 기업에서는 가르치기보다 정당한 돈을 지급하고 일을 시키고 싶어한다”며 “게임회사가 원하는 시기에 취업을 하려는 학생들이 졸업을 위한 수업일수만 채우고 무단결석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게임 회사는 프로젝트에 따라 고용하기 때문에 취업 시기를 맞추기 어렵다”면서 “교육부 정책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특수한 경우에 융통성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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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