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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7일
  • 결핍을 통해 깨달은 것들 [어쩌다 워킹맘]

    인생에서 가장 허영심이 넘쳤던 때가 있다.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지방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 두가지가 맞물려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됐다. 환경이 바뀌고 일에서 멀어지자,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시간은 많아지며 아이를 돌보는 사이사이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시기, 유럽 특히 내가 좋아하던 파리를 종종 여행하며 명품 쇼핑에 몰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장에 가지 않으면 뭔가 빠뜨린 것처럼 느껴졌고, 구매 리스트를 만들며 ‘수집’하듯 쇼핑을 이어갔다.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사치재에 집착했는지 몰랐다.시간이 지나 다시 일을 시작하고,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막히며 명품 가격은 치솟았고 희소성마저 사라진 뒤에야 그때의 행동이 결핍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일을 그만두었고, 삶의 터전이 바뀌었고, 아이를 매개로 만나는 낯선 지역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부가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신호를 물질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비슷한 맥락에서 그 시절의 나는 ‘일하는 엄마’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폄하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자잘한 것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일하니까 애한테 신경 못 쓰지” 같은 생각을 하며 내 선택을 정당화하려 했다. 육아에 전념한다는 명분 아래 일을 그만뒀는데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멀쩡히 잘 키운다는 것은 내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들이 잘 못하고 있어야 비록 일은 하지 않지만 내가 오롯이 아이를 키우는 것의 정당성이 성립된다는 뒤틀린 생각을 했던

    2025.04.19 08:49:17

    결핍을 통해 깨달은 것들 [어쩌다 워킹맘]
  • '대치동 삽니다' [어쩌다 워킹맘]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우면서(정확히는 반경 4km 거리인 옆동네다), 나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대치동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학습적인 아웃풋를 극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지키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것인가.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미취학 아동 사교육의 모든 것 ‘영어’아이의 영어 학습은 6세 때 시작되었다. 영어유치원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언어를 학습이 아닌 소통의 도구로 받아들이기를 바랐고, 국가와 언어의 장벽 없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길 원했다.다행히도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우리가 선택한 영어유치원의 분위기는 워킹맘 프렌들리하고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활동을 통해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영어유치원은 교육열이 높지만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학습을 중시했다. 아이의 영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되었고,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모국어 발달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7세가 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에세이 라이팅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우리는 특정 학원의 레벨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에 레벨 테스트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과열된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었다. (다만, 아웃풋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도 문득문득 들려오는 학원 정보나 다른 곳은 이렇다더라는 말에 불안한 마음을 가진것도 사실이다)아이는 두 번째 도전에서 우리가 원했던 영어학원에 입학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과학을 배우는 학원을 추천받았기 때문) 테스트는 어려웠고, 학원의 시스템은 매번 숙제와 성적을

    2025.03.29 08:03:57

    '대치동 삽니다' [어쩌다 워킹맘]
  • '메타버스'는 왜 우리의 미래가 되지 못했을까 [최지웅의 게임버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우리는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한다”고 외쳤고, 투자자들도 열광했습니다. 국내 게임사들은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였고, 심지어 글로벌 IT 공룡인 페이스북(Facebook)은 아예 사명을 ‘메타(Meta)’로 바꿔버렸습니다.그러나 메타버스란 개념은 아직 정의조차 모호했기에, 실제로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이것이 미래다!”라고 외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열풍은 생각보다 빠르게 식어버렸습니다. 오늘날에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꺼내면 대뜸 외면당하거나, 아예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합니다.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를 “가상 신대륙”에 비유했습니다. 구대륙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륙으로 떠났던 대항해 시대를 떠올리며, 가상세계에서도 마치 광활한 개척지가 있을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정작 메타버스 서비스들은 “현실 세계를 게임 세계로 그대로 옮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현실보다 특별히 나은 경험이나 생산성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이내 흥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히려 기존의 멀티 플레이 게임들이 더 탄탄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메타버스는 재미없게 만든 게임에 불과하다”라는 비아냥도 따라붙었습니다.사실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오랜 시간 게임을 통해 ‘가상세계에서의 관계 맺기’와 ‘새로운 방식의 상호작용’을 경험해 왔습니다. 중요한 건, 그 가상세계가 현실보다 무엇을 더 잘할

    2025.03.28 11:05:01

    '메타버스'는 왜 우리의 미래가 되지 못했을까 [최지웅의 게임버스]
  • 엄마에게 경제력이 필요한 이유 [어쩌다 워킹맘]

    결혼이 끝인 줄 알았다.안정적인 직장과 회사의 인정, 순조로운 임신까지. 앞날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타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너무 어린 아이를 남에게 맡기기도,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어려웠고, 지역까지 멀어지면서 전업주부 생활이 시작됐다.전업주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이 커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 삶의 주도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경제력이 없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섰다. 인생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편을 설득하거나 다그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남편은 경제에 대한 부담을 내게 준 적이 없었다. 내가 주양육자로 육아를 전담하는 것에 대해 늘 의미를 뒀고 존중해줬다. 나 역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선택했기에 남편은 단절 없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의견이 다를 때면 내 확신이 흐려졌다.“결국 그 비용을 부담하는 건 남편이니까. 내 생각이 달라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이런 자기 검열과 무기력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다.돌이켜보면 이상했다. 내가 분명히 원하는 방향이 있고, 꿈꾸는 삶이 있는데도 그 모든 과정의 책임은 남편 한 사람에게 지워져 있었다. 아이 교육을 결정할 때도, 이사나 집 장만을 고민할 때도, 가족 여행지조차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려면 결국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그때 알게 됐다.내게 경제력이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주도권이라는 걸.혼자 외딴섬에

    2025.03.18 09:31:45

    엄마에게 경제력이 필요한 이유 [어쩌다 워킹맘]
  •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작은 '게임'이었다 [최지웅의 게임버스]

    1972년, 스티브 잡스가 돈을 벌기 위해 아타리(Atari)에 입사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회사’로도 유명했죠. 잡스는 여기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면서 “더 쉽고 단순하게 게임을 즐길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고, 이를 통해 게임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후 애플의 공동 창업자)을 만나 “벽돌깨기(Breakout)”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이때 벌어들인 돈과 두 사람이 쌓은 인연은 불과 2년 뒤 애플(Apple)을 창립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아타리의 철학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자”였는데, 이 미니멀리즘적 사고방식이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Macintosh)나 아이폰(iPhone)의 디자인 철학에 그대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컴퓨터 게임을 쉽고 직관적으로 즐기는 경험”을 고민했던 시절이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의 근간을 닦은 셈이죠.오늘날 AI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엔진 중 하나가 바로 GPU(그래픽 처리 장치)라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GPU는 원래 게임 그래픽, 즉 3D 렌더링과 물리 연산 등을 빠르게 처리하려고 만든 장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게임은 2D에서 3D 그래픽으로 급속히 발전하면서,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는 전용 칩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죠.젠슨 황이 1993년에 엔비디아(NVIDIA)를 창업해 ‘그래픽 전용 병렬 프로세서’를 만든 것은 순전히 게임을 더 실감 나게 구현하기 위한 집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 GPU가 오늘날 ‘병렬 연산’을 필요로 하는 AI 분야에서 없

    2025.03.13 10:35:28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작은 '게임'이었다 [최지웅의 게임버스]
  • 컬러TV만큼이나 나에게 혁신을 안겨준 게임기의 등장 [최지웅의 게임버스]

    "게임버스는 'Game(게임)과 Universe(유니버스)의 합성어'로, 다양한 게임과 기술이 융합된 세계를 상징하며, 메타버스처럼 확장된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어린 시절, 누구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추억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겁니다. 저에게 가장 선명한 추억 중 하나를 꼽으라면, ‘우리 동네에 처음 등장한 컬러TV’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당시에는 흑백TV가 전부였기에, “TV가 컬러로 나온다”는 건 정말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이었지요.그런데 어느 날, 동네 어귀에 “저 집에 컬러TV가 들어왔대!”라는 소문이 돌자 모두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웅성거렸습니다. 그 집은 순식간에 동네 명소가 되었고, 저 역시 몇 번인가 구경을 갔던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오늘날에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마법 같은 시대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천천히 모든 것이 변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머지않아 컬러TV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일이 생깁니다. 바로 ‘가정용 게임기’의 등장입니다. TV와 연결해 간단한 전자오락을 할 수 있는 이 기기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단순한 게임들이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TV는 늘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기계라고 생각했는데, 이 게임기를 연결하니 내가 TV를 향해 무언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TV가 거기에 ‘응답’을 하는 듯했으니까요.흑백에서 컬러로 변화한 것보다, “TV 안에 내가 들어가서 뭔가를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당시

    2025.03.06 17:03:11

    컬러TV만큼이나 나에게 혁신을 안겨준 게임기의 등장 [최지웅의 게임버스]
  • "정말 괜찮은 스타트업이었는데, 투자를 접었습니다" [이현우의 리걸 엑시트]

    “꽤 매력적인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을 만났어요. 대표님과 미팅을 몇 차례 진행하면서 조금만 수정하면 성장성도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고민 끝에 투자 의사를 철회하게 된 기억이 있습니다."최근에 만났던 한 심사역의 이야기다. 정말 투자하고 싶은 팀이었지만, 알고 보니 공동창업자 사이의 갈등으로 투자를 집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공동창업자의 '잠수'는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상황. 심사역의 말에서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이처럼 스타트업은 공동창업자가 한 팀을 이뤄 시작하는 때도 상당하다. 각자의 전문성과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점, 이질적 특성이 있는 멤버들이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피투자사가 400개 가까이 되어가는 투자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공동창업자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생기는 사례를 경험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갓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많이 겪는 사례가 바로 동업자 사이의 분쟁이었다.가사 사건 대부분이 "제 배우자가 이럴 줄 몰랐어요"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이혼 사건이었다면, 신입 변호사가 배정되는 민사, 형사 사건의 상당수는 "믿었던 동업자인데,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을까요"라는 의뢰인들의 하소연에서 시작되었다.‘왜 이제 와서 서로 고소·고발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진작 동업계약을 잘 체결했으면 여기까지도 오지 않았을 텐데.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라는 의문을 지우

    2025.02.26 16:51:18

    "정말 괜찮은 스타트업이었는데, 투자를 접었습니다" [이현우의 리걸 엑시트]
  • 회계 1도 모르던 내가 VC관리역으로 성장하는 법 [VC관리역은 처음이라]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친한 친구들이 경영학, 특히 회계를 공부할 때마다 "도대체 이 머리 아픈 걸 왜 배우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재무, 회계, 세무 같은 경영학 지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카카오벤처스 기획관리팀에 입사한 첫날, 보기 좋게 무너졌다.투자 분야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터라, 모르는 용어가 수두룩했다. 업계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RCPS(상환전환우선주, 상환권과 전환권을 가진 종류주식)라는 용어조차 처음 듣고, 황급히 인터넷을 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업계 신인이라지만, 정말 이대로 가다 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같은 팀 동료에게 스터디를 제안했다.스터디는 각자 업무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몰랐던 개념, 그리고 업계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격주마다 돌아가며 발표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처음엔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투자 용어들이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했다.어떤 내용으로 스터디를 했는지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스터디 일부 내용을 가져와봤다. 예를 들어,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벤처투자회사는 각 조합의 20% 이상, 운용 중인 총 자산의 40% 이상을 창업기업 등에 신주 인수 등의 방법으로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를 집행할 때 해당 회사가 창업기업인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단순하게 생각하면, 창업기업은 설립 후 7년 이내의 회사이므로 설립일자만 확인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법의 정확한 정의를 따라가 보면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창업기

    2025.02.24 10:49:43

    회계 1도 모르던 내가 VC관리역으로 성장하는 법 [VC관리역은 처음이라]
  • '든든한 김민재처럼'···업계 풀백 자처하는 VC관리역 [VC관리역은 처음이라]

    “런웨이가 얼마 안남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투자한 지 1년이 지난 한 패밀리 대표님께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보통 후속 투자 연결은 투자팀에 문의하는 게 어떻겠냐고 답할 수 있었지만, 나에게 질문한 거라면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먼저 회사의 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현재 남아있는 현금이 얼마인지, 매출 발생 시점은 언제인지, 다음 투자 라운드는 언제로 예상하는지를 확인했다.바로 펀딩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먼저, 이 회사에 적합한 정부지원사업을 알아봤다. 이곳은 이미 팁스(TIPS)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추가로 참여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검토했다.또 기업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 상품을 제공하는 기관의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해당 패밀리는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지원을 받게 되었고 현재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리고 있다.이 외에도 행정적인 이슈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를 어떻게 개최해야 하는지, 법인 등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맡은 펀드는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막 투자를 집행하는 단계다. 따라서 투자 과정에서 스타트업 대표를 직접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잦다. 투자금 납입을 돕고, 투자 이후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패밀리와의 접점이 많아진 이유다.이 과정에서 대표들의 고민과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돕느냐에 따라 패밀리뿐만 아니라 카카오벤처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감한다.이렇게 패밀리의 성장을 돕

    2025.02.13 15:15:51

    '든든한 김민재처럼'···업계 풀백 자처하는 VC관리역 [VC관리역은 처음이라]
  • “‘팁스(TIPS)’ 가이드북, 어떻게 만들어졌냐면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평소 ‘어떻게 관리역으로 일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질문의 답은 이렇다. 카카오벤처스로 오기 전 공공기관에서 스타트업 프로그램 운영을 1년 정도 맡은 적이 있다. 내 성향상 공공기관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했고, 마침 카카오벤처스 팁스(TIPS) 코디네이터 포지션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팁스(TIPS) 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AC 나 VC 등 팁스 운영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정부가 최대 5억 (딥테크 팁스의 경우 최대 15억) 의 R&D 지원금을 매칭해준다.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서 지분율 희석 없이 5억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그만큼 런웨이가 길어지니 이것저것 사업적인 시도를 해볼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웬만한 초기 스타트업은 팁스 프로그램을 거쳐갔거나 고려해봤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 정부지원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스타트업 CEO들에게 인기가 많은 만큼, 팁스 선정 노하우에 대한 질문도 더러 받는다. 스타트업 CEO의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가장 우선은 팁스 운영사 자격이 있는 투자사로부터 먼저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를 받은 이후 운영사에서 추천 절차를 진행하면, 팁스를 담당하는 한국엔젤투자협회에서 위원회를 꾸려 평가를 진행한다. 서류 작성부터 협약까지 최소 3개월부터 반년까지도 걸리는지라 단계별로 운영사와 창업팀이 일정을 잘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그렇게 팁스 창업팀 협약이 완료되면 일단 큰 산은 넘은 셈이다. 이제 2년 (딥테크 팁스의 경우 3년) 의 협약기간 동안 정부지원금을 기준에 맞게 잘 사용하면 된다. 중간에 사업화, 기

    2025.01.23 17:05:45

    “‘팁스(TIPS)’ 가이드북, 어떻게 만들어졌냐면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 잘 나가던 스타트업 발목잡는 ‘정관’ [이현우의 리걸 엑시트]

    평상시 잊고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제서야 살펴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연말, 가족과 1박 2일 키즈펜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차량 배터리가 방전된 사실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글로브박스 속 보험 계약서류를 살펴 보험사에 전화하던 그 날 아침처럼.유달리 일찍 잠들었다가 깨어났던 12월의 어느 새벽, 갑작스레 맞이한 계엄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 시험 이후 처음으로 헌법 속에서 계엄 관련 조문을 찾아보고, 뉴스를 보며 탄핵 등 조심스레 향후 절차를 법률가로서 전망해보기도 했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를지 언정, 탄핵 등 국가 통치구조와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의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헌법 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국가에게 헌법이 있다면, 기업에는 정관이 있다. 국가의 통치와 관련된 기본원리 등을 담은 규범이 헌법이라면, 회사는 헌법과 같은 기능을 정관이 담당한다. 정관은 회사 조직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내부 규정인 동시에 회사의 본질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이에 우리나라 상법은 회사의 설립 시 정관의 작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정관은 회사의 근간이 되는 기본 규범이지만,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샘플을 다운받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간혹 아래 A사의 사례처럼 정관이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대표님, 내부 검토 결과 투자 진행이 어렵다고 하네요! 정관 변경을 하지 않고는 투자금 납입이 어려울 것 같아요. 펀드 소진 등 이슈가 있어 다음주까지 투자금 납입을 할 수 없다면 저희도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딥테크 스타트업으로서 기술력과

    2025.01.14 16:54:39

    잘 나가던 스타트업 발목잡는 ‘정관’ [이현우의 리걸 엑시트]
  • VC의 살림꾼 ‘관리역’을 아시나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꿈꿔왔던 벤처캐피탈(VC)에 입사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스타트업 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타트업과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것도 초기 투자로 유명한 카카오벤처스에 입사하다니. 그간 취업준비로 고생했던 시절들이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가고, 넘치게 보상받는 기분이었다.몇 해전 방영했던 드라마 ‘스타트업’ 덕분인지 벤처캐피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전보다 한단계 상승했다. 특히 투자 심사역(극 중 한지평 역)은 누가 봐도 매력있는 직업이라 벤처캐피탈에 취업한 신입사원들에게 종종 동경의 눈빛을 받곤 한다.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아 심사역은 아니에요” 라며 머쓱하게 넘어가기도 한다.그럼 벤처캐피탈에서 심사역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할까?벤처캐피탈마다 다르긴 하지만, 카카오벤처스에는 총 세 팀이 있다. 보석같은 딜을 발굴하고 피투자사의 가치를 높여 엑싯까지 이르게 하는 투자 심사역, 카카오벤처스와 패밀리 여정을 대내외에 전하는 커뮤니케이션팀, 그리고 내가 속한 기획관리팀이다.VC는 보통 벤처투자조합 등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하는데, 기획관리팀은 이 펀드에 출자를 하는 출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리스크는 없는지 체크해서 펀드 만기까지 무탈하게 운영되도록 돕고 있다. 그 외에도 팁스 같은 정부지원사업과, 법인 운영에 관한 일들 예를 들어 인사, 총무, 자금, 공시, 회계, 세무 같은 백오피스 업무도 기획관리팀의 역할이다.기획관리팀의 업무가 다른 직무에 비해 세련되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무가 아니다 보니, 사람에 따라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다. 나도 입사 초반

    2025.01.14 16:54:19

    VC의 살림꾼 ‘관리역’을 아시나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 이곳에 남아야 할 이유, 떠나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점프의 기술]

    여전히 업계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그 회사는 사람 정말 사람 안 뽑는데 어떻게 간 거에요?’ 라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지금 나의 회사(이하 A사)의 PR/대외협력 채용공고가 떴을 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가고 싶은 회사'라 입을 모아 말할 정도였으니.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는 분도 있었고, 그중엔 정말 지원한 사람도 있었다. 3년 전 A사의 채용공고가 올라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거 내가 하고 있는 딱 그거잖아?’였다.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 이미 즐거운 경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었기에 이직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또 채용공고 문구에서 계속 되뇌이는 말이 있기도 했다.  스스로 내성에 강한 편이라고 느끼지만 A사 입장에선 유약한 것일 수 있겠다 싶어 금세 이 공고를 잊어버렸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페이스북 메시지가 와 있었다. A사의 파트너였다. 파트너는 대학시절 잠시 일했던 스타트업에서 인연이 되었던 분이다. 연락을 하고 지내진 않았지만 업계서 퍼스트펭귄으로 여러 업적을 쌓아온 분이기에 먼 발치에서 응원하는 분이기도 했다. 열어본 메시지의 첫 마디 아주 짧고 강렬했다. “인혜님 잘 지냈어요? 왜 A사 지원 안했어요? 기다렸는데!”이직 때마다 피어 오르는 ‘이회사 뭐지, 궁금해!’ 버튼이 작동했다. 짧은 문장에 서론,본론,이유가 다 담겼다. 궁금함을 못참고 답장을 했고 커피챗을 했다. 또 면접 아닌 면접을 보며 여러 질문을 듣고 여러 생각을 이야기했다. 점점 A사의 매력에 빠졌고, 곧 팀원들과의 면접이 잡혔다. A사와 그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2024.03.05 16:55:08

    이곳에 남아야 할 이유, 떠나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점프의 기술]
  • “연봉 변화 없는 이직, 해? 말아?” 동반성장 가능한 회사라면 OK [점프의 기술]

    작은 스타트업 에이전시에서 다시 시작해 경력단절을 극복하던 5년 전, 당시 한 스타트업 초기 투자사가 나의 클라이언트였다. 클라이언트의 사무실이 있던 건물 5층엔 아주 흥미로운 이름의 회사가 있었다. (이하 F사라고 칭하겠다) 종종 미디어 모니터링을 통해 F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지만, 정확히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진 잘 몰랐다.궁금한 마음에 포털사이트에 몇 번 검색해 봤지만 아주 파편적인 정보만 가득했다. 이 회사에 대한 첫 인상은 '이름은 아주 트랜디한데 정확히 어떤 곳이고 뭘 지향하는진 잘 안 모르겠다'였다.아주 무더운 어느 여름날, 한 투자사의 커뮤니케이션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10여 년 전 대학시절 여름 인턴 프로그램을 했던 스타트업에서 처음 만났었다. 스타트업 홍보를 맡고 있지만 현재 트랜드나 투자현황과 같은 분위기를 좀 더 알고 싶어 연락해 두었던 참이었다.“혹시 이직 관심 있어요? 안그래도 F사에서 PR담당자를 채용한다고 좋은 사람 추천해달라는데 한 번 만나봐요!”궁금한 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내 성격에, 궁금했던 그 회사에서 사람을 찾는다니. 당시 이직보단 호기심이 앞섰기에 냉큼 제안을 수락했다. 바로 F사의 파트너와 미팅 일자가 잡혔고 2주 후에 건물 5층으로 찾아갔다. 회사에 대한 첫 인상은 ‘와, 생각한 것보다 더 흥미로운데?’ 였다.육중한 책장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회의실, 브루클린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인테리어의 사무실, 자유롭게 근무하는 스무명 남짓의 구성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 가자마자 F사의 파트너는 ‘대표님도 같이 뵈어도 괜찮죠?’ 라고 물었다. 갑작스런

    2024.02.16 14:27:05

    “연봉 변화 없는 이직, 해? 말아?” 동반성장 가능한 회사라면 OK [점프의 기술]
  • “워킹맘 애들은 꼭 그렇더라”는 말에 퇴사를 고민한다면…[어쩌다 워킹맘]

    새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워킹맘에겐 퇴사, 휴직이라는 큰 고민에 빠지게 되는 시기다. 동네 지인은 초등입학에도 휴직하지 않는 나에게 ‘야수의 심장’이라고 했다. 이미 이전에 3년이 넘는 경력단절이 있었고, 육아휴직은 다 써버렸으며, 회사 내 업무 담당자가 1인인 환경이었기에 휴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나 역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휴직이나 퇴사를 해야 할지 말지 기준은 아이의 성향 부모가 얼마나 양육을 잘했는지와 무관하게 아이에겐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기질이 있다. 개인적으론 아이의 기질을 잘 알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낯선 환경과 사람에 적응이 유독 힘들고 오래 걸리는 아이라면 혹은 다른 양육자보다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아이라면 한학기나 초반 몇 개월만이라도 휴직하는 것이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돕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들이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모든 기관의 적응이 수월했고 비교적 환경 순응적인 아이다 보니 휴직없이 버텨 보기로 했다. 만약 휴직이 어렵다 해도 퇴사는 어지간하면 말리고 싶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고 경제적 소득을 얻기 위한 고민이 또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돌봄교실과 이모님, 남편과의 파트너십,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동네엄마 네트워킹 생각보다 놀랐던 건 학교 내 돌봄교실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종이접기 등 간단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 프로그램과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기회가 현저히 적던 아이에겐 마치

    2024.02.14 10:41:49

    “워킹맘 애들은 꼭 그렇더라”는 말에 퇴사를 고민한다면…[어쩌다 워킹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