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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요? 이걸요? 왜요?” MZ 발언에 난처하셨다면…[고참의 스타트업 생존기]

    “제가요? 이걸요? 왜요?”직장상사의 업무 지시에 선뜻 따르지 않고 반문하는 MZ 세대를 풍자하는 표현이다. 실제 저럴까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MZ들과 일해본 내 경험에 따르면 사실이다. 지시를 하다 보면 “제가 그것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물론 태도는 SNL의 개그맨들과는 많이 다르다. 솔직하게 묻는 것이다.“이건 제 업무가 아닌 것 같은데요?”기성세대와는 많이 다를 뿐 MZ 세대들은 매우 합리적이다. 내 업무 범위 내에 있고, 업무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이렇게 반문하지 않는다. 이들은 디지털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트렌드에 민감해 선배 직장인들이 놓치는 부분을 예리하게 잡아낸다.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무례하게 남의 삶에 침범하지 않는다. 다만, 수평적 의사소통을 선호하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며 명확한 업무와 특히 공정성을 중시한다. 이런 가치관에 기반해 나오는 질문이“제가요? 이걸요? 왜요?”인 것이다.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인이 보기엔 내 지시가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인 내 관점에서 보면 ‘범위’를 벗어난 게 아니다.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안들이 발생한다. 당연히 기존 ‘범위’에 없던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므로 내 입장에서는 ‘범위 안’이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범위 밖’ 일은 수시로 발생한다. 이 갈등을 적절한 대화로 해소해야 한다.짧고 적절한 비유가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치킨집에서 장사가 잘될 땐 주방, 서빙, 청소 등 역할이 분명히 나뉘지만, 갑자

    2025.06.16 09:18:52

    “제가요? 이걸요? 왜요?” MZ 발언에 난처하셨다면…[고참의 스타트업 생존기]
  • "퇴사가 고민 돼? 그럼 이 말은 꼭 듣고 가세요" [고참의 스타트업 생존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나도 어느새 40대 후반이 됐다. ‘마켓보로’라는 스타트업으로 옮긴 지 벌써 5년째. 그사이 직함은 실장이었다가 CPO였다가 다시 리더, 이제는 총괄로 바뀌었다. 회사 운영 방식이 바뀌면서 C-레벨이 되었다가 다시 리더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고 스스로도 직함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스타트업의 직함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내 위로는 대표 한 사람, 내 아래로는 수많은 MZ세대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나는 (어쩌면 꼰대일지도 모르는) 경영진이고 MZ세대를 이끌며 함께 일하고 있다.번아웃을 피하려면 마라톤 뛰는 것처럼 일해야MZ세대는 쉽게 퇴사한다고들 한다. 예전 기준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게 나쁜 일일까? 이 질문의 답은 조금 복잡하다. 우선,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의 퇴사가 반갑지 않다. 직무 교육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손해이고, 새로운 사람을 뽑는 데도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대했던 것과 현실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윗사람과 안 맞아서’일 수도 있고, 그 윗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떠나는 사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다만, 번아웃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해주는 말이 있다. 회사 생활은 마라톤과 같다. 100미터를 제일 빠르게 달렸다고 끝나는 경기가 아니다. 남이 빨리 달린다고 무작정 페이스를 따라가기보다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꾸준히 가는 게 중요하다. 무리하면 반드시 번아웃이 오고, 종종 퇴사로 이어진다. 한두 번의 실패가 완전한 실패를 의미

    2025.06.02 09:42:00

    "퇴사가 고민 돼? 그럼 이 말은 꼭 듣고 가세요" [고참의 스타트업 생존기]
  • 그 좋다는 네이버를 떠나 스타트업으로 온 이유 [고참의 스타트업 생존기]

    5년 전 여름, 나는 ‘네카라쿠배’의 첫 글자인 회사, 네이버를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테크 회사를 거쳐 20대 후반 네이버에 입사해 14년이란 긴 시간을 이 회사에서 보냈다. 그사이 나는 리더 급으로 승진했고, 다른 곳에선 받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많은 고민 끝에 그해 가을 작은 스타트업 ‘마켓보로’로 자리를 옮겼다.네이버 입사 전, 나는 IPTV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한국 최초로 ‘디지털 TV 서비스’라는 이름의 TV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TV 영상을 인터넷 프로토콜(IP)로 보내는 기술로 당시로는 혁신적 시도였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2007년 특채로 네이버에 입사했고, 14년간 다양한 서비스 기획을 맡았다. 네이버의 첫 모바일 앱 중 하나인 ‘미투데이’ 서비스를 제작했고, 개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담당하며 리더로 발탁되었다.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 ‘라인’에서는 ‘타임라인’의 리더라는 중책을 맡았다. 긴 여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네이버 전사 동영상 기획 리더 자리까지 올랐다.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 스타트업에서 치열하게!그 시절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쓰던 말이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였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회사였고 기술로 끊임없이 혁신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구호였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회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를 입버릇처럼 외쳤지만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속도’나 ‘파격’은 점차 어려워졌다.특히 내가 담당했던 네이버TV나 동영상 서비스 분야에서

    2025.05.27 08:37:24

    그 좋다는 네이버를 떠나 스타트업으로 온 이유 [고참의 스타트업 생존기]
  • 놀이터가 된 AI 게임, 그 안의 딜레마 [최지웅의 게임버스]

    바야흐로 AI(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어느덧 AI는 우리 저변에 널리 퍼졌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와 제품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게임의 세계에서 AI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해 왔습니다.1980년에 발매된, 누구나 아는 게임 팩맨(Pac-Man)에서도 AI는 이미 존재했습니다. 유저를 추격하거나 도망치는 '조라귀신' 역할로 등장해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일정한 전략과 반응을 보여주며 우리와 놀아주었죠.2001년에 발매된 'Black & White'는 하나의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이 게임은 유저의 행동을 학습하고, 그에 따라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AI 캐릭터를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참고로, 이 게임의 수석 AI 프로그래머는 훗날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입니다.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이긴 바로 그 기술의 출발점이 사실은 게임 안에서 시작된 셈입니다.이처럼 AI는 게임의 몰입감과 상호작용을 높이는 데 꾸준히 기여하며,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자리잡아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AI 발전은 단순한 진화가 아니라, '혁명'에 가까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게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이제 AI는 사람과의 대화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응답하며, 감정을 흉내 내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기억은 감정의 재료가 되고, 기억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감정은 유대를 만듭니다. 생성형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데 탁월합니다. '사실 같은 허구'를 빠르고 정교하게 생성해내며, 사용자에게 강한 몰입과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2025.05.13 09:05:48

    놀이터가 된 AI 게임, 그 안의 딜레마 [최지웅의 게임버스]
  • 대치동 '7세 고시' 열풍의 또 다른 시선 [어쩌다 워킹맘]

    얼마 전 '7세 고시'가 아동학대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화제였다. 이로 인해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을 피해 미국이나 다른 국가로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찾는 곳은 '한국처럼 미친 교육열, 경쟁, 사교육이 없는 곳'이다.교육에서의 경쟁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나와 남편의 상이한 학창시절 경험이었다. 일반고를 나온 나와 특목고를 나온 남편 사이의 경쟁 밀도차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경쟁이 적었던 내 고등학교 시절은 행복했다. 또래 집단에서 쉽게 1등을 차지하며 안일해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유년시절이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더 경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다.반면 과학고를 나온 남편은 경쟁 강도가 너무 높아 이를 견딜 수 있는 성향이 관건이라고 느꼈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더라도 과도한 경쟁은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실리콘밸리에서 아이를 키운 친언니에 따르면, 그곳은 한국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다. 특히 아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학군은 한국보다 더한 교육열과 사교육 열기가 있다.그런데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여전히 성실함만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공립학교와 주립대학을 졸업해도 괜찮은 일자리가 많고, 한국인 수준의 성실함과 끈기로 자영업에서도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할 수 있다.결국 어느 나라든 상위권으로 갈수록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등이 아니면 낙오자'라는 시선과 좁은 기회의 사다리가 기형적인 사교육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느낀다. 줄세우

    2025.05.10 09:08:58

    대치동 '7세 고시' 열풍의 또 다른 시선 [어쩌다 워킹맘]
  • 결핍을 통해 깨달은 것들 [어쩌다 워킹맘]

    인생에서 가장 허영심이 넘쳤던 때가 있다.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지방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 두가지가 맞물려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됐다. 환경이 바뀌고 일에서 멀어지자,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시간은 많아지며 아이를 돌보는 사이사이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시기, 유럽 특히 내가 좋아하던 파리를 종종 여행하며 명품 쇼핑에 몰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장에 가지 않으면 뭔가 빠뜨린 것처럼 느껴졌고, 구매 리스트를 만들며 ‘수집’하듯 쇼핑을 이어갔다.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사치재에 집착했는지 몰랐다.시간이 지나 다시 일을 시작하고,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막히며 명품 가격은 치솟았고 희소성마저 사라진 뒤에야 그때의 행동이 결핍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일을 그만두었고, 삶의 터전이 바뀌었고, 아이를 매개로 만나는 낯선 지역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부가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신호를 물질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비슷한 맥락에서 그 시절의 나는 ‘일하는 엄마’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폄하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자잘한 것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일하니까 애한테 신경 못 쓰지” 같은 생각을 하며 내 선택을 정당화하려 했다. 육아에 전념한다는 명분 아래 일을 그만뒀는데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멀쩡히 잘 키운다는 것은 내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들이 잘 못하고 있어야 비록 일은 하지 않지만 내가 오롯이 아이를 키우는 것의 정당성이 성립된다는 뒤틀린 생각을 했던

    2025.04.19 08:49:17

    결핍을 통해 깨달은 것들 [어쩌다 워킹맘]
  • '대치동 삽니다' [어쩌다 워킹맘]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우면서(정확히는 반경 4km 거리인 옆동네다), 나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대치동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학습적인 아웃풋를 극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지키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것인가.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미취학 아동 사교육의 모든 것 ‘영어’아이의 영어 학습은 6세 때 시작되었다. 영어유치원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언어를 학습이 아닌 소통의 도구로 받아들이기를 바랐고, 국가와 언어의 장벽 없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길 원했다.다행히도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우리가 선택한 영어유치원의 분위기는 워킹맘 프렌들리하고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활동을 통해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영어유치원은 교육열이 높지만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학습을 중시했다. 아이의 영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되었고,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모국어 발달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7세가 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에세이 라이팅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우리는 특정 학원의 레벨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에 레벨 테스트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과열된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었다. (다만, 아웃풋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도 문득문득 들려오는 학원 정보나 다른 곳은 이렇다더라는 말에 불안한 마음을 가진것도 사실이다)아이는 두 번째 도전에서 우리가 원했던 영어학원에 입학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과학을 배우는 학원을 추천받았기 때문) 테스트는 어려웠고, 학원의 시스템은 매번 숙제와 성적을

    2025.03.29 08:03:57

    '대치동 삽니다' [어쩌다 워킹맘]
  • '메타버스'는 왜 우리의 미래가 되지 못했을까 [최지웅의 게임버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우리는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한다”고 외쳤고, 투자자들도 열광했습니다. 국내 게임사들은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였고, 심지어 글로벌 IT 공룡인 페이스북(Facebook)은 아예 사명을 ‘메타(Meta)’로 바꿔버렸습니다.그러나 메타버스란 개념은 아직 정의조차 모호했기에, 실제로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이것이 미래다!”라고 외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열풍은 생각보다 빠르게 식어버렸습니다. 오늘날에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꺼내면 대뜸 외면당하거나, 아예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합니다.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를 “가상 신대륙”에 비유했습니다. 구대륙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륙으로 떠났던 대항해 시대를 떠올리며, 가상세계에서도 마치 광활한 개척지가 있을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정작 메타버스 서비스들은 “현실 세계를 게임 세계로 그대로 옮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현실보다 특별히 나은 경험이나 생산성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이내 흥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히려 기존의 멀티 플레이 게임들이 더 탄탄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메타버스는 재미없게 만든 게임에 불과하다”라는 비아냥도 따라붙었습니다.사실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오랜 시간 게임을 통해 ‘가상세계에서의 관계 맺기’와 ‘새로운 방식의 상호작용’을 경험해 왔습니다. 중요한 건, 그 가상세계가 현실보다 무엇을 더 잘할

    2025.03.28 11:05:01

    '메타버스'는 왜 우리의 미래가 되지 못했을까 [최지웅의 게임버스]
  • 엄마에게 경제력이 필요한 이유 [어쩌다 워킹맘]

    결혼이 끝인 줄 알았다.안정적인 직장과 회사의 인정, 순조로운 임신까지. 앞날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타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너무 어린 아이를 남에게 맡기기도,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어려웠고, 지역까지 멀어지면서 전업주부 생활이 시작됐다.전업주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이 커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 삶의 주도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경제력이 없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섰다. 인생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편을 설득하거나 다그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남편은 경제에 대한 부담을 내게 준 적이 없었다. 내가 주양육자로 육아를 전담하는 것에 대해 늘 의미를 뒀고 존중해줬다. 나 역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선택했기에 남편은 단절 없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의견이 다를 때면 내 확신이 흐려졌다.“결국 그 비용을 부담하는 건 남편이니까. 내 생각이 달라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이런 자기 검열과 무기력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다.돌이켜보면 이상했다. 내가 분명히 원하는 방향이 있고, 꿈꾸는 삶이 있는데도 그 모든 과정의 책임은 남편 한 사람에게 지워져 있었다. 아이 교육을 결정할 때도, 이사나 집 장만을 고민할 때도, 가족 여행지조차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려면 결국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그때 알게 됐다.내게 경제력이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주도권이라는 걸.혼자 외딴섬에

    2025.03.18 09:31:45

    엄마에게 경제력이 필요한 이유 [어쩌다 워킹맘]
  •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작은 '게임'이었다 [최지웅의 게임버스]

    1972년, 스티브 잡스가 돈을 벌기 위해 아타리(Atari)에 입사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회사’로도 유명했죠. 잡스는 여기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면서 “더 쉽고 단순하게 게임을 즐길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고, 이를 통해 게임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후 애플의 공동 창업자)을 만나 “벽돌깨기(Breakout)”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이때 벌어들인 돈과 두 사람이 쌓은 인연은 불과 2년 뒤 애플(Apple)을 창립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아타리의 철학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자”였는데, 이 미니멀리즘적 사고방식이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Macintosh)나 아이폰(iPhone)의 디자인 철학에 그대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컴퓨터 게임을 쉽고 직관적으로 즐기는 경험”을 고민했던 시절이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의 근간을 닦은 셈이죠.오늘날 AI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엔진 중 하나가 바로 GPU(그래픽 처리 장치)라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GPU는 원래 게임 그래픽, 즉 3D 렌더링과 물리 연산 등을 빠르게 처리하려고 만든 장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게임은 2D에서 3D 그래픽으로 급속히 발전하면서,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는 전용 칩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죠.젠슨 황이 1993년에 엔비디아(NVIDIA)를 창업해 ‘그래픽 전용 병렬 프로세서’를 만든 것은 순전히 게임을 더 실감 나게 구현하기 위한 집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 GPU가 오늘날 ‘병렬 연산’을 필요로 하는 AI 분야에서 없

    2025.03.13 10:35:28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작은 '게임'이었다 [최지웅의 게임버스]
  • 컬러TV만큼이나 나에게 혁신을 안겨준 게임기의 등장 [최지웅의 게임버스]

    "게임버스는 'Game(게임)과 Universe(유니버스)의 합성어'로, 다양한 게임과 기술이 융합된 세계를 상징하며, 메타버스처럼 확장된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어린 시절, 누구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추억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겁니다. 저에게 가장 선명한 추억 중 하나를 꼽으라면, ‘우리 동네에 처음 등장한 컬러TV’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당시에는 흑백TV가 전부였기에, “TV가 컬러로 나온다”는 건 정말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이었지요.그런데 어느 날, 동네 어귀에 “저 집에 컬러TV가 들어왔대!”라는 소문이 돌자 모두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웅성거렸습니다. 그 집은 순식간에 동네 명소가 되었고, 저 역시 몇 번인가 구경을 갔던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오늘날에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마법 같은 시대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천천히 모든 것이 변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머지않아 컬러TV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일이 생깁니다. 바로 ‘가정용 게임기’의 등장입니다. TV와 연결해 간단한 전자오락을 할 수 있는 이 기기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단순한 게임들이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TV는 늘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기계라고 생각했는데, 이 게임기를 연결하니 내가 TV를 향해 무언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TV가 거기에 ‘응답’을 하는 듯했으니까요.흑백에서 컬러로 변화한 것보다, “TV 안에 내가 들어가서 뭔가를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당시

    2025.03.06 17:03:11

    컬러TV만큼이나 나에게 혁신을 안겨준 게임기의 등장 [최지웅의 게임버스]
  • "정말 괜찮은 스타트업이었는데, 투자를 접었습니다" [이현우의 리걸 엑시트]

    “꽤 매력적인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을 만났어요. 대표님과 미팅을 몇 차례 진행하면서 조금만 수정하면 성장성도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고민 끝에 투자 의사를 철회하게 된 기억이 있습니다."최근에 만났던 한 심사역의 이야기다. 정말 투자하고 싶은 팀이었지만, 알고 보니 공동창업자 사이의 갈등으로 투자를 집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공동창업자의 '잠수'는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상황. 심사역의 말에서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이처럼 스타트업은 공동창업자가 한 팀을 이뤄 시작하는 때도 상당하다. 각자의 전문성과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점, 이질적 특성이 있는 멤버들이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피투자사가 400개 가까이 되어가는 투자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공동창업자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생기는 사례를 경험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갓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많이 겪는 사례가 바로 동업자 사이의 분쟁이었다.가사 사건 대부분이 "제 배우자가 이럴 줄 몰랐어요"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이혼 사건이었다면, 신입 변호사가 배정되는 민사, 형사 사건의 상당수는 "믿었던 동업자인데,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을까요"라는 의뢰인들의 하소연에서 시작되었다.‘왜 이제 와서 서로 고소·고발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진작 동업계약을 잘 체결했으면 여기까지도 오지 않았을 텐데.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라는 의문을 지우

    2025.02.26 16:51:18

    "정말 괜찮은 스타트업이었는데, 투자를 접었습니다" [이현우의 리걸 엑시트]
  • 회계 1도 모르던 내가 VC관리역으로 성장하는 법 [VC관리역은 처음이라]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친한 친구들이 경영학, 특히 회계를 공부할 때마다 "도대체 이 머리 아픈 걸 왜 배우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재무, 회계, 세무 같은 경영학 지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카카오벤처스 기획관리팀에 입사한 첫날, 보기 좋게 무너졌다.투자 분야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터라, 모르는 용어가 수두룩했다. 업계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RCPS(상환전환우선주, 상환권과 전환권을 가진 종류주식)라는 용어조차 처음 듣고, 황급히 인터넷을 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업계 신인이라지만, 정말 이대로 가다 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같은 팀 동료에게 스터디를 제안했다.스터디는 각자 업무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몰랐던 개념, 그리고 업계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격주마다 돌아가며 발표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처음엔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투자 용어들이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했다.어떤 내용으로 스터디를 했는지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스터디 일부 내용을 가져와봤다. 예를 들어,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벤처투자회사는 각 조합의 20% 이상, 운용 중인 총 자산의 40% 이상을 창업기업 등에 신주 인수 등의 방법으로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를 집행할 때 해당 회사가 창업기업인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단순하게 생각하면, 창업기업은 설립 후 7년 이내의 회사이므로 설립일자만 확인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법의 정확한 정의를 따라가 보면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창업기

    2025.02.24 10:49:43

    회계 1도 모르던 내가 VC관리역으로 성장하는 법 [VC관리역은 처음이라]
  • '든든한 김민재처럼'···업계 풀백 자처하는 VC관리역 [VC관리역은 처음이라]

    “런웨이가 얼마 안남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투자한 지 1년이 지난 한 패밀리 대표님께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보통 후속 투자 연결은 투자팀에 문의하는 게 어떻겠냐고 답할 수 있었지만, 나에게 질문한 거라면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먼저 회사의 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현재 남아있는 현금이 얼마인지, 매출 발생 시점은 언제인지, 다음 투자 라운드는 언제로 예상하는지를 확인했다.바로 펀딩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먼저, 이 회사에 적합한 정부지원사업을 알아봤다. 이곳은 이미 팁스(TIPS)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추가로 참여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검토했다.또 기업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 상품을 제공하는 기관의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해당 패밀리는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지원을 받게 되었고 현재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리고 있다.이 외에도 행정적인 이슈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를 어떻게 개최해야 하는지, 법인 등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맡은 펀드는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막 투자를 집행하는 단계다. 따라서 투자 과정에서 스타트업 대표를 직접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잦다. 투자금 납입을 돕고, 투자 이후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패밀리와의 접점이 많아진 이유다.이 과정에서 대표들의 고민과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돕느냐에 따라 패밀리뿐만 아니라 카카오벤처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감한다.이렇게 패밀리의 성장을 돕

    2025.02.13 15:15:51

    '든든한 김민재처럼'···업계 풀백 자처하는 VC관리역 [VC관리역은 처음이라]
  • “‘팁스(TIPS)’ 가이드북, 어떻게 만들어졌냐면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평소 ‘어떻게 관리역으로 일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질문의 답은 이렇다. 카카오벤처스로 오기 전 공공기관에서 스타트업 프로그램 운영을 1년 정도 맡은 적이 있다. 내 성향상 공공기관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했고, 마침 카카오벤처스 팁스(TIPS) 코디네이터 포지션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팁스(TIPS) 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AC 나 VC 등 팁스 운영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정부가 최대 5억 (딥테크 팁스의 경우 최대 15억) 의 R&D 지원금을 매칭해준다.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서 지분율 희석 없이 5억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그만큼 런웨이가 길어지니 이것저것 사업적인 시도를 해볼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웬만한 초기 스타트업은 팁스 프로그램을 거쳐갔거나 고려해봤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 정부지원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스타트업 CEO들에게 인기가 많은 만큼, 팁스 선정 노하우에 대한 질문도 더러 받는다. 스타트업 CEO의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가장 우선은 팁스 운영사 자격이 있는 투자사로부터 먼저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를 받은 이후 운영사에서 추천 절차를 진행하면, 팁스를 담당하는 한국엔젤투자협회에서 위원회를 꾸려 평가를 진행한다. 서류 작성부터 협약까지 최소 3개월부터 반년까지도 걸리는지라 단계별로 운영사와 창업팀이 일정을 잘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그렇게 팁스 창업팀 협약이 완료되면 일단 큰 산은 넘은 셈이다. 이제 2년 (딥테크 팁스의 경우 3년) 의 협약기간 동안 정부지원금을 기준에 맞게 잘 사용하면 된다. 중간에 사업화, 기

    2025.01.23 17:05:45

    “‘팁스(TIPS)’ 가이드북, 어떻게 만들어졌냐면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