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있는’ 리더의 소통 테크닉
그렇다면 비즈니스 미팅에서의 ‘눈치’란 무엇인가. 우선은 상황판단 능력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캐치하고 나 또는 우리측에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어갈 줄 아는 센스다. 이걸 잘 하려면 우리 회사의 서비스나 기술에 대해 AI만큼 꿰뚫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두 번째는 상대의 언어적(verbal) 또는 비언어적(non-verbal) 메시지를 읽는 능력이다. 전자에 비해 동물적 ‘촉’이 다소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실제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이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 다음 미팅에 대한 전략 준비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개인 간에도 그렇지만, 비즈니스 상대 간에도 ‘기세’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학시절부터 시작해 15년 이상의 글로벌 기업, UN기구 활동으로 축적된 개인적 경험을 기준으로 본다면, ‘눈치’라는 것은 매우 유니버설한 것으로 인종과 문화를 떠나 특출한 사람들이 있다.
해외 출장 때 있었던 일이다.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빅데이터 전문기업 CEO와 상호 협업 및 투자에 대한 중요한 미팅이 있어 대면 미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지사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함께 고객을 만났다. 말레이시아 지사 COO인 A는 필자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센스맨. 미팅 전에 그로부터 간단히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게 다였지만, 그와 나는 실제 미팅에서 완벽한 ‘티키타카’를 이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팅 중에 그와 나 사이에 일어난 크고 작은 비언어적 시그널을 서로가 읽으며 빈틈을 메꿨기 때문이다. 파트너 회사 CEO의 피드백 또한 좋았음은 물론이다.
점심을 겸한 미팅을 마무리하고 애쓴 A에게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Good job!”이라고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도 내게 엄지 척을 보여주며 “저에 대한 존중을 지키며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 당신은 좋은 보스예요”라는 다소 의외의 화답을 했다. 무슨 말일까. 사연을 들어보니 충분히 공감이 갔다.
A가 이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의 일이다. 당시 그는 보스와 함께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했는데, 상대 회사의 CEO는 A와 막역한 사이였다고. A가 미팅 중에 상대회사 CEO에게 이런 저런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와중에 예측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함께 배석한 A의 보스가 A에게 난감한 질문을 여러 차례 했다는 것. 당황한 A는 어찌저찌 그 상황을 수습했는데, 미팅 말미에 상대회사의 CEO가 A의 보스에게 “비즈니스 상대 앞에서 자신과 함께 일하는 직원을 공격하듯 난감한 질문을 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A의 보스는 A의 설명 중 특정 부분에서 A가 그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리더로서 성숙하지 못한 태도에 대해 고객으로부터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사실상 조직문화와 팀워크에 관한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A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비즈니스 파트너 앞에서 자신의 구성원을 공격하거나 당혹스럽게 하는 리더는 한 마디로 ‘눈치’가 없는 유형이다. ‘우리 서비스를 저렇게 밖에 설명을 못해?’ 또는 ‘이 직원이 이건 알고 있나 테스트를 해보자’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켜버리는 셈이니까.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엉성한 팀워크의 민낯을 드러내는 행위다.
좋은 팀워크는 단순히 순조로운 협력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팀 멤버 상호간의 신뢰와 소통, 참여, 문제 해결력 등의 요소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이상적이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한 사람의 설명에 빈 공간이 생겼을 때 다른 팀 멤버가 그 공간을 메꿔주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자세, 서로 책임을 피하려고 말을 아끼기 보다 적극적으로 고객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조직은 상대에게 신뢰감을 준다.
내부 미팅에서 솔루션 도출을 위한 팀원들의 논의가 딱 2% 부족할 때, 그때가 리더의 등판 타이밍이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논의에 화력을 더해줄 ‘좋은(결정적) 질문’을 고객에게 던져 기세를 몰아가는 리더가 ‘눈치 있는’ 보스다. 티키타카는 축구에서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눈치 있는 프로페셔널들의 소통 테크닉이다.
장헌주 님은 홈쇼핑TV 마케터로 재직 중 도미(渡美), 광고 공부를 마친 후 중앙일보(LA) 및 한국경제매거진 등에서 본캐인 기자와 부캐인 카피라이터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딜로이트 코리아에 이어 IT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를 역임한 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에서 PR & 위기관리, 브랜딩 전문가로 세상의 일에 '시선'을 더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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