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홈쇼핑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A씨(25·여)는 회사에 출근만 하면 우울증과 무기력함을 호소했다. A씨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고객들의 민원 전화에 전화벨만 울리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괴로워했다. 특히 A씨가 20대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해 40대 이후 중년 남성 고객들은 A씨에게 무시하는 발언과 폭언을 일삼았다. A씨는 중년 남성 기피 현상까지 생겨 결국 심리상담사를 찾았다. 상담을 통해 우울감과 무기력의 원인을 찾고 자아강도를 높이는 훈련을 받은 A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높일 수 있었다.


#2 호텔리어 B씨(27·여)의 주 업무는 고객 응대다. B씨의 고충은 호텔을 찾는 고객, 특히 내국인들의 무시하는 말투였다. 고객들이 함부로 말을 하고, 그런 대접을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B씨는 그럴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과 함께 우울감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렀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혹시나 동료들이 내 흉을 보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숨 쉬기 조차 힘들어 한 B씨는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B씨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불안해하던 부분들이 사실은 근거가 없거나 수정 가능한 것들임을 깨닫고 자신의 유능감을 살려 직장에서 새롭게 적응해 나갔다.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최근 우리 주변에서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직업 종사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콜센터 상담사를 비롯해 항공승무원, 민원 처리 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등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정노동 종사자로 분류된다. 매일 마주하는 일터에서 감정노동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을 위해 서울시가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를 10월 16일 개소했다. 권리보호센터는 감정노동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올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보급하는 역할이다. 이정훈(44) 권리보호센터 소장을 만나 감정노동 종사자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악성 민원인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이유 없죠”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를 소개해 달라.

권리보호센터는 서울시 산하 기관으로 서울노동권익센터 내 팀으로 운영되다가 인큐베이팅을 거쳐 지난 10월 16일 안국동에서 개소식을 했다.


-팀에서 센터로 독립한 이유가 있나.

2016년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서울특별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 보호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에 근거해 센터를 개설하게 됐다.


-센터 내 구성원과 역할은 어떻게 이뤄지나.

총 11명이 근무하고, 분야는 연구컨설팅과 교육, 심리상담치유, 네트워크, 홍보·캠페인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우선 연구컨설팅은 감정노동실태조사 및 서울시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교육 분야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유형별 또는 맞춤형 권리보장교육을 실시하고, 네트워크는 노·사·정 및 심리상담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감정 노동자들이 상담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악성 민원인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이유 없죠”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


“악성 민원인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이유 없죠”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

△(위)10월 16일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개소식 현장

(아래)권리보호센터에 근무 중인 직원들.


-센터 이용 방법을 알려달라.

우선 상담 신청을 하게 되면 회당 1시간씩 10회 무료 상담이 진행된다. 이후 추가로 상담을 더 받고 싶은 근로자들은 간단한 심사를 거쳐 4회 추가 상담이 이뤄진다. 4회 추가는 사회취약계층에 해당된다.


-신청자는 상담 횟수를 모두 채워야 하나.

사실 무료 상담이고, 신청한 근로자들이 센터로 방문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보니 안 오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첫 상담 이후에는 신청자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심리상담사들이 신뢰를 쌓고 관리를 하고 있다. 상담을 받은 분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반응이 좋은 편이다.


-센터가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퇴근 후 신청자들이 센터까지 오기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센터를 중심으로 서울 4개 권역으로 나눠 비영리법인단체를 거점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동북권, 서북권, 동남권, 서남권으로 나눠 작년부터 운영 중이다. 그리고 객원 심리상담사도 운영 중인데, 심리상담 경험이 많고 노동 상담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상담사 15명을 선발해 운영 하고 있다. 객원 심리상담사들은 신청자의 회사나 집 근처로 방문해 상담을 한다.



서울시 권역별 심리상담센터

권역명

기관명

접수전화

동북권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02-463-2475

서북권

마음애(愛)터

02-2279-5158

동남권

한국산업의료복지연구원

02-594-9255

서남권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02-2675-7133



-상담신청은 많은 편인가.

아직 센터 홍보를 활발하게 하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오시진 않았지만 올해 9월까지 1012회 상담을 진행했고,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감정 노동자의 대상 직종은 어떻게 구분하나.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으로 회사 내 매뉴얼이 있는 직종이라고 보면 된다. 조직에서 정한 표현의 규칙이 있는 직종을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콜센터, 승무원, 간호사, 판매직, 민원 담당 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시 내 취업자 수의 절반인 260만 명이 감정노동자로 분류된다.


“악성 민원인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이유 없죠”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


-심리상담 신청은 주로 어느 직종에서 많이 하나.

판매직이나 간호사, 콜센터 직원들이 많이 하는 편이다.


-주로 어떤 고민들을 털어놓나.

고객으로부터 모멸감을 느꼈거나 반말, 욕설, 폭행 등으로 우울증상을 많이 호소한다. 그런 증상이 더해지면 출근하기가 무섭고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사내 왕따를 당하는 분들도 신청을 한다.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한 가지 문제로 찾아오는 분은 거의 없다. 보통 가족이나 지인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데, 그럴 때면 가족이나 지인을 같이 불러 상담하기도 한다.


-센터에서는 주로 상담만 하나.

센터에서는 치유만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감정 노동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감정 노동자들이 일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 전에 해결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매뉴얼 화 시키는 것이 목표다.


-서울시에서 감정 노동 종사자를 위해 센터를 구축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서울시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운영되는 120 다산 콜센터가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에서 다산 콜센터 운영을 용역업체 2~3곳에게 맡겼는데, 실적 경쟁이 되다 보니 직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동시에 이직률도 상당히 높아졌다. 직장인 평균 이직률이 4.5%인데, 다산 콜센터는 60%를 육박했다. 담당 팀장은 매일 면접을 봐야했고, 업무 역시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콜센터에 걸려오는 고객과의 통화를 녹음한 뒤 지속적으로 폭언을 해 온 고객 52명을 3년에 걸쳐 고소를 했다. 그 안에서 2명을 제외한 50명이 벌금형부터 구류 등 유죄 판결을 받았다. 처벌을 하기 시작하니까 소문이 퍼졌다. 그러면서 악성 민원 전화가 일평균 31건에서 2.3건으로 줄어들었다. 시스템도 도입했다. 고객에게 욕설이나 성희롱 발언을 들으면 직원이 먼저 끊을 수 있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사례를 통해 매뉴얼이 만들어지면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케이스다.

다산 콜센터의 경우 선량한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목적이지 악성 민원인들에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다. 상담자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들을 보호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 센터의 업무다.


-시스템이 마련되기 전에는 무엇이 가장 문제였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매뉴얼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전화벨이 3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하고, 늦게 받으면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라는 멘트를 해야 했다. 고객이 욕설, 폭언을 하더라도 먼저 끊을 수도 없었다. 고객들에게 정보 전달보다 친절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노동자에 대한 권리 교육도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 센터가 주축이 돼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고객들에게 경도돼 있던 관점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현재 센터가 운영 중인 시스템에 대해 서비스 당사자들의 인식 정도는 어떤가.

아직은 체감을 많이 못하고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에 전파하는 데까진 시간이 좀 걸린다. 앞으로 감정 노동종사자들이 이 시스템이 나의 권리이고, 현장에서 반영해야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야 한다.



“악성 민원인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이유 없죠”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

-감정 노동종사자의 권리는 왜 보호되어야 하나.

인격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나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인권 문제와도 직결된다.


-심리상담이나 정신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몇몇 대기업에는 사내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기도 하고 외부 심리상담소와 연계해 직원들이 원활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실제 상담을 신청하는 수는 미비하다고 들었다. 아직까지 상담을 받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센터에 상담 신청할 경우 회사에 통보하나.

절대 비밀이다. 신청자 외 아는 사람은 상담사 뿐이다. 우리 센터에 신청하더라도 소장인 나도 모른다. 비밀보장을 철저히 하고 있다.


-심리상담을 통해 새로운 삶 혹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신청자도 있나.

굉장히 많다. 언론에서도 상담 긍정 사례를 많이 요청하는데, 본인 동의를 얻기 전에는 공개할 수 없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얼마 전 센터 개소식 때 축사를 하신 분이신데, 몇 해 전 학원 강사를 하다 심한 스트레스로 심리상담을 신청하신 분이셨다. 힘든 시기에 심리상담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됐고, 정말 감사한다고 울먹이면서 말씀하시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서울시의 모토가 노동존중특별시다. 감정노동 종사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노동존중특별시가 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안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다.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