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기술 우위의 종말


60대 노부부가 평생 모은 돈으로 시골에 집을 지으려고 건축사무소를 찾았습니다. 건축가는 최신 트렌드에 자신의 창의성을 더해 세상에 없던 집의 설계도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노부부가 원한 것은 30년 전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부러웠던 기억 속의 옛날 주택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취업 최전선의 취준생들이 바로 그 노부부와 같다는 것입니다. 건축가 입장인 제가 볼 때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취준생들의 머릿속은 30년 전이나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에게 20년 넘게 ‘좋은 말씀’을 해준 부모님, 학교 선생님, 교수님들이 그 노부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금수저가 취업 전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건 그들의 부모님들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접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제 기술 우위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려는 의도에서입니다. 만약 어떤 기업에 돈이 많아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다고 가정합시다. 전 세계의 반도체 컨설팅 업체,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반도체 재료 판매 업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 자기네 제품·서비스를 구매하라고 문전성시를 이룰 것입니다. 아니면 도시바처럼 매물로 나온 업체를 인수해도 됩니다.


즉, 이젠 기술이 너무 흔해지고 쉬워졌습니다. 삼성페이가 필요하면 루프페이를 인수하면 됩니다. B?W공장의 자동화 시스템이 현?차보다 두 버전 앞서 있다면, 가만히 있어도 지멘스 영업 담당자가 찾아와 B?W와 동일한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닦달할 것입니다.


그럼 어떤 기업이든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도, 반도체도 만들 수 있을까요?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팔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커피 전문점을 창업하려고 ‘카페 창업’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린다면 부동산 중개업자, 커피 머신 판매자, 인테리어 업체, 가구 판매자, 원두 공급자들이 자기네 물건을 사라고 득달같이 메일을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환경이 갖춰지면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나’는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커피를 마시며 맛에 대해 통달하고 소비자를 열광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명확한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기술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트렌드+알파’를 제공할 수 있는 감각, 즉 감성적 능력이 성공의 핵심 열쇠입니다. 자동차의 경우 기술은 상향 평준화되어 있고, 원하는 어떤 부품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디자인, 어떤 편의성을 추구해서 소비자들이 열광하게 만드는가, 이것이 시장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요소입니다.


“스타벅스는 천하에 둘도 없는 낭비”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 경제의 정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돈 아까운 줄을 몰라. 이래서 나라가 발전하겠냐”라고 말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한국 경제가 도약하지 못하는 겁니다.


우종국 취재편집부장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