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코너링이 좋았다


지난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일화, 다들 기억하시나요? “코너링이 좋았다”는 뉴스

영상 말입니다.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이 의경으로 입대해 꽃보직으로 꼽히는 운전병이 된 경위를

캐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선발 담당자는 운전병으로 뽑은 이유를 “코너링이 좋았다”고 답했습니다.


도대체 코너링이 얼마나 좋길래? F1 레이서라도 되는 건가? 이런 의문과 함께 “코너링이 좋았다”는

말은 조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동차 마니아이자 8년 넘게 자동차 관련 글을 쓰는 저로서

는 너무나도 수긍이 가는 얘기였습니다.


민정수석으로 있는 그분은 세금을 덜 내려고 아내 명의로 페이퍼컴퍼니(사명 ‘정강(正剛)’은 ‘바르고 굳

세다’라는 뜻)를 만들고, 법인 명의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S Q4’ 등 고급 차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정도 차를 몰아봤다면 코너링이 탁월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억 원에 육박하는 마세

라티를 몰면서 쏘나타 몰 듯 얌전하게 운전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 아드님이 수첩을 늘 끼고 열심히

받아 적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덕후’ 기질도 있는 듯합니다.


문제는 ‘코너링이 좋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20대가 마세라티를 몰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고

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고급 차를 능숙하게 몰 만큼 충분한 경험을 쌓을 20대는 그리 많지 않습니

다. 이처럼 금수저는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자본주의 문화를 체득하면서 자랍니다. 비록 능력이

그의 아버지처럼 뛰어나지 않더라도 또래 흙수저에 비하면 출발선이 앞서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흙수저는 취업을 마치 입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점과 토익 성적을 올리고, 해외

경험을 쌓고, 대외활동을 열심히 하면 자신의 점수가 오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업은 자본주의적

질서를 체득한 사람을 뽑습니다. 패배자는 취업 카페에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성토하는 장문의 글을

올리고, 수많은 댓글로 위로를 받을 뿐입니다.


그럼 흙수저에게는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흙수저는 금수저가 갖지 않은 것을 갖고 있

습니다. 바로 ‘절박함’입니다. 금수저는 조금 어려운 일을 시키면 그만둬버립니다. 그러나 흙수저는 참

고 견딥니다. 그렇게 10년, 20년 쌓은 내공은 결국 금수저를 앞서게 됩니다.


다만 이 험난한 취업 시장에서는 금수저가 조금 더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세련된 옷차림, 좋은

브랜드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지식,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익이 우선인 세상임을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은 인사 담당자들의 관심을 끌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흙수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금수저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련된 옷차림, 좋

은 브랜드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지식,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익이 우선인 세상임을 다 안다는 듯

한 표정을 지어야겠지요(속마음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걸 어디서 배우느냐고요? 어떤 책에 있느냐고요? 우선 기업 관련 뉴스를 잘 보기 바랍니다. 정의·

공정·배려의 시각은 잠시 접어두고, 제품·매출·이익 같은 잣대로 뉴스를 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

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하고자 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

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혼돈의 신)이다.”


우종국 취재편집부장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