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인 동생이 얼마 전 대뜸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한 3만원쯤 주면 되겠거니 했더니 웬걸, 5만원은 있어야 한단다. 모르는 척 노랑색 지폐 한 장을 꺼내줬다.


몇 시간 뒤, 동생이 골이 잔뜩 난 채 돌아왔다. 한 유명 사진관에 갔는데 8만원이 나왔다고 했다.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 사진 후보정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처음엔 그냥 사진만 찍을 생각이었는데 카운터에 걸린 사진들을 보니 어쩔 수 없었단다. ‘그래도 취업은 해야지….’ 그렇게 동생은 결국 아르바이트로 모은 제 주머니의 쌈짓돈을 털어야 했다.


올 3월, 가난한 취업준비생들을 구제할 ‘열린사진관’이 문을 열었다. 기존에 취업준비생에게 저렴하게 정장을 대여해주던 ‘열린옷장’의 확장판이다.


열린사진관은 매주 목요일에만 나타난다. 열린사진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면 된다. 신청자 수는 늘 다르지만 회당 1~6명 수준. 정원은 15명이다. 7월 14일 목요일, 이곳을 직접 찾아가 봤다.


정장만 빌려주려니 ‘아쉬워’ 내친김에 사진까지 찍어주다


전문가가 찍어주는 5천원짜리 취업사진… ‘열린사진관’을 가다

열린옷장은 취준생에게 저렴하게 정장을 대여해주는 민간기업이다. 재킷부터 구두까지 이른바 ‘면접복장 세트’를 최대 3만원 안팎으로 3박4일간 제공한다.


올 4월에는 서울시의 ‘취업날개’ 사업에도 동참했다. 공채시즌 이곳의 일일 방문자는 100여명에 이른다.


열린사진관 역시 열린옷장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였다. 기존 서비스에서 생각지 못한 아쉬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여기간이 3박4일이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정장을 빌려가서는 근처 사진관에서 사진만 찍고 바로 다시 가져오세요. 어차피 사진을 찍기 위해 빌린 것이니까요. 사진촬영 비용은 또 추가로 내야하죠. 그래서 아예 사진까지 저렴하게 찍어주기로한 거예요.” 장하라 열린옷장지기의 말이다.


동참할 사진관을 수소문하던 열린옷장에 희망을 준 곳은 바로 바라봄사진관이었다. 2011년 문을 연 이곳은 국내 최초의 장애인 사진관이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주로 소외계층의 면면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이달 말에는 지진으로 집을 잃은 미얀마 주민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러 떠날 예정이다. 두 업체의 뜻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열린사진관 프로젝트에는 헤어·메이크업 서비스도 있다. 김청경오테르 헤어살롱 덕이다. 그동안 바라봄사진관의 사회공헌활동에 종종 동참했던 김청경오테르는 이번에도 선뜻 함께하기로 했다.


취업 스트레스 날려줄 두피마사지부터 시작


열린사진관에는 총 세 가지 서비스가 있다. 후보정까지 제공하는 사진촬영이 기본이지만 원할 경우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도 가능하다. 비용은 추가된다. 사진촬영은 5천원, 헤어스타일링은 1만원, 메이크업은 3만원이다. 남성은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이 모두 각 5천원이다.


스타일링을 받고 싶다면 우선 김청경오테르 헤어살롱 홍대점을 찾아야 한다. 서울시 마포구 홍익대 부근에 있다.


오후 3시. 손님들로 북적이는 매장에서 남윤미 점장이 기자를 맞이하러 나왔다. 대기석으로 안내를 받고 잠시 더위를 식히고 있으니 찬 물과 다과를 내줬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고객 서비스가 시작됐다.



전문가가 찍어주는 5천원짜리 취업사진… ‘열린사진관’을 가다


김진광 김청경오테르 헤어살롱 홍대점 점장이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사진= 이정운 바라봄사진관 착한사진가



첫 순서는 샴푸. 스태프의 인도를 받아 샴푸실로 향했다. 두피마사지와 아로마테라피도 이어졌다. ‘열린사진관을 통해 온 취준생에게도 제공하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안 그래도 ‘신기하다’는 학생들이 많다며 스태프는 뿌듯해했다.


헤어스타일링은 김진광 원장이 맡았다. 마침 동생이 취준생이라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처음에 하루에 몇 명 정도에게 서비스를 할 수 있느냐고 묻기에 ‘20명은 더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학생에게 힘이 돼줄 수도 있고 잠재 고객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와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취업준비생이 이렇게 많은지 새삼 놀랐다”며 놀라기도 했다.



전문가가 찍어주는 5천원짜리 취업사진… ‘열린사진관’을 가다


남윤미 김청경오테르 헤어살롱 홍대점 점장이 증명사진 촬영용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정운 바라봄사진관 착한사진가



약 20분의 헤어스타일링이 끝나자 처음에 만났던 남윤미 점장이 메이크업을 위해 바통을 넘겨받았다. 피부 정리를 시작으로 기초·색조메이크업까지 꼼꼼히 매만졌다. “일이 많아져 부담되지는 않느냐”고 묻자 남 점장은 “색다른 고객들을 만나니 오히려 즐겁다”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오늘 약속이 있느냐”고 묻더니 서비스로 인조속눈썹을 붙여줬다.


정장대여·사진촬영·후보정 3단계 ‘5천원’


약 한 시간의 헤어·메이크업이 끝나고, 마침 서비스를 신청한 취준생 두 명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바라봄사진관으로 향했다.



전문가가 찍어주는 5천원짜리 취업사진… ‘열린사진관’을 가다



“열린사진관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아, 원래 열린옷장을 알고 있어서 몇 번 가봤는데 그곳에 안내포스터가 있었어요. 잘됐다 싶어서 얼른 친구를 데리고 왔죠. 원래 한 6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훨씬 아낀 거죠.”


“그러면 오늘 메이크업까지 다 받은 거예요?”


“아니요. 와, 기자님은 헤어?메이크업도 다 받으신 거죠? 저는 헤어만 했어요. 아직 메이크업까지는 부담이 되더라고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사진관에 도착했다. 김청경오테르 헤어살롱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있었다. 사진 촬영은 지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스튜디오에는 열린옷장 담당자가 직접 가져온 면접복장들이 있었다. 이날만큼은 무료로 입을 수 있다.



전문가가 찍어주는 5천원짜리 취업사진… ‘열린사진관’을 가다


서비스를 신청한 취업준비생과 이정운 사진가가 함께 증명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이즈별로 마련된 블라우스와 재킷을 입은 뒤 카메라 앞에 섰다. 열린사진관의 사진 촬영은 이정운 바라봄사진관 소속 사진가가 전담한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전문 사진가의 길로 나선 그는 현재 이곳에서 소외계층의 사진을 담고 있다. 수십 번의 ‘찰칵’하는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이중 한 개의 사진을 이정운 사진가가 직접 후보정해 당일이나 다음날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이날 세 업체의 담당자들은 공통적으로 “더 많은 취준생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모르는 취준생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정운 사진가가 지나가듯 남긴 말로 기사를 마무리 한다.


“지난주에 늦깎이 취준생이 왔어요. 한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분이었죠. 재취업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어요. 사진을 찍는 데도 꽤나 애를 먹었죠. 얼마 뒤, 뜻밖에 연락이 왔어요.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랬다고, 또 나름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음이 짠했어요. 또 이런 분들을 위해 더 노력하고 애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저희는 힘들어도 좋으니 많은 취준생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