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교육대학교 인천 캠퍼스. 1호선 경인교대입구역에 내려 나지막한 오르막을 10분 정도 걸으면 캠퍼스가 나타난다. 조용한 캠퍼스다. 다른 캠퍼스 같았으면 소떼처럼 우르르 쏟아질 점심시간인데... 마치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운동장 들어온 느낌이랄까.



나랑 학식 먹을래 16화. 취업걱정 없으면 대학생 아닌가요?

l 경인교대 인천캠퍼스 학생 식당. 정식, 돈까스(각 3,000원 3,500원)


학생식당에 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식당처럼 급식대가 놓여 있고 줄을 서서 반찬을 담아 테이블로 가져가더니 몇몇은 삼삼오오 모여, 대부분은 혼자 또는 둘이 마주 앉아 조용히 자기 몫을 삼키고 있었다.


"교대는 캠퍼스가 다른 학교랑 좀 다르네?"

침묵을 깨고 말을 뗐다.


"네, 그래서 고민 이예요. 다른 대학생들과 달라서요."

누가 쳐다볼까 눈치를 살핀 후 돌아온 답이다.


[ 선생님이 되기까지 경쟁률 최대 2:1 ]


나도대학생이양(*취업고민을 해야만 대학생인가요? 저도 진정 이 시대의 대학생일까요?를 고민하는 여대생. 이하 '나대양')은 대학 졸업 후 이변이 없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 다르게 해석하면 취업 걱정 없는 몇 안 되는 대학생에 속한다.


매해 교대 진학을 위한 수능 등급 컷은 올라가고 있지만 일단 입학을 하면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경쟁률은 최대 2:1, 지방은 미달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나대양은 예체능에 해당하는 과를 선택했는데 국영수 포함 전체 14개 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게 음악?미술?체육 바로 예체능이라 과도 원하는 학과에 들어간 셈이다.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면 할 말이 없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등 따심 배 부름 류'의 고민이래요. 무슨 말을 해도 '일단 넌 취업 걱정은 없잖아' 해버리니까요. 취업 걱정이 없으면 대학생이 아닌가? 나는 이 시대의 대학생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대학 친구들과는 확실히 선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한 반에 고작 30명인데 이런저런 고민 털어놨다가는 반나절 있으면 다 소문나거든요. 그래서 고민 같은 건 이야길 못하겠어요."


이미 직장인인 내 입장에서도 나대양의 상황을 듣고는 '걱정 없어서 좋겠다', '젊음을 즐기라는 게 널 두고 하는 말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친구들은 오죽 할까. 그런 면에서 충분히 나대양의 고민에 공감 했지만 한 편으로는 고민의 경중을 비교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내 고민이 더 심각한지, 친구 고민이 더 심각한지 ]


'삶=고민'이다. 이 부등호의 성립 관계는 고민이나 호기심이 없는 삶을 상상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아마 무료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고민이 없는 그 상태가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민이 없는 삶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민이 생기면 누구에게든 말하게 되어있다. 매일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적어도 몇 명은 마주치게 되고 무슨 말이든 섞을 수밖에 없으니까. 적어도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결국 살아있는 우리는 모두 고민하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교'는? 비교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일까? 가만 보면 나도 모르게 고민의 경중을 잴 때가 종종 있다. 내 고민이 더 심각한지, 친구의 고민이 더 심각한지 같은 것 말이다. 만약 내 고민이 더 크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내뱉으며 힘듦을 표현한다. 반대로 더 작은 것 같으면 의기소침해져 어디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왜 그런 걸까?


[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 ]


각자의 답이 있을 수 있지만 나대양의 경우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컸고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역지사지'를 택한 게 '끙끙거림'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역지사지'. 인간관계의 종결자 격인 데일 카네기도 수차례 말했다.


<상대와 이야기할 때 호의적으로 서두를 열고,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하며,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당신'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데일 카네기>



나랑 학식 먹을래 16화. 취업걱정 없으면 대학생 아닌가요?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다음 주에 옆 구르기 평가하는데 못하겠어'라던지 '엑셀로 수학시험지 만들어 봤어?' 하고 말할 수 없었다. '어학연수 가야 돼 말아야 돼?'라며 스펙 걱정하는 친구들을 앞에 두고서 그런 고민을 토로하는 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게 되는 셈이니까.


그렇다고 대학 친구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올 때,


'남자친구가 곧 군대 간 데, 헤어질까?'

'교대에 오긴 했는데 맞는 건지 모르겠어. 선생님이 되는 게 제일 안정적인 거겠지?'


있는 그대로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맞다 틀리다 말해줄 없었다. 그러기엔 관계가 무르익지 않은 것 같고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소문이 날 것만 같으니까.


[ '비교'하는 시간보다 '솔직'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사실 고민에 경중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개인 차원의 문제다.


누가 나에게 점심을 먹을지 말지 하는 것과 직업을 유지할지 바꿀지를 놓고 '고민 무게'를 물어본다면 난 당연히 후자라고 말할 거다. 하지만 같은 고민을 두고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건강상 이유로 다이어트를 심각하게 고민 중인 사람에게 묻는다면? 그래도 과연 같은 답이 나올까? 전자가 혹은 후자가 더 심각한 고민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나랑 학식 먹을래 16화. 취업걱정 없으면 대학생 아닌가요?


일본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퍼레이드>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된 다섯 남녀. 소설은 각자의 사연과 고민을 가진 다섯 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 준다.


나이도 18살부터 28살까지 제각각, 관심사도 모두 제각각인 이들은 매일 같이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알게 모르게 평가하기도 하고 심지어 의심하거나 비난할 때도 있다.


특히 중간에 끼인 21세 대학생 요스케와 23세 무직 고토의 경우 매일같이 함께 드라마를 보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한심하게 본다. 요스케는 남자친구만 바라보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고토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토는 선배의 여자를 탐하는 요스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고민에 대한 관심의 끈은 놓지 않는다.


"어젠 어디서 잤어?"라던지 "드라마 예고 좀 말해봐" 같은 일상적인 말을 시작으로 서로의 고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그 전과 달라졌는지 같은 걸 계속해서 공유한다. 결국 서로의 고민에 대한 답은 당사자가 내리게 되지만 말이다.


소설이든 현실이든 고민에 대한 시작과 끝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기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의견 혹은 조언, 나와 가까운 사람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고민의 경중을 비교하며 그 과정을 삭제하는 건 '내 고민'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비교는 기꺼이 건너뛰어도 된다. 진짜 건너뛰지 말아야 하는 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친구에게 지금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만이라도 용기를 내보자. "나 사실, 고민이 자꾸만 작아져서 고민이야" 하고 솔직하게 말해보는 용기.


출장 고민 상담소 <나랑 학식 먹을래> 끝.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

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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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그 많던 예술대학 선배들은 전부 어디에 계신가요"

8화. ″저 모태솔로 맞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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