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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계의 B급 프로, 이환천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순순히 인정하겠다’고 하지만 이환천의 시는 나름의 운율을 지녔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전국의 고교생을 괴롭혔던 고전시가의 운율이 떠오른다. 지루했던 고전시가의 운율은 ‘이환천의 문학살롱’에서 유쾌하게 다시 태어났다. 이환천의 손을 거치면 모든 일상이 시가 된다.


촌철살인계의 B급 프로, 이환천


이환천 시인

고교시절의 낙서가 작품으로

이환천은 어릴 적부터 ‘웃기는 애’로 통했다. 고등학교 문학시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하던 낙서가 작품의 시초였다.


“고전시가와 현대시를 배울 때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노래 가사 개사하듯 바꿔 친구들한테 보여줬어요. 친구들이 보고 재미있다고 하면, 사진으로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곤 했어요.”


고교 졸업 후 이환천은 체대에 진학해 유도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제약회사에 취직해 잠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적성과 맞지 않아 고민 끝에 퇴사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이환천의 문학살롱’ 페이지를 만들고 그동안 쓴 시를 게시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팔로우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금 ‘이환천의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우 수는 6만 명, 네이버 콘텐츠 팔로우 수는 2만 명을 넘어섰다. 학창시절 장난으로 시작한 시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될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팔로우 수가 꽤 되니 직설적 표현이나 은어, 비속어는 거의 안 써요. 팔로우하는 사람 중에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있으니 자제하죠.”

일상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이환천의 시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시의 밑거름은 삶의 애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환천의 시가 마냥 우울한 건 아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씁쓸함에 특유의 재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제 시가 핑크빛 감성은 아니에요. 약간 시니컬하다고 해야 하나요? 기쁨보다 삶의 씁쓸한 단면을 소재로 공감을 유도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사회생활이나 SNS를 할 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TV에 나오는 것처럼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죠. 그런 걸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는 게 마냥 즐거운 것도 아니고요. 삶의 애환을 마냥 슬프고 힘든 것처럼 표현하기보다 글을 읽고 피식 웃을 수 있도록 재밌게 쓰려고 하죠.”


B급을 자처하는 그이지만, 시를 쓰는 데 쏟는 열정은 프로 못지않다. 친구를 만나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는 도중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메모한 뒤 집에 돌아가 정리하곤 한다.


촌철살인계의 B급 프로, 이환천


이환천의 시 '이별한 친구에게'=출처 '이환천의 문학살롱'


이환천의 시에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 친구들의 사연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작품 중 ‘이별한 친구에게’는 헤어졌다 다시 사귀기를 반복하는 친구를 소재로 쓴 시다.


“어느 날 저한테 전화해서 ‘내 헤어졌다, 술 한 잔 사달라’고 하기에 1차도 사주고, 불쌍해서 2차까지 사줬어요. 돌아갈 때 택시비까지 줬는데, 다음날 둘이 손잡고 다니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뒤 또 싸우고 헤어졌다고 하고.”

쿨하지만, 내 여자한테는 쿨하지 못한 남자

그의 작품을 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환천은 그런 이들의 생각도 인정한다. 시집 표지에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순순히 인정하겠다”는 문구를 넣은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가끔 ‘네가 문학을 아느냐’ ‘이게 시냐’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기분 상하지는 않아요.”


이처럼 안 좋은 말은 한 귀로 흘려버리는 쿨한 남자지만, 여자친구에게만은 쿨한 남자가 되기 어렵다고 한다. 많이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쿨한 척하려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대부분의 남자가 그럴 거예요. 어느 남자가 여자친구를 남자 있는 술자리에 보내놓고 맘이 편하겠어요? 여자친구가 술자리에 가서 연락이 안 되면 잠도 안 오고요. 아예 가지 말라는 건 아니고, 적정선은 지켜야죠.”


반대로 그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 여자친구가 불안해하면 장기인 ‘말발’로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며 안심시킨다. 그의 말은 듣다 보면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이내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제가 여자친구한테 ‘니 만약 나이트에 부킹하러 갔는데, 방안에 내 같은 애가 한 세 명 앉아 있으면 어쩔래?’ 이러니까 여자친구가 ‘아, 그럼 얼른 나와야지’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거 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다재다능한 재주꾼

이환천은 시 쓰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레진코믹스에서 웹툰을 연재하고,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는 광고문구를 작성하는 작업도 한다.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이 없어 웹툰을 그리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남이 하는 건 나도 한번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친형이 미술을 전공했는데, 어릴 때 형이 그림 그리는 걸 보면서 따라했어요. 주로 책상이나 책에 낙서하면서 그림을 익혔죠.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어서 만화를 그리기 어렵더라고요. 일러스트처럼 한 컷만 그리는 게 아니라, 장면이 다 이어지도록 그려야 하니 그게 힘들죠.”


이처럼 많은 작업을 하는데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이환천은 지금 하는 일이 모두 재미있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최대한 많은 일을 해보려고 한다고.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시를 쓸 때 친구가 전화해서 ‘니 뭐 하노?’라고 물어보면 ‘내 일한다’고 하기에도 민망하고, 친구가 ‘니 무슨 일 하는데?’ 해서 ‘시 쓴다’고 대답하면 ‘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온나’ 하는 식이에요.”


촌철살인계의 B급 프로, 이환천


이환천의 시 '오빠차'=출처 '이환천의 문학살롱'


최근에는 영상작업도 시작했다. 그가 넷상에 올린 ‘오빠차’라는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한 기업에서 영상작업을 해보자고 제의해온 것이다.


“시를 영상으로 재밌게 표현할 수 있을 듯 싶어 하겠다고 했어요. 잘 되면 좋고, 안 돼도 어쩔 수 없고요.”


글 강진주 인턴기자/사진 이승재 기자/장소제공 토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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