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좋은 디자인하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하나의 이미지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알파벳 ‘M’을 보고 재채기하듯 ‘현대카드’를 내뱉고,

‘T’를 보고 ‘생각대로’라는 문구를 떠올리듯 말이다.

‘척하면 척’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다는 뜻. 이는 2004년 설립 이후 10여 년간 국내 디자인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온 디자인 에이전시

토탈임팩트의 성과이자 토탈임팩트를 이끄는 오영식 대표의 성과이기도 하다.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



지난 7월 20일, 오 대표의 성과, 성공,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 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토탈임팩트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는 ‘디자인’이 아닌 ‘청년’ ‘대학생’ ‘독서’였다.

의아했지만, “최근 책 <토탈임팩트의 현대카드 디자인 이야기>를 출간한 이후 연일 강연,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오늘은 꼭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그였기에 머리가 끄덕여졌다.


대표님을 만나뵙기 전에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웃음) 9번이나 직장을 옮겼다고 하던데, 이직을 많이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직을 목적으로 회사에 들어가지는 않았겠죠? 회사에 다니다보니 몇 가지를 깨닫게 됐어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요. 그런 조건들을 하나씩 맞추다 보니 이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때 깨달은 것들을 규정짓고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죠.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quot;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quot;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요?

우선 ‘상사가 무능하면 더는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부서이동으로 새로운 상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상사의 무능함이 느껴졌고, 계속 그 밑에서 일하다보니 제가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죠. 이후 직장에 다니면서 ‘쓸데없이 밤새우지 말고, 의미 없이 회식하지 말 것’ ‘효율적으로 일할 것’ ‘일하는 환경은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 등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나갔어요. 물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방법 같은 좋은 것도 많이 배웠죠. 어느 회사에서는 팀 조직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어요.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구성원이 여기저기 섞여 똑같은 성과를 누리는 게 좋지 않아 보였거든요. 능력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토탈임팩트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전문성'이겠어요.

저희는 포트폴리오나 전공을 고려하지 않아요. 포트폴리오는 학교에서 교수님과 같이 만드는 것이잖아요? 포토숍으로 손을 볼 수도 있고요. 대신 자기소개서를 자필로 쓰도록 해요. 글씨를 보면 스케치를 할 줄 아는지 평가할 수 있고, 또 써놓은 글을 보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지켜보면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보다 생각을 많이 하고 머리를 많이 쓰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하더라고요.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quot;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quot;


아무리 잘된 디자인이도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쓰이지 않잖아요. 이런 측면에서 소통능력도 중요한 평가요소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바라는 건 욕심이죠. 토탈임팩트는 아주 이상하지만 않으면 다 채용해요. 경력이 없어도, 전공이 미술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렇다 보니 토탈임팩트에서 경력을 쌓고 나가는 직원들이 많은데,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능력을 키워 나가서 더 좋은 일을 한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어요. 일종의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단, 3개월을 수습기간으로 두고 있는데, 이는 회사와 잘 맞는지 서로 겪어보자는 의미예요. 회사도 직원과 맞아야 하고, 직원도 회사와 맞아야 다닐 수 있으니까요.


보통 ‘디자인’ 하면 ‘창의적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가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겨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술 먹다 갑자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죠? 다 거짓말이에요. 아이디어는 생각의 끈으로 이어져 있을 때 나오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다 갑자기 어떤 것을 보고 떠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끊임없이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제가 하는 일의 경우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 계속 생각하고, 상업적·문화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면 아이디어를 점점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거쳐요.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quot;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quot;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나요?

무슨 일을 할 때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글 쓸 때는 클래식을 듣고, 그림을 그릴 때는 일렉트로닉음악을 들어요. 저는 사람 목소리가 나오면 음악을 잘 못 듣거든요. 집중이 안 돼서요. 일종의 생각하는 방식이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제가 가사 없는 음악을 좋아해서 일하는 방식으로 정했듯 말이죠. ‘책을 못 읽겠다’며 아예 안 읽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잘 볼 수 있는 책이 분명히 있어요. 저의 경우 허구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소설을 잘 못 읽거든요. 대신 역사?심리학을 좋아해 관련 책을 많이 읽어요.


책 <토탈임팩트의 현대카드 디자인 이야기>에서 ‘목적이 불분명한 디자인은 쓸모없는 장식일 뿐’이라며 논리적 사고를 강조하셨어요. 디자인과 논리적 사고, 연결이 잘 안 돼요.

제가 하는 일은 디자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소비자에게 잘 전달해야 해요.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죠. 설득하려면 타당하고 논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야겠죠? 그래서 디자인할 때도 ‘왜 파란색을 쓰지?’ ‘왜 이 선을 그었지?’ 등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요. 이렇다 보니 회사 미팅도 20분을 넘기지 않죠. 논리적으로 소통하면 20분을 넘길 이유가 없거든요. 논리적 사고를 하려면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해요.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quot;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quot;

디자이너로서 욕심을 내고 싶음에도 비용문제에 부딪힐 때도 있을 듯해요.

일하는 기준이 명확해서 그렇지 않아요. 마땅한 금액이 제시되면 클라이언트의 성격이든 뭐든 상관없이 일을 진행해요. 또 하나, 제시 금액이 적어도 토탈임팩트를 존중해준다면 진행해요. 만약 저희가 작업한 것에 대해 클라이언트가 불만을 가졌을 때는 세 번까지 설득해요.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하죠. 포기가 아니고, 디자인은 어느 정도 취향의 문제도 있어서 인정하는 거예요.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quot;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quot;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궁금해요.

물론 현대카드는 10년 정도 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지만, SKT의 아이덴티티 작업이 특별했어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만들었음에도 완성도가 높았거든요. 또, 전국에 우리가 만든 게 걸리니 느낌도 좋았고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진로를 결정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페이스북에 글을 잘 안 올려요. 글을 올린다고 해도 딱 한 줄로 남기죠. 한 줄로 말할 수 없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페이스북 같은 곳에는 말이죠.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림으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일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아주 열심히 한 것은 아닌데, 같은 학과 여학생들 다음으로는 숙제를 가장 열심히, 빠지지 않고 했어요. 그리고 인문학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인류학 수업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죠. 여러분도 학교에 그런 수업이 있으면 꼭 들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대학생 때 가장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리포트라고 생각해요.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거든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는 능력이 필수예요. 창조적 작업에서도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결과물을 내놓죠.


디자인 분야는 한국보다 외국이 더 선진화해서인지 많은 디자인 전공자가 유학을 꿈꿔요. 대표님도 유학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유학을 다녀왔다고 디자인 실력이 뛰어나게 는다면 누구나 유학을 가겠죠. 충분히 국내에서도 할 수 있어요. 현재 랜드로버,앱솔루트 등 수많은 기업의 브랜딩을 진행한 브랜드 컨설턴트 그룹인 브랜드 유니온 월드와이드와 협업하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꾸준히 시야를 넓히고 외국어 실력도 키우고 있어요.


오영식 토탈임팩트 대표 디자이너 &quot;좋은 디자인하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quot;

인터뷰 함께한 대학생 기자 강재희(연세대 정치외교 4), 정연희(한림대 국제마케팅 2)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이 취업에 걱정이 많아요. 한 기업의 대표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이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한국은 가능성을 보고 사람을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청년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안을 찾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거예요. 사회적으로 운동도 하고 투쟁도 해야 해요. 물론 민주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필요하다면 저도 도와줄 마음이 충분히 있어요. 움직였으면 해요. 역사책을 비롯한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을 키우며 해답을 찾으세요.




글 김은진 기자(skysung89@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사진제공 세미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