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이’. 노랑, 빨강, 초록의 지렁이 모양 젤리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면 당신에게 실망이다. ‘꿈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파이팅 넘치면서도 순수하고 고결한 그 숨은 뜻을 모독했으니! 왕꿈틀이 젤리의 라이벌이자 대한민국 청년들의 소중한 꿈을 응원하는 ‘꿈틀이’의 창시자를 만났다.
↑꿈틀이 조경모 대표.
조경모(한국항공대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 2) 씨는 2년 전만 해도 꿈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며 시큰둥했던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때만해도 학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을 가야한다는 목표 그 이상의 꿈은 없었다.
“평소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터라 우주 관련 학과를 선택했죠.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 생각했던 공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슬럼프에 빠지게 됐나봐요.”
인터스텔라를 상상했으나 결과물은 ET와의 손가락 인사 수준이랄까. 대학생활에 흥미를 잃은 그는 학교 밖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수업보다는 여행 다니고, 모임을 주최하고 술 마시고 노는 일에 더 열중했다. 물론 성적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깊이, 더 깊이 떨어졌다. 전교 5등의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는 2년 만에 250명 중 242등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보통은 그 정도의 성적을 받으면 정신 차리고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계속 놀았어요. 결국 2학년 2학기 때 0.7이라는 성적과 학사경고를 받게 됐죠.(웃음)”
0.7 샤프심 학점, 군대 가도 사람은 안 변해
0.7 샤프심을 떠올리게 하는 듣도 보도 못한 학점을 받게 된 그는 고민 끝에 군 입대를 선택했다. 학고 3번이면 퇴학인 학교 규정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퇴학은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군 생활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었고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선임들의 구타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군 생활이 힘들어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도 이별 통보를 했다. 솔로가 되니 한결 시간이 많아졌다. 전화도 안하고 편지도 안 쓰고 휴가를 나가도 만나지 않으니 말이다. 자연스레 혼자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진지하게 ‘제대 후 뭘 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됐다.
“병영도서관에서 책부터 읽었죠.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달라졌어요. 특히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그동안은 꿈을 특정 직업으로 생각했는데 꿈은 직업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란 것을 느꼈죠. 꿈이 없는 인생은 없겠구나란 생각도 했고요.”
그는 그때부터 노트에 무려 65개의 꿈을 적었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등이 모두 꿈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고민하다보니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이것저것 제안도 했다. 어느새 선임들의 구타 가혹행위는 사라졌고, 일 잘하는 군인이 되어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 일이 많아졌다.
“달라진 제 모습을 보며 꿈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후임들을 상담해주면서 꿈을 갖게 하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군대 밖에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꿈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꿈틀이 전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 본인의 꿈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꿈틀이? 그거 스펙, 돈 되냐?
그는 2013년 8월 SNS그룹을 만들었다. ‘꿈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가진 ‘꿈틀이’. 자신의 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일단 그룹으로 만들려면 초기 인원이 필요해 지인들을 초대했는데 반응이 영 달갑지 않았다.
“‘너 다단계하냐’, ‘군대 가서 왜 뻘짓하냐’, ‘공부도 안하더니 무슨 꿈이냐’ 등의 반응이더라고요.(웃음) 몇몇은 ‘이거 스펙 되냐, 돈 되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런 반응을 보니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꿈틀이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홍보한 끝에 3개월 만에 그룹 회원 1000명을 돌파했다. 휴가를 나와서는 회원들과 오프라인 정모도 진행했다. 제대 후에는 더 열심히 꿈틀이를 관리했다. 그 결과 7개월 만에 회원수가 1만 명에 도달했고, 현재는 2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꿈틀이를 찾고 있다.
“꿈틀이 그룹 내에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왠지 오글거리고 민망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단 말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자극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회원들을 보며 느낄 수 있죠. 그룹 안에서 서로의 꿈을 지원해줄 수 있는 멘토, 멘티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한번은 저희 스텝이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고등학생들이 ‘너 꿈틀이 알아?’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대요. 반응이 좋은 만큼 온라인 커뮤니티만으로 끝내기는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10월에는 꿈틀이 사업자등록을 마쳤어요. 단순히 커뮤니티로 끝날 것이 아니라 꿈에 대한 강연도 하고, 서로 오프라인 모임도 갖고, 기부, 봉사 같은 사회공헌도 하고 있죠. 올해 초에는 전시회도 진행했어요. 13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꿈을 표현한 작품을 전시한 거죠.”
맨 앞줄 모자를 쓰고 누워있는 포즈를 취한 조경모 대표와 꿈틀이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 및 스텝들.
우리의 라이벌은 왕꿈틀이 젤리
사업자등록을 하고, 한 회사의 대표가 됐지만 아직까지 수익구조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조경모 씨는 알바를 통해 겨우겨우 월세를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 진행한 전시도 대관료 낼 돈이 없어 돈 잘 버는 금융권 친구에게 165만원을 빌리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60만원을 후원받아 진행할 수 있었다.
“전역 후 학교를 휴학하고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휴학을 허락받기 위해 부모님 앞에서 PT까지 했었다니까요.(웃음) 겨우 1년 휴학을 허락받았는데 대신 금전적인 지원은 절대 안 받기로 했죠. 전시회 때문에 알바를 잠깐 쉬었더니 벌써 월세가 한 달 밀렸네요. 이제는 사업으로 수익을 내야죠.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됐거든요.”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한 만큼 1년간의 휴학기간 동안 그는 열심히 꿈틀이를 키워볼 생각이다. 사업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독학으로 경영에 대해 배워볼 계획도 있다. 공부를 해보고 적성에 맞는다면 과감히 전과도 생각하는 중. 물론 성적이 좋지 않으니, 재수강은 필수이겠지만.
“얼마 전 만난 분이 꿈틀이 이름을 놀리더라고요. 유치하다고요. 좀 기분이 상했어요. 저는 이름에 만족하거든요. 저희의 목표는 왕꿈틀이 젤리보다 유명해지는 거예요. 라이벌이죠.(웃음) 3월부터는 신사업 구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많은 이들이 꿈을 응원하고 싶어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꿈틀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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