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키운 건 ‘8할’이 동아리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대학 시절 자신의 역량을 키워준 동아리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학생들이 닮고자 하는 멘토들, 그들이 대학 시절 몸담았던 동아리가 궁금하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 영화감독의 과거를 좇다 보면 대학 시절부터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싹수’를 키운 경우가 상당하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 그는 서강대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직접 영화 동아리를 결성해 활동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대로 그가 영화 동아리를 결성하게 된 에피소드가 조금 특별하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주로 영화 관련 책을 빌려 탐독했는데, 책을 빌릴 때마다 대출카드에 적힌 이름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 그는 대출카드 속 이름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 모인 이들이 영화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함께하며 영화도 제작하는 ‘서강영화공동체’의 창단멤버가 됐다. ‘타짜’의 최동훈 감독과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 역시 ‘서강영화공동체’ 동문. 대표적인 영화인들을 배출해낸 이 동아리는 서강대의 명물동아리가 되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은 대학 4학년 때 뒤늦게 성균관대 영화 동아리 ‘영상촌’에 가입해 활동하며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개척한 케이스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최종병기 활’의 김활민 감독도 연세대 영화 동아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영상을 전공하지 않는 이들에게 영화 동아리 활동은 영화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좋은 터전이 된다. 지금도 매년 새 학기가 되면 많은 이들이 제2의 박찬욱, 제2의 봉준호를 꿈꾸며 영화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극이 인기를 끌던 시대에는 학내 연극 공연을 통해서 인기스타가 배출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연기에 재능 있는 이들도 연극 동아리로 몰려들었다. ‘난타’로 우리 고유 콘텐츠를 세계에 알려온 PMC 프로덕션 송승환 대표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 아역 탤런트 출신인 그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고, 학업을 중도 포기하면서도 동아리 활동은 계속했을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영화배우 문소리는 성균관대 연극 동아리 ‘성균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학창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연극 ‘에쿠우스’의 매력이 그를 연극 동아리로 이끌었다고. 연기와는 전혀 다른 전공인 교육학을 공부하던 그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연기의 참맛을 알게 됐고, 졸업 후에도 연극 무대에 올라 경험을 쌓다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으로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됐으니,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소리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동아리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발판”

현재 대중문화 산업에 몸담고 있는 유명인들 가운데에는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많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는 서울대 재학 시절 밴드 ‘샌드페블즈’에서 활동했다. 샌드페블즈는 당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동아리로, 산울림의 김창훈이 속해 있던 그룹으로 유명하다. 이수만 이사는 김창훈보다 앞서 2기 보컬로 활동했고 후에 가수 데뷔를 통해 국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가수 겸 작곡가 김광진은 연세대 재학 시절 서울·경기 지역 코러스 연합동아리 ‘쌍투스’를 만들어 활동했다.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도 코러스 동아리를 직접 조직할 정도로 음악에도 열성적이었던 그는 후에 ‘마법의 성’을 비롯해 주옥같은 선율을 만들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전진수 수석프로그래머 역시 고려대 재학 시절 음악감상실에서 활동했던 것이 음악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됐다고 밝힌다. 음악이 좋아서 들어간 동아리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선배들을 만나게 됐고, 선배들 밑에서 지식의 저변을 넓혔던 것이 자연스럽게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지어 줬다는 것. 이처럼 관심 분야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동아리 활동이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씨앗을 심어주기도 한다.

문화 예술계 인사들 외에 유명인들이 거쳐 간 동아리엔 어떤 것이 있을까?
김주하 MBC 앵커는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5개나 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둑 동아리, 컴퓨터 동아리, 토론 동아리, 타임(TIME) 영어 동아리, 봉사 동아리까지 관심 분야를 두루 훑었다. 그중에 그가 끝까지 활동을 계속한 동아리는 봉사 동아리.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운 것이 언론인 김주하를 만들어내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셈이다.

‘독도 캠페인’으로 이름을 알린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씨는 성균관대 재학 시절 ‘생존경쟁’이라는 대학문화 창조 동아리를 만들어 초대회장으로 활동했다. 서울 중구 한옥마을에 묻힌 ‘서울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그가 대학생 시절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작업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생존경쟁 동아리는 지금도 대학 연합 홍보 동아리로 매년 신입 회원을 모집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재학 시절 독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하던 학과로 진학하지 못해 방황했다는 그는 전공 수업 외에도 인문대 수업과 독서 동아리 활동에 주력하며 소양을 쌓았다. 특히 독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읽은 로마클럽 보고서의 ‘성장의 한계’는 생물학 전공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되살려주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연세대 재학 시절 영어회화 연합동아리인 ‘파인트리 클럽’에서 활동했다. 국내 최초의 대학생 영어회화 연합 동아리로 알려진 ‘파인트리 클럽’은 1958년 창립 당시부터 ‘엄친아’들의 모임으로 입소문을 탔던 곳. 이만희 전 환경부장관, 강재섭 새누리당 상임고문(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같은 동아리 출신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갈고 닦은 지식을 창업으로 풀어낸 경우도 있다.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 컴퓨터 연구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며 꿈을 키웠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실력을 쌓았다는 김택진 대표는 이찬진 대표가 ‘한글과 컴퓨터’를 창업할 때 부탁을 받고 ‘한글’의 그래픽 처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