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기준이 뭐지?” “그야 성공과 실패겠지.” “넌 나폴레옹이 승자라고 생각해 패자라고 생각해?” “글쎄, 결과만 보면 패자가 아닐까? 러시아 원정은 실패했지, 마지막 기회인 워털루 전쟁에서도 졌지, 그리고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비참하게 죽었잖아.” “그러면 나폴레옹이 패자일까? 코르시카 출신으로 황제까지 됐는데? 그리고 패자면 다 나쁜 걸까? 체 게바라는 어때? 볼리비아 혁명이 실패했다고 체 게바라를 별 볼 일 없는 사람 취급할 순 없잖아.”

하재영 단편 ‘타인들의 타인-18세’ 중에서

삶에는 성취보다 더 많은 실패와 상처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큰 패배다. 항구에 있는 배는 가장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존재 이유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공이냐 실패냐라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에 어떻게 도전했느냐에 의미가 있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2000번이 넘는 실패를 했다. 노벨은 공장을 날리고 동생의 죽음까지 겪으면서도 결국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냈다. 오늘, 당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가장 두려워한 실패가 현실이 되자, 나는 자유로워졌다”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비서로 취직한 한 여성이 회사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언제나 공상에 빠져 있느라 상사의 스케줄 메모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전화를 받으면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평범한 임무조차 해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일

자리가 없어 3년 동안 주당 69파운드(약 12만 원)의 생활보조금으로 생활을 했고, 돈이 부족해 어린 딸에게 우유에 물을 섞여 먹여야 했다. 몹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동화를 쓰고 싶다는 열망을 버리진 않았다. 매일 아침 작은 카페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서 열심히 펜을 움직였다.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꼼짝 않고 종이 더미에 고개를 파묻고서.

첫 구상을 한 지 5년 만에 완성한 원고는 열두 군데의 출판사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천신만고 끝에 블룸즈버리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아동 도서로는 절대 돈을 벌지 못한다’ ‘판타지 소설 작가가 여성임이 밝혀지면 책이 안 팔릴 수 있다’며 고작 500부의 초판만 찍었다. 출간 후 그 어떤 서평도 없었다.

10년 후, 그녀가 쓴 책은 전 세계 67개국 언어로 번역, 4억 권 이상 판매돼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됐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이야기다.
<YONHAP PHOTO-0218> British author J K Rowling at  the release of her latest Harry Potter book called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at the Natural History Museum in London, Friday July 20, 2007. (AP Photo/Kirsty Wigglesworth)/2007-07-21 08:04:22/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British author J K Rowling at the release of her latest Harry Potter book called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at the Natural History Museum in London, Friday July 20, 2007. (AP Photo/Kirsty Wigglesworth)/2007-07-21 08:04:22/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엄청난 실패의 연속이었죠. 결혼에 실패한 데다 실업자에 싱글맘… 더 이상 가난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누가 봐도 실패한 사람이었어요. 그 긴 고통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실패의 미덕을 배웠습니다. 가장 두려워하던 실패가 현실이 되었기에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나는 실패했지만 살아 있었고, 사랑하는 딸이 있었고, 낡은 타이프라이터와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죠. 가장 밑바닥을 경험한 것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돼주었습니다.”



20년 동안 ‘삽질’만 한 만화의 대반전
“밋밋한 스토리와 캐릭터, 재미도 없고 그림체도 형편없다.”

직접 그린 만화를 들고 미국 내에 존재하는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 등 그림을 팔 수 있는 곳이라면 그는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는 문집에 넣을 만화를 열심히 그려 교사에게 갖다 주어도 단 한 번 실린 적이 없다. 수많은 대학에 자신의 만화를 첨부해 원서를 냈지만 모두 입학을 거절당했다.

20년 동안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그의 만화는 수백 번의 실패 끝에 1950년 10월 가까스로 ‘세인트 폴 파이오니어 프레스’ 신문사에서 연재 제안을 받는다. 그 후 전 세계 75개국 26개 언어로 번역돼 2600여 개 신문·잡지에 50년간 연재되는 대기록을 세운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의 이야기다.
[‘영웅’들의 실패 연대기] 지금 낙담하고 있니?어마어마한 그들도 한때 실패자였단다!
“세상 한구석에는 반드시 밝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끈질기게 기다리면 된다.”



‘기적’ 뒤 필연의 흔적

아만다가 말했다. “무엇을 준비했죠?”
어수룩해 보이는 한 남자가 대답했다. “오페라를 부르려고요.”

사이먼이 볼펜을 잘근거리며 툭 던졌다. “준비됐으면 해보세요.”
전주가 흘러나오고 남자는 심호흡을 했다. 무대 위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푸치노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Nessum Dorma’.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스튜디오는 낮은 탄성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3분 후, 환호성과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까지 있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오늘 석탄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석탄은 곧 다이아몬드로 바뀔 것 같군요.” 감격에 겨운 아만다의 한마디가 이어졌다. 그는 수천 대 경쟁률을 뚫고 2007년 영국 ITV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최종 우승자가 됐다. 보잘것없던 휴대폰 판매원 폴 포츠의 이야기다.

가난하고 별 볼 일 없지만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돈을 모아 이탈리아에서 두 차례의 단기 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영국의 한 방송사에서 주최한 노래경연대회에서 수상한 후 드디어 꿈을 이룰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계속된 실패 중에 그가 얻은 것은 악성 종양과 교통사고, 그리고 5500만 원의 카드 빚이 전부였다.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을 때, 그는 망설임 끝에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원서를 넣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영웅’들의 실패 연대기] 지금 낙담하고 있니?어마어마한 그들도 한때 실패자였단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그냥 내려와 버릴까 심각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음악이 나와버려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그가 이룬 것은 기적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실패기’라고 쓰고 ‘도전의 역사’라고 읽는다
루스 핸들러의 분신 ‘바비인형’
[‘영웅’들의 실패 연대기] 지금 낙담하고 있니?어마어마한 그들도 한때 실패자였단다!
어른들을 위한 인형을 제안했을 때, 마텔 사 내부에서는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디자인팀은 말할 것도 없고 중역들의 반대도 심했다. 시장조사에서조차 모조리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인형가게 주인들도 가슴이 봉긋한 이 인형을 진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루스 핸들러는 이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그로부터 3개월, 바비인형은 일주일에 2만여 개씩 팔려 나갔다. 올해 아흔두 살이 된 바비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노벨문학상

‘고도를 기다리며’가 미국 연극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 아무도 그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겨우 2주일 만에 막을 내려야 할 정도로 흥행도 부진했다. 출판사에서는 마흔두 번이나 인쇄를 거절당했다. 그의 고향 프랑스에서는 무대 근처에조차 가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베케트는 거듭되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1969년 그는 끝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헨리 포드의 엔진
<YONHAP PHOTO-0202> A portrait of company founder Henry Ford (R) hangs on the wall in front of a Model T Ford in the historic Ford Motor Piquette factory in Detroit, Michigan, in this file image taken January 5, 2007. Ford, who created the automotive industry's first mass-market hit with the Model T a century ago, was a proponent of radical simplicity. Picture taken January 5, 2007. To match feature AUTOS/COMPLEXITY       REUTERS/Gary Cameron/Files  (UNITED STATES)/2008-03-30 09: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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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rtrait of company founder Henry Ford (R) hangs on the wall in front of a Model T Ford in the historic Ford Motor Piquette factory in Detroit, Michigan, in this file image taken January 5, 2007. Ford, who created the automotive industry's first mass-market hit with the Model T a century ago, was a proponent of radical simplicity. Picture taken January 5, 2007. To match feature AUTOS/COMPLEXITY REUTERS/Gary Cameron/Files (UNITED STATES)/2008-03-30 09:27:16/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Copyright 2004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
열여섯 살이던 헨리 포드가 에디슨에게 물었다. “가솔린이 기계를 돌릴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습니까?” 에디슨이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소.” 그는 에디슨의 이 한마디 대답에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 자동차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 2년, 3년이 지나도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5년, 6년이 지났지만 계속 실패만 이어졌다. 7년, 8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13년이 지난 무렵, 헨리 포드는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 세상을 뒤집어 놓고야 말았다.



강풀의 400통 입사지원서

‘안녕하세요. 만화 그리는 강풀입니다.’ 인터넷 만화의 중심으로 불리는 작가 강풀은 군 제대 후 400통의 입사지원서를 썼다. 구청 신문부터 생활정보신문까지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매체라면 빠짐없이 이력서를 보냈다. 마침내 한 만화 잡지의 제의를 받아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년 후 잡지사는 망하고 말았지만 400통의 이력서를 보냈던 끈기와 열정을 알아본 이들이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이승환의 승부수
[‘영웅’들의 실패 연대기] 지금 낙담하고 있니?어마어마한 그들도 한때 실패자였단다!
가수 이승환은 데뷔 전 기획사에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17번이나 전달했지만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께 호기롭게 제안했다. 미리 유산을 받는 셈 칠 테니 제작비를 지원해 달라고. 그렇게 제작한 앨범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집 앨범 ‘B.C 603’이다.



글 최지수 대학생 기자(경남대 법학 3)│사진 한국경제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