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즘과 하이티즘은 가라!

여성들이 슬림형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에 강박돼 있다면 남성들은 근육질의 육체미에 강박돼 있다. 여성에게는 ‘S라인 신드롬’이, 남성에게는 ‘식스팩(복근남) 신드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S라인이든 식스팩이든 그것은 이미지로만 증식하는 시뮬라크르에 해당한다. 어느 날 미디어를 통해 S라인과 식스팩의 이미지가 매혹하는 영상으로 전달됐는데 이게 바로 시뮬라크르(simulacre)에 해당한다.

시뮬라크르는 본래 플라톤이 정의한 개념으로 재현하고 모방할 대상이 있는 가짜 실재를 말한다. 플라톤은 현실의 복제를 시뮬라크르라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복제할 원본 혹은 실재가 존재한다.

복제를 통해 모방품이 생산되고 모방품이 또다시 재생산되는 것이 시뮬라크르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연속적인 복제품은 복제될수록 원본과는 멀어져, 결국 지금 여기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무가치하다고 말했다.

장 보드리야르는 이제는 원본 없는 이미지가 새로운 실재로 둔갑한다면서 이를 시뮬라크르라고 불렀다. 플라톤의 시뮬라크르와는 버전을 달리하는 것이다. 급기야 보드리야르는 오늘날에는 “시뮬라크르야말로 참된 것”이라 말한다.

가짜인 시뮬라크르가 참이 된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가치의 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미지만으로 증식하는 이른바 ‘가짜 현실’의 습격이다. 이미지가 스스로 증식해 새로운 실체를 만들면서 원본으로 행세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럭셔리의 기호로 소비되는 이른바 ‘잇 아이템’이 바로 시뮬라크르에 해당한다. ‘잇 아이템’은 스타라면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필수 품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템이 주는 이미지에 매혹돼 이를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 연예인들에게는 ‘식스팩’이 시뮬라크르가 돼가고 있다. 식스팩(six-pack)은 미국 노동자들의 탄탄한 복근 근육에서 유래했다. 노동자들이 육체노동으로 식스팩을 가졌다면 화이트칼라는 ‘머핀톱(muffin-top)’를 가졌는데 울퉁불퉁 튀어나온 뱃살, 즉 비만을 상징한다.

식스팩이 멋진 남성의 새로운 기준으로 소비되면서 남자 연예인 중 프로필에 웃통을 벗고 근육을 뽐내는 사진이 없는 이가 거의 없다. 이런 남자 연예인들을 보면서 많은 여자들은 멋진 남자라면 저 정도의 복근은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남자들 또한 자신을 제외한 멋진 남자들은 헬스클럽을 다니며 탄탄한 복근을 자랑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복근남을 일상에서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식스팩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으로 실제 식스팩을 갖춘 남자가 내면도 멋진지는 알 수 없다. 식스팩의 남자가 여성을 매혹하는 ‘성적 능력’을 지녔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때 여성들은 멋진 남성이라는 일종의 ‘기호’를 소비하게 되는데 그 기호가 반드시 멋진 남성의 기준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면 식스팩이라는 외양 혹은 껍데기에 매혹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복근남 이미지는 현실에서 벗어난 하나의 시뮬라크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시뮬라크르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남성들은 너도나도 헬스클럽에 다니며 복근남이 되려고 애쓴다.

더군다나 젊은 여성들은 식스팩을 멋진 남자의 기준 중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여성들의 ‘S라인 신드롬’이나 남성들의 ‘식스팩 신드롬’은 대표적인 루키즘(lookism), 즉 ‘외모 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젊은 남녀뿐 아니라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루키즘이 판을 치면서 성형이나 미용 등 관련 산업까지 성업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는 인종·성별·종교·이념 등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차별 요소로 외모를 지목했다. 외모가 연애·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형 등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는 것이다. “외모는 경쟁력이고 미모는 권력”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세상은 이미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든 지 오래다.
[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성공은 얼굴보다 내공에 달려 있다
키 작은 사람은 ‘9급 장애인?’

요즘 들어 우리 사회의 루키즘 가운데 맹렬하게 수용되고 있는 게‘하이티즘(heightism)’이다. 하이티즘은 키 작은 사람에 대한 멸시 혹은 (여성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키가 큰 남자는 작은 남자보다 프리미엄을 누린다는 것이다. “키가 작은 사람(여자 160cm 이하, 남자 170cm 이하)을 일명 ‘9급 장애’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 장애 등급은 6급뿐이다. 큰 키를 중시하는 현 사회 풍조를 반영한 웃지 못할 신조어다.” 이런 기사까지 신문에 등장하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 혹은 키 큰 사람들이 프리미엄이 있다는 믿음은 성장클리닉의 성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일부 존재한다. 키가 작으면 경찰이 될 수 없다. 스튜어디스나 모델도 안 된다. 하지만 극히 일부 현상일 뿐인데, 이런저런 과학적 연구결과라는 분석이 ‘하이티즘’ 신화를 조장하고 있다.

니콜라 에르팽의 ‘키는 권력이다(2008)’라는 책은 하이티즘 신화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에는 키 작은 사람(주로 남자)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는데 정말 ‘키=권력’이라고 주장한다.

여자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상대적으로 키 큰 남자를 고르는데 이는 ‘미래를 위한 보험’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키의 프리미엄(height premium)’이다. 즉 남자의 큰 키는 신분·연봉·연애·결혼 그리고 많은 요인에서 프리미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키 큰 남자일수록 가방끈이 더 길고, 연봉도 더 많이 받고, 결혼도 잘하며, 출세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2009년 11월 KBS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발언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 그녀는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

내가 170cm이다 보니 남자 키는 최소 180cm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루저 소동’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는 키가 커야 한다’는 새로운 가짜 현실이 진짜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즉 멋진 남자는 적어도 키가 180cm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 혹은 이미지로서 앞서 식스팩과 마찬가지로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인 셈이다.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거꾸로 이 이미지의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를 보드리야르는 ‘하어퍼리얼(hyper-real)’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남성들이 키(하이티즘)에 강박당한다면 여성들은 얼굴뿐 아니라 몸매(섹슈얼리티)에 강박당한다. 또한 남녀 모두 ‘얼짱’이면 떠받드는 ‘외모 지상주의’가 성공 신화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허깨비에 불과하다.

아름다워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아름다운 여자를 얻기 위해 식스팩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은 모두 가짜 이미지의 시뮬라크르에 매혹되어 실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여성상과 고급 승용차, 식스팩을 가진 남성상에 맞춰 서로 짝을 찾으려 한다.

‘키 큰 사람이 리더십 있고 돈을 잘 번다’와 같은 속설처럼 키가 큰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하면 지나친 단견이다. 이는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과 같은 이분법적인 단견이다. 세상은 결코 키 큰 사람에 의해서도, 외모에 의해서도 지배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오히려 키가 작거나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외모 지상주의자 중 성공한 사람이나 행복하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법칙이다. 성공은 ‘외모’보다 ‘내공’에 달려 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당당한 능력과 자신감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매력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성공은 얼굴보다 내공에 달려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