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류현경

[스타와 커피 한 잔] 류현경, 매 작품 속 인물이 온전히 ‘나’로 느껴져
2010년 관객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여배우 류현경. ‘방자전’부터 ‘시라노; 연애조작단’ ‘쩨쩨한 로맨스’까지 3연타석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3편의 영화 누적관객 수는 2010년 12월 20일 기준으로 735만 명을 넘었다.

주연은 아니지만 충무로의 ‘명품 조연’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1996년 SBS드라마 ‘곰탕’에서 김혜수 아역으로 데뷔한 15년차 중견(?) 배우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조연으로 꼽히는 그는 이제 관객에게 ‘류현경’ 이름 석 자를 또렷이 각인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류현경 어린이는 스스로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TV에서 본 서태지와 모 여배우가 함께 찍은 뮤직 드라마 때문이었다. 어린 마음에 ‘배우가 되면 서태지와 연기할 수 있구나’ 싶었던 것.

1년 후, 드라마 ‘곰탕’의 김혜수 아역으로 정식 데뷔했다. 중학교 1학년 때다. 하지만 얼마 후 서태지가 은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서태지와 함께 연기할 가능성이 ‘제로’가 된 셈. 하지만 연기는 어느덧 그에게 ‘평생 하고 싶은 일’로 자리 잡았다.

“스타가 되겠다거나 유명해지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25세 때 영화 ‘신기전’을 찍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너무 좋은 감독님, 배우들과 좋은 영화를 찍으면서 좋은 영향력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평생 배우를 해야겠다는 꿈이요. 사람들은 욕심이 많을 것 같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갖고 싶은 것도 없어요.(웃음)”

지난해 흥행한 한국 영화에는 모두 류현경이 출현했다고 할 정도로 그의 활동은 활발했다. 영화 ‘방자전’에서 춘향을 질투하는 향단이로,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는 송새벽이 짝사랑하는 청순한 카페 바리스타로, 그리고 ‘쩨쩨한 로맨스’에서는 최강희의 절친으로 관객과 만났다. 연기력에 대해서도 호평을 이끌어냈다.
[스타와 커피 한 잔] 류현경, 매 작품 속 인물이 온전히 ‘나’로 느껴져
“평생 배우를 하려면 뭘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결론은 하나였어요. 어떤 역할이든 영화에서 잘 쓰일 수 있는 배우가 되면 나이가 많든 적든 평생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방자전’도 그렇고 ‘시라노; 연애조작단’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감독님이 ‘초반에만 잠깐 나오는데 괜찮겠냐’고 물으셨는데 망설일 틈도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어떤 역할이든 열심히 할 준비가 돼 있었거든요.”

놀고 즐기며, 장학금은 물론 학고도 맞아

지난해 2월 학사모를 쓴 류현경은 후회 없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았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수업을 빼먹어도 봤어요. 오전 9시 수업인데 친구들이랑 밤새 놀다가 아침까지 술 마시고.(웃음) 1학년 때는 거의 놀았어요. 여느 대학생들이 하는 건 다 해봤어요.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잖아요.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즐기고 너무 행복했죠.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흐지부지 학창 시절을 보내지도 않았다. 촬영과 수업을 병행한 건 한 학기뿐.

“작품을 할 땐 늘 휴학을 했어요. 둘을 한꺼번에 할 순 없더라고요. 딱 한 번 병행해 봤는데 후회돼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시험은 리포트로 대체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낯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떳떳하게 수업 듣고 시험도 보고 그래야 하는데 뭔가 특혜를 받는다는 느낌이랄까. 그 기분이 싫었어요.”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는 졸업 작품으로 단편영화 ‘날강도’를 만들었다. 자신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대학 시절 꼭 찍고야 말겠다던 ‘청춘 멜로 영화’를 남긴 것이다. 러닝타임 18분의 짤막한 이 영화는 미장센 영화제 초청, 아시아나국제영화제 본선 진출의 성과를 남겼다. 그의 치열했던 대학 시절이 고스란히 입증된 셈이다.

“방황하는 복학생 여주인공과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는 동기 남자가 등장해요. 그 둘은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어긋난 사이죠. 서로의 맘을 알지만 그 누구도 먼저 말을 못해요.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요.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예요.”

여기저기에서 ‘배우 출신 연출가’라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속상하다고 했다. 그는 “연출가로 인정받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속 나의 진짜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표출하면 그게 좋은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연출을 전공한 건 강수연 아역으로 출연했던 영화 ‘깊은 슬픔’의 고 곽지균 감독의 영향이 크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스태프들을 관리하는 감독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는 것. 그래서 시나리오도 꾸준히 썼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멍’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3 때 만든 영화 ‘네 꿈을 펼쳐라’는 E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배우’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도대체 그에게 ‘연기’란 무엇이기에.

“내가 완벽하게 내가 되는 순간이에요.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이 돼서 그 인물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 연기할 때마다 그 인물이 온전히 내가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의 내면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는데, 그 모습들이 모두 내게로 와서 연기를 해요. 그 다양성을 극대화시키는 게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올 상반기에는 그의 새로운 영화도 만나볼 수 있다. 나문희, 유해진, 엄정화 등 쟁쟁한 6명의 배우와 함께 영화 ‘마마’를 촬영 중이다.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작품 속 인물로 살고 있는 그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특정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좋은 영화에 잘 쓰일 수 있는 배우, 또 다른 영화에선 ‘아, 류현경은 이 영화에서 잘 쓰였어’ 이런 소리를 듣는 배우이고 싶어요. 올해뿐 아니라 내년, 내후년에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류현경

1983년 생
한양대 영화연출 전공

작품경력
- 영화 ‘방자전’ ‘시라노; 연애조작단’ ‘쩨쩨한 로맨스’ ‘신기전’ ‘동해물과 백두산이’ ‘비천무’ 등
- 드라마 ‘곰탕’ ‘떼루아’ 등

수상
- 2010년 제6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조연상 수상


글 한상미 기자 hsm@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