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곤의 잡 멘토링

대전에서 공부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재희(가명) 씨는 서울 소재 한 명문 사립대학에 입학했다. 그것으로 자신의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는 듯했다. 입학할 때의 계획 하나만으로도 가슴은 벅차올라 있었다.

장학금을 타서 학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하루에 3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 벌이를 하면 신나게 대학생활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잿빛이었다. 아르바이트부터 장학금까지 자신의 계획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월 40만 원의 하숙비와 20만 원의 용돈이 전부인 60만 원 인생을 살기도 그다지 녹녹하지 않았다. 20만 원의 용돈이라고 해봐야 하루 3000원의 학교 식당 점심값, 책값, 한 달에 두어 번 있는 친구들과의 모임 회비를 내고 나면 지갑엔 동전 소리뿐이었다.
[Column] 1500만 원 빚쟁이 대졸자로 산다는 것
>일러스트 신혜금">
재희 씨의 학과엔 10명 정도가 장학금을 탈 수 있었는데, 그 학점 커트라인이 4.2였다. 아르바이트하면서 4.2를 받으려면 거의 초인적인 시간 관리가 필요했다. 전 과목에서 A0 이상을 받지 않으면 장학금은 꿈조차 꾸지 못한다. 자칫 한 과목이라도 C를 받는 날엔 장학금은 사라진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험 준비와 예습·복습이 함께 진행돼야 했다.

재희 씨가 주말에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하던 날이었다. 친구들의 어학연수 경험, 봉사활동 경험, 인턴 경험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뭘 위해서 사는 것인지 회의가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대학에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젊은 날에 생계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재희 씨도 커뮤니티 활동과 인턴활동,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실천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부담이 되긴 했으나 생각해보면 그리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 자신이 졸업 후 연봉 4000만 원의 회사에 취업하면 1년 안에 다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더군다나 그간 어렵게 살았던 시간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이 대학생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계산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첫 학기 300만 원, 다음 학기 350만 원, 다음 학기 400만 원, 다음 학기 450만 원. 총 1500만 원의 빚을 졌다. 대출받는 사이에 1년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포함한 휴학기간이 있어서 졸업도 하기 전에 원리금 상환기간을 맞이하게 될 재희 씨는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졸업 전에 반드시 취업을 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잘못하다 보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재희 씨를 감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집 떠나 대학 다닌 죄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왜 대학에 왔을까? 그리고 이 대학은 재희 씨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돌려받지는 못한다고 해도 무엇을 배운 것일까?

필자와 재희 씨는 세 번을 만났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학교 안에서 진로 상담을 위해 만났고, 마지막 한 번은 필자의 연구소에서 취업에 성공한 신입 직원으로서 만남을 가졌다. 마지막 만남에서 재희 씨는 음료수 선물박스를 사들고 왔다.

자신이 다니게 될 회사의 제품이라고 하면서 상기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종 합격한 그의 얼굴에서 연봉의 50%를 빚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껴졌다.

그는 상담을 마칠 무렵 여운이 긴 하나의 다짐을 남겼다. 지난 5년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성공할 것이란 각오였다. 필자는 돌아가는 그에게 응원의 문자 메시지 하나를 남겨줬다.

‘나무가 겨울을 이겨낸 후 내는 첫 싹의 푸름이 청춘과 같다. 그 나무에게 사계절 햇볕만 있었다면 사막의 나무처럼 말라 비틀어졌을 것이다. 겨울이 그대의 푸름을 더 짙게 하지 않았나!’

[Column] 1500만 원 빚쟁이 대졸자로 산다는 것
이우곤 이우곤HR연구소장
건국대 겸임교수, KTV '일자리가 희망입니다' 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