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숙련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입장이고, 구직자는 기업에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서울패션위크가 열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패션계에 종사하는 청년 10명이 퍼포먼스를 벌였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정작 함께 일하는 이에겐 가혹하게 대하는 곳이 바로 패션업계라며,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비판의 대상 중에는 유명 디자이너도 있었다. 견습생 월 10만 원, 인턴 월 30만 원, 정직원 월 110만 ~ 130만 원의 급여 테이블이 공개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와 함께 공기업들의 무급 인턴 채용 공고까지 큰 이슈가 되었다.

열정 있고 재능이 있는 인턴사원에겐 돈을 조금만 줘도 된다? 이른바 ‘열정 페이’라는 계산법까지 등장했다. 이러다가 인턴 자리를 돈 주고 사야 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들도 할 말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에게 오히려 일을 가르치는데 어떻게 급여를 다 주냐는 항변이다.

무급 인턴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희망제작소에서 하루 점심값 5000원을 지급하는 조건의 무급 인턴이 알려지면서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인턴 당사자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노동력이 꼭 돈으로만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인터뷰해 일단락이 되었다. 희망제작소 역시 인턴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노동부 가이드라인 참고할 만
무급 인턴십이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인턴’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 인턴의 사전적 의미는 ‘교육 훈련생’이다. 다시 말해 ‘배우는 사람’인 셈. 따라서 정규 인력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미국의 경우 무급 인턴십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동부에서 무급 인턴이 인정되는 조건을 공시해 ‘무급’이 허용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인턴에게는 교육과 유사한 환경 또는 실질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인턴의 경험이 인턴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정규직의 자리를 대체해서는 안 되며, 고용주는 인턴이 수행하는 업무로 즉각적인 이익을 낼 수 없고, 인턴이 무급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업은 숙련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입장이고, 구직자는 기업에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턴십의 기본 개념은 ‘미리 현장 업무 경험을 해볼 수 있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인턴 당사자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쪽에 무게중심이 좀 더 기운다는 이야기다. 미국 노동부의 규정을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예컨대 인턴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거나 아르바이트 자리 대신 무급 인턴십을 시행하는 등 인턴십 제도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기업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 노동부의 무급 인턴십 가이드라인
① The internship, even though it includes actual operation of the facilities of the employer, is similar to training which would be given in an educational environment;
→ 인턴십은 실무적인 것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교육적 환경에서의 트레이닝과 유사해야 한다.

② The internship experience is for the benefit of the intern;
→ 인턴십의 경험이 인턴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③ The intern does not displace regular employees, but works under close supervision of existing staff;
→ 인턴으로 정규직의 자리를 대체해선 안 되며 직원의 감독 하에 일해야 한다.

④ The employer that provides the training derives no immediate advantage from the activities of the intern; and on occasion its operations may actually be impeded;
→ 고용주는 인턴이 수행하는 업무로 즉각적인 이익을 낼 수 없으며 차질 또한 감수해야 한다.

⑤ The intern is not necessarily entitled to a job at the conclusion of the internship; and
→ 인턴십은 반드시 계약 체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⑥ The employer and the intern understand that the intern is not entitled to wages for the time spent in the internship.
→ 고용주와 인턴은 인턴이 무급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